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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일페이지 조선사> 004 이성계, 왜구를 격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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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1대 태조 

이성계, 왜구를 격퇴하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말인 1350년부터 1392년까지 왜구의 침입은 500회가 넘었다. 당시 왜구는 단순한 해적이 아닌 일본의 영주가 관리하는 정규 군대의 성격이 강했다. 왜구는 적게는 20척에서 많게는 400여 척의 배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포함한 전국을 대상으로 살육과 노략질을 일삼으며 고려를 위협했다. 

 

1380년(우왕6년),500여 척의 선단을 이끌고 침입한 왜구를 고려군은 진포에서 화포를 이용해 모두 격침해버렸다. 배가 없어져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왜구는 남도 지방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백성을 죽이고 약탈 했다. 고려는 500여 명의 병사를 박수경과 배언에게 주며 왜구를 토벌하게 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고려군을 상대로 승리한 왜구는 자신들의 뜻대로 고려를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전북 남원에 자리 잡은 왜구는 고려에 과도한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개경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고려를 위협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고려 조정은 고려 제일의 명장 이성계를 양광 . 전라 . 경상 삼도도순찰사에 임명해 왜구 토벌을 명했다.

 

이성계의 고려군과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는 남원 황산의 북서쪽에서 전투를 벌였다. 전투 초반 왜구의 기세에 고려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이성계의 뛰어난 용맹과 지도력으로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의 승리로 고려는 말 1,600필을 비롯해 왜구로부터 거둬들인 병기가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죽은 왜구가 흘린 피가 냇물을 가득 채워 인근 백성이 일주일 가가이 물을 마시지 못했다고도 전해진다.

 

황산대첩에서의 이성계와 아지발도의 대결은 설화가 되어 전해지고 있다. 설화에 따르면 아지발도는 어린 나이이지만 뛰어난 무예를 갖춰 고려군에게 연신 패배를 안겨준 명장이었다. 이성계는 그런 아지발도를 잡기 위해 황산에 진지를 구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지발도는 황산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아지발도가 자신이 황산에서 죽는다고 했던 누이의 예언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이성계는 한 할머니에게 아지발도를 찾아가 황산이 근천에 없다는 거짓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군대를 끌고 온 아지발도는 퉁두란(이지란)이 쏜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이를 본 이성계는 쏜살같이 달려가 아지발도의 목구멍에 활을 쏘아 그를 죽여버렸다. 또는 이성계가 아지발도의 투구를 맞추었고, 퉁두란이 그를 죽였다고도 한다. 이때 아지발도가 흘린 피가 황산다리 아래 바위를 물들이자. 사람들은 그 바위를 피바위라 불렀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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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정
    작성자
    2022.05.06

    왕은 모르나 고려시대 무장으로서는

    깔수없은 이성계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