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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17 노비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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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1대 태조

 

천민을 대표하는 노비는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자손에게도 세습되는 가혹한 신분이었다. 특히 조선의 노비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이 아닌 재산 증식을 위한 매물이 되어 자유가 박탈되었다.

 

보통은 책이나 드라마로 노비의 생활을 자주 접하다 보니 노비 세습이 당연한 줄 아는 경우가 많지만, 노비의 세습을 인정하지 않던 중국과 비교해보면 조선의 노비가 매우 열악한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태조는 권문세족의 세력을 약화하는 동시에 국가 재정을 확충하는 방편으로 노비변정도감음을 설치해 노비의 신분을 바로잡는 데 노력했다. 

 

태종은 사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원 노비를 공노비로 삼아 군기감 등에 배치하고 신공을 받아 재정을 확보했다. 세종도 2번에 걸쳐 사찰 노비를 공노비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노비로 신분을 위장해 조세의 의무를 회피하던 양인을 찾아내기도 했다. 

 

양인의 수가 많아질수록 세금과 군인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만큼, 태종은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는 종부법을 시행했다. 당시 양인이 천민을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기에 종부법의 실행으로 양인의 수는 많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세종은 종부법을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종모법으로 환원시켰다.

 

노비는 소유주의 유형에 따라 왕실이나 관청에 소속된 공노비와 개인에게 소속된 사노비로 나뉘었다. 공노비는 관청의 일을 하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선상노비와 정해진 현물을 납부하는 납공노비로 구분했다.

 

공노비는 매매되거나 양도되는 경우가 적어 사노비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었다. 

 

반면 사노비는 주인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집안일을 하고 농사를 짓는 솔거노비와 주인과 떨어져 농사를 지으며 현물로 몸값을 내는 외거노비로 구분했다.

 

외거노비는 가정을 이루면서 주인의 토지 외에도 다른 사람의 논과 밭을 경작 할 수 있어,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주인과 함께 사는 솔거노비의 경우 자신만의 시간과 경제력을 갖는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017-노비.png.jpg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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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정
    작성자
    2022.05.19

    그래서 종모법을 실행한 세종이

    노비를 많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했던거군만?

  • 게이가찍어준표

    남자 : 공노비

    because 군대 ㄱㄱ

  • 게이가찍어준표
    김세정
    작성자
    2022.05.19
    @게이가찍어준표 님에게 보내는 답글

    노비의 세습을 인정하지 않던 중국

    -명나라 때 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