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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商人)의 길을 밝힌 이시다 바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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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HSSHVILI

외무고시 합격자이자 엘리트 일본통 외교관 출신이었으나 파키스탄에서 근무할 때 죽을뻔한 폭탄 테러를 간발의 차로 피하는 행운을 얻은 후 그만두고

 

지금은 우동집을 하는 신상목씨의 일본관련 글인데 일본 역사 및 과거 인물 중 배울점이 많은 인물을 소개하는 글을 자주 조선일보 및 월간 조선에 기고하는 것 같더군요, EBS에도 특강 형식으로 나오는 분 같은데

http://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415

 

 

그분이 과거 쓴 아래 글을 우연히 접해서 링크를 공유합니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708100057

 

17세기 후반 일본은 체제적으로는 무가(武家)가 지배하는 사회였지만, 구조적으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다. 화폐는 주조되어 시장에 풀리는 순간 주조권자의 통제를 벗어났고 부(富)의 분배, 소비, 저축, 투자의 결정에 있어서 정치적 권위는 점점 시장에 주도권을 내주고 있었다

 

(중략)

 

도시화로 인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야 하는 유통 수요가 폭증한 일본에서는 여타 지역, 심지어는 유럽에 비해서도 상인 계층의 부상(浮上)이 두드러졌다.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며 사회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자 일본 사회는 모순에 봉착

 

사농공상(士農工商)에 기반한 재래의 신분 관념에서는 상인들이 여전히 최하급 계층으로 간주되는 일종의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현상이 발생한 것

 

(천민을 제외하면) 가장 미천한 신분인 상인이 돈을 벌고 잘사는 모습을 대하는 여타 계층의 인식은 곱지 않았다.

 

농본주의 (또는 생산자 중심) 관념하에서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상인들의 이윤 추구는 타인이 땀 흘려 생산한 결과물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 이익을 편취(騙取)하는 행위로 치부되었다. 상업의 이윤 획득은 비천한 것으로 여겨졌고 무가들은 상업에 종사하는 것을 ‘수치(羞恥)’로 규범화하였다.
 
  상인들은 상인들대로 눈앞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경제 호황으로 수요가 늘어날 때에는 투기와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일삼고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정경유착으로 거래를 독점하고 일물일가(一物一價)가 아니라 상대를 보고 가격을 후려치는 것을 당연시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낮아 어차피 명예와는 거리가 먼 처지였다. 오로지 돈만이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었다. 상업의 사회적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 데 비해 상업을 바라보는 쪽도 상업에 종사하는 쪽도 상업의 정체성과 바람직한 존재 방식에 대한 가치관은 불모의 상태였다.
 
  상인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사회적 좌표 부여가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를 배경으로 새로운 사상의 조류가 18세기 초반부터 태동한다. 그 물꼬를 튼 것이 석문심학(石門心學)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1685~1744)

 

이시다 바이간

  • 17세기 후반 교토 빈농의 자식으로 출생 교토 포목점에 견습생으로 보내져 가혹한 도제 수업을 받고 상인이 됨 타고난 성실함으로 40대 중후반에 이미 크게 성공 
  • 20년 넘는 현장 경험 통해 상업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는 신념을 품음 여기에 평소 성격이 대쪽 같고 학구열이 높고  어릴 적부터 불교, 유교 학습서 등 항시 책 놓지 않는 독서광였음
  • 오구리료운(小栗了雲)이라는 학식 높은 재야 승려 만나면서 일취월장하고 학문도 틀이 잡힌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그는 43세에 현역 상인 은퇴
  • 40대 중후반부터 자기 집 한켠에 방 만들고 배움 목마른 이들을 위해 지식 전달 및 강연 시작 - 유교 불교, 신토이즘 등 특정 철학, 종교 편중 안되고 실제적인 지식을 전달하니 배울려고 찾아드는 제자들이 늘어남 
  • 상인도(商人道-일본어로는 ‘아킨도’라고 읽는 경우가 많다. 상인도는 현대에 와서 바이간의 사상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유행한 말, 에도시대는 그런 표현X)을 제시함

 

상인도(商人道, 상인의 길)

  • 진정한 상인은 손님이 있어야 비로소 자신도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 마치 무사가 ‘충(忠)’으로 주군을 섬기듯 상인도 ‘성(誠)’으로 고객을 섬겨야 하며, 자신의 이익을 줄일수록 손님의 이익이 늘어나므로 상인은 스스로 ‘검약’해야
  • ‘제업즉수행(諸業卽修行)’, 즉 일은 곧 인격 수양이므로 나태를 경계하고 ‘근면’하게 맡은 바 소임에 정진함으로써 ‘신용(信用)’을 얻어야
  • 생산자에게는 가격 후려치고, 구매자에게는 바가지 씌워 폭리를 취하는 자는 상인이 아니라 무도한 도적임 - 이런 무도함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배움의 힘
  • 떳떳하게 버는 돈은 절대 흠이 아니고 하늘에게 내린 녹봉이고, 그 돈이 후지산 이상 쌓여도 전혀 부끄러울 게 없이 당당할 수 있다

 

일본 기업이나 수백년 이은 가업 등이 가훈 등으로 이런 메시지를 간직하고 실천하는 곳이 지금도 있는게 이런 맥락임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011266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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