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태조
계절에 따라 먹는 음식 중 하나인 조랭이떡은 개성 지방에서 즐겨 먹던 음식으로, 흡사 땅콩을 까기 전 모습 또는 눈사람처럼 생겼다. 조랭이떡에는 여러 전설이 내려오는데 그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것이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내용이다.
고려의 많은 충신은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 고려를 다시 일으킬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아직 많은 사람이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 고 있던 이성계는 고려 왕족과 고려에 충성을 맹세한 이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조 3년 손흥종이 왕씨를 거제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 '중앙과 지방에 명령해 왕씨의 남은 자손을 찾아모두 죽이다.'등 여러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이성계가 건국 초 불안정한 정세를 우려했음을 보여준다.
고려 왕족은 살아남기 위해 성씨를 왕(王)씨에서 옥 /(玉) / 전(全) / 전(田)등의 한자로 바꿨다.
이런 모습에 분노한 개성 사람들은 가래떡 끝을 비틀어 잘라버리며 조선에 대한 복수와 고려의 부활을 다짐했다고 한다. 이때 끝이 비틀린 가래떡이 조랭이떡의 기원이 되었다.
조랭이떡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로는 뛰어난 상술로 만상 / 내상 / 경강상인과 더불어 조선 경제를 주무르던 개성상인의 이야기가 있다. 송상이라 불리는 개성상인은 의주의 만상과 동래의 내상과 함께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담당했다. 이들은 특히 외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인삼과 홍삼을 주요 물품으로 삼아 다양한 물건을 사고팔면서 큰 이익을 남겼다. 전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던 개성상인들은 설 명절만 되면 엽전 꾸러미처럼 생긴 떡을 넣고 국을 끓였다. 엽전 모양의 떡으로 만든 떡국을 먹으며 많은 돈을 벌게 해달라고 기원한 것이다. 이때 먹었던 떡이 조랭이떡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