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33010390224181
엄청 두꺼워서 (704페이지) 관심 있는 주제들 별로 나눠서 시간 날 때 마다 읽고 있는 중 (현재까지 스위스 금융, 스위스 제약산업 읽음)
스위스가 강한 여러 산업, 역사 관련 과거 그리고 오늘을 소개하고 어찌 스위스가 유럽의 초 강소국 겸 중립국이 되었나 성공 비결 그리고 잘 알려려지 않은 스위스 일류 기업을 소개하고 있음
일단 좀 놀란게 한국 마냥 옛날에는 엄청 가난해서 유럽 및 전 세계로 용병 보내는 것을 인구의 1/4을 보낸 적도 있다고 함 (ex. 가령 바티칸 용병이 스위스 군인인것도 이런 맥락) 용병으로 가서 세계 여러 다양한 곳에서 현지화하고 무역을 배우고 또 프랑스에서 가톨릭에 의한 개신교 탄압 때문에 위그노라 불리는 프랑스 개신교인들이 이주하면서 엄청나게 흥하기 시작했다고 함, 스위스의 주요 도시들이 강으로 물류상의 잇점이 있고 유럽 주요 도시로 수출하는데 있어 거쳐가야 하는 위치상의 장점을 갖고 있었음, 거기에 부를 그댝 권장하지 않은 가톨릭(ex. 부를 그댝 권장치 않고 설령 부를 이루어도 상속이 아니라 최대한 가톨릭 교회에 바칠 것 주문)과 달리 개신교는 부를 신의 축복으로 오히려 나태를 종교적 죄로 여기고 근면과 성실을 강조
아래는 마침 스위스 관련 어떤 기사가 있나 검색했는데 나와서 책의 내용과 아주 일부 공유되는 것도 있고 그냥 비교적 최근에 스위스 관련 한국 언론사 다룬 내용 같아 핵심 내용만 요약함 (난 항상 어떤 주제건 책 읽으면서 관련된 용어나 주제 관련 가장 최근 1년 내 어떤 언론 기사가 있나 체크함)
참고로 아래 기고문 저자는, 미국서 박사 하고 귀국 전 스위스에서 포닥을 할 기회가 생김, 어릴 떄 한국과 유사하게 작은 나라지만 독립을 지켜내고 엄청난 번영 이룬 스위스의 저력이 궁금하던 차에 스위스에서 연구하고 살면서 관찰한 것을 공유하는 기고문을 씀 (원문 자체가 그댝 잘 쓴 글이 아니라 그냥 바쁜 이들은 밑줄 그은 부분만 읽으면 될 듯;;;)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길 요약하자면
1) 미국은 워낙 한국과 크기, 자원 등 차이가 나니 위화감 안들었는데 스위스는 한국과 비슷 아님 더 열악한데 더 성공해서 부러었음
2) 스위스 성공 비결은 과학공학 발전인데, 자기가 근무하는 연구소만 봐도 다국적이고, 외국인 인재를 적극 활용,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현지어인 프랑스어 대신 영어 연구실에서 사용, 미국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함, 소통도 교수 제자, 동료 연구자간 평등하게 소통 장려함, 충분한 휴식보장으로 창의성극대화
3) 한국도 유럽 인재까진 아니더라도 아시아 등 인접국 외국인 인재 유치하고, 수직적 위계문화 지양하고, 외국인=외노자 이런 인식 버리고, 혹사문화 지양해서 창의성극대화해야 함
스위스에 전 세계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드는 까닭···한국과 달라서?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2111617015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그런 나라들에 둘러싸여 숱한 침략 속에 독립을 지킨 역사
. 미국에 사는 동안 어떻게 이 나라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천조국’이 되었는지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지만, 인구에서 국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와는 스케일이 다른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거울에 한국을 비춰보기에는 위화감이 컸다.
미국에 살면서는 부러움을 별로 느끼지 않았는데, 스위스에서는 이 나라에 대한 질투에 가까운 부러움을 종종 느낀다. 그 질투심의 이면에는 비슷한 조건을 지닌 한국도 충분히 더 좋은 나라, 더 잘사는 나라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경쟁심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스위스는 과학기술 강국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작고 척박한 국토에 변변한 천연자원도 없는 이 나라가 전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된 비결
세계적 제약회사인 로슈와 노바티스가 스위스에서 탄생했고, 화학, 정밀기계, 식품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넘쳐난다.
스위스는 제약과 같은 첨단산업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튼튼한 기초과학을 갖고 있다. 스위스는 인구당 노벨상 수상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며, 아인슈타인을 길러낸 취리히연방공대에서만 무려 2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
과학기술 강국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그 실마리를 우리 연구소에서 찾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우리 연구소에는 스위스인보다 나 같은 비스위스인이 더 많다. 우선 내가 소속된 연구실부터가 그렇다. 지도교수인 리처드는 스코틀랜드 출신이고, 열댓 명이 넘는 연구그룹원 중 스위스인은 테크니션인 릴리안과 스티브 두 명뿐이다. 나머지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미국, 한국, 일본,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스위스로 건너왔다. 우리 연구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연구소에 십 수명이 합류했는데, 이들 중 스위스 출신은 한 명뿐
이런 인력 구성 때문인지 미국에서 일할 때는 미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을 저렴한 임금으로 내가 채우고 있다는 빈정 상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스위스에서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스위스인들이 우수한 외국 인력이 최대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느낌이다. 우리 연구소는 행정적이거나 기술적인 일은 최대한 스위스인들이 떠맡고, 핵심 연구 과정은 주로 외국인들이 진행
반면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학부 졸업예정자들이 암묵적으로 고려하는 연구실의 ‘시그널’ 중 하나가 외국인 비중이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연구실이 중국이나 인도 등지에서 온 외국인으로 채워진다는 인식 때문
비유하자면 한국이 내국인 인재들을 대상으로 ‘전국체전’을 하고 있는 동안 스위스는 전 세계의 인재들을 대상으로 ‘올림픽’을 하고 있다. 문화적, 지리적, 경제적 이유로 한국이 스위스처럼 유럽이나 미주의 인재들을 유치하기에는 아직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최소한 아시아의 유망주들에게는 매력적인 환경을 갖추어 ‘전국체전’에서 ‘아시안게임’ 정도의 스케일로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을 아시아와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우선 언어적 장벽을 낮춰야 한다. 내가 스위스의 연구실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편안하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이유는 언어적 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연구소 바깥을 나가면 언어(프랑스어) 제약으로 인한 불편함이 적지 않지만, 최소한 연구소 내에서는 영어로 모든 의사소통이 해결
국제사회에서 영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모어를 사용하는 화자들이 의사소통하기 위한 ‘공통어(링구아 프랑카)’이다. 나만 하더라도 우리 연구소의 유럽인들뿐만 아니라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대화할 때도 영어를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에서 최고 연구경쟁력을 갖춘 싱가포르와 홍콩이 모두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도 최소한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는 영어만 사용하더라도 교육과 연구에 어려움이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만큼 매력적인 선택지로 느껴질 수 있도록 획기적인 처우와 비전을 제공해야 한다. 스위스는 입지와 환경 등 매우 매력적인 조건을 갖췄는데 처우까지 훌륭하다. 미국에서는 모아둔 저축을 까먹어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내 월급만으로 세 식구가 사는 데 어려움이 없다.
연구 수준이 높고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이 갖춰진 데다 과학자들을 잘 대접해주는 나라이니 자연스럽게 전 세계의 인재들이 스위스로 모이고, 한 번 오면 떠나지 않으려
반면 미주나 유럽 국가들과 똑같은 처우를 제공해도 인재를 유인하기 쉽지 않을 한국의 대학과 연구실들은 돈은 적게 주고 일은 더 많이 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신설되어 박사 후 연구원을 지원하는 세종과학펠로십은 아예 외국인들의 지원을 막았다. 외국인들의 지원을 장려해도 모자랄 판인데
마지막으로 선진적인 ‘연구문화’를 강조하고 싶다.
현대 과학은 골방에서 혼자 무언가를 발견하는 작업이 아니다. 동료 과학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업해야 한다. 억압적이고 수직적인 문화 속에서는 그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한국의 수직적인 사회구조는 연구실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이는 호칭과 언어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 연구실에서 교수‘님’과 선배‘님’(사수)은 윗사람이다. 반면 미국과 스위스에서 나와 지도교수는 서로를 ‘옆사람’으로 대했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친근한 관계이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의견을 나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과학에서만큼은 수평적인 소통이 장려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 속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솟아나고, 실수나 착오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불 꺼지지 않는 연구실’ ‘월화수목금금금’ 같은 신화로 상징되는 노동집약적인 연구문화도 벗어나야 한다. 소위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의 연구는 생산성도 떨어지고 연구자들의 삶도 비참해진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오래 일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후진적인 연구문화는 외국 인재를 유치하는 데에도 걸림돌
창의적인 생각은 번아웃된 뇌가 아니라 맑고 생기 넘치는 뇌에서 나온다. 그런 뇌를 만드는 것은 제대로 된 휴식이다. 이곳에선 텅 빈 연구소에서 야근하거나 주말에 출근하면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근무 시간을 줄이면서도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의 중요성과 우선순위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불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선 안 된다
한국도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에게 주어지는 잡무를 최대한 줄여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뿐만 아니라 충분한 휴가를 보장해주어 창의력이 샘솟는 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7죄종(나태)은 크리스쳔의 원죄종이라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죄악시 하는거 아닌가요?
나태는 그런데 부의 축적 이건 입장이 가톨릭하고 개신교가 달랐던것 같아요 - 아래 칼뱅주의 링크가 더 잘 설명이 될 듯 한데
http://m.kmib.co.kr/view.asp?arcid=0924103267
16세기 서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 이야기로 시작되는 책은 칼뱅의 생애와 그의 주요 업적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당시 서유럽은 태생과 전통에 근거해 사회적 위치가 정해지는 정적(靜的) 세계관이 휩쓸고 있었다. 칼뱅주의는 이와 반대로 세상에서 개인의 지위는 각자의 노력에 달렸다고 선언했다. 칼뱅은 삶의 전 영역을 거룩한 성화로 봤으며 ‘노동이 곧 기도’라는 새로운 노동관을 주창했다.
칼뱅은 자본 축적도 죄악시하지 않았다. 사유재산권을 지지했으며 노동 분업 체계를 높이 평가했다. 신명기 말씀을 들어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건 원시 유대 농경사회에 맞춘 것이라며 16세기 제네바 사회가 이를 지킬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자본을 투자해 신산업을 육성하려는 열성도 보였다. 칼뱅은 1540년대 제네바 시의회가 섬유업을 지원토록 로비 활동을 했다. 당시 자본주의의 흐름을 파악해 이를 촉진·확산하는 데 큰 공로를 한 것
하나님이 부를 허락한다는 개념은 미국의 부호 존 록펠러와 앤드루 카네기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잊혀졌던 기억을 되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함. 외국인을 유치하고 유치하기 위해 영어를 섞어 사용하는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음. 왜 국내 기업들은 국내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뽑아야 하는지 의문임.
추천
흥미로운 책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