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 지명자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ewclear power)라고 지칭했다. 그간 한미가 공조해 온 북한 비핵화 원칙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안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한시적 핵무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가 급부상하고 있다.◆트럼프 "北 뉴클리어 파워" 언급 … "NPT상 합법적 핵보유국 뜻 아냐"
23일 외교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난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며 "이제 그는 '뉴클리어 파워'다. 우리는 잘 지냈다. 내가 돌아온 것을 그가 반기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기자 질의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 외 여타 다른 위협을 강조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 비핵화는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견지해 온 원칙으로 NPT상 북한은 절대로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뉴클리어 파워'는 핵무기 역량에 대한 일반적 평가를 담은 비공식 용어일 뿐 합법적 핵보유국인 '핵무기 국가'와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핵을 보유했다는 현실을 반영한 언급이라는 뜻이다. NPT 체제에서 합법적인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는 5개 핵보유국(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을 지칭하는 용어는 '핵무기 국가'(Nuclear-weapon state)다.
전날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시드니 사일러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북한 담당 국가정보분석관은 "'핵보유국'을 영어로 번역하면 'nuclear possessing state'라는 어색한 표현이 된다. '뉴클리어 파워'는 군사력의 일부로 핵무기 역량을 가진 국가를 의미한다. 이는 단지 편의상 사용되는 용어일 뿐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거나 용인하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북한이 핵무기를 통해 어떤 지위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북한 비핵화는 미국의 오랜 정책일 뿐 아니라 11개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2022년 북한 정책 감독법'(North Korea Policy Oversight Act of 2022)과 같은 미국 법률이 요구하는 법적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北 비핵화' 공조 흔들릴 우려 … '조건부 핵무장론' 급부상
그럼에도 한미 간 북한 비핵화 원칙이 흔들릴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약 석 달 앞둔 지난해 8월 미국 민주·공화 양당은 새 정당 강령(정강)에서 북한 비핵화 문구를 모두 삭제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회의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구가 빠졌다.
이에 따라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시점이 되면 우리도 핵전력을 포기한다'는 조건부 핵 무장인 '한시적 핵무장론'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1991년 한반도에서 철수한 미 전술핵을 북핵 억제와 핵 균형을 위해 재배치하는 한시적 핵무장은 NPT를 위반하지 않는다. 핵무장은 비확산 체제 유지라는 미국의 목표와 미국의 확장 억제 정책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어 미국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지만 한시적 핵무장은 미국 등 주변국의 협조를 더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6년간 국가정보원에서 대북 업무를 해온 핵 전략가인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2023 NK포럼' 기조연설에서 "우리도 자체 핵 전력을 보유하게 된다면 핵의 불균형과 비대칭이 시정되고 북한의 전략적 이점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건부 자체 핵무장을 제안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의 전술핵은 한국에 1958년에 들어왔다가 1991년에 철수됐다. 그때 우리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양측 모두 핵을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지금 이미 공동선언은 무력화됐고 북한은 불법적인 핵을 갖고 있다"며 "우리에게 명분이 있는 셈이다. 그 대신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조건부로 배치하자는 식으로 딜을 해야 한다. 미국에도 솔깃한 제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다탄두(MIRV) 기술을 확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특히 미국이 북한의 본토 공격 가능성을 우려해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를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불식할 수 있다. 북한은 향후 미북 회담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주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핵무기는 폐기 혹은 동결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한국과 미국의 '디커플링'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한국이 핵무장으로 '2차 타격 능력'(보복 능력)을 갖추면 한국의 핵 억제력으로도 북핵 위협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中 견제용 美 전술핵 재배치, 트럼프의 대중 강경 기조에 부합
물론 한국의 핵무장은 그 이익이 미국의 전략적 계산에 부합해야 현실화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데릴 프레스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국제안보연구소장)는 "미국은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 공유와 같은) 실질적인 확장 억제를 강화하는 액션을 취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위험까지 감수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이 태평양에서 가장 위협으로 생각하는 중국 대응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對中) 강경 정책과 맞물려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설득하는 방안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배치하면 미국이 패권 경쟁국인 중국을 더욱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유 이사장은 "미국의 가장 핵심 전략인 '중국 압박용'으로 이보다 좋은 카드는 없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한다면 미국에도 이득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안보의 발목을 잡는 것은 다름 아닌 국내 정치다. 특히 최근 탄핵 정국으로 인한 리더십 공백 속에서 외교·안보 콘트롤타워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인 최상목 체제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원활한 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하고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고 해도 3개월 이내에 새 정부가 출범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의원단은 최근 미국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 앞으로 6개월간 중요한 대한(對韓) 정책의 시행을 잠정적으로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안보 '컨트롤타워'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인적 구성이 '친트럼프' 인사 위주로 개편될 전망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백악관 NSC를 이끄는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날 각 정부 부처에서 NSC로 파견된 약 160명의 NSC 내 직업 공무원들에게 당분간 재택근무를 하라고 통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이후에도 유지되던 연방 정부 기관의 부분적 재택근무 관행을 폐지한다는 입장이기에 이들 160명에 대한 재택근무 명령은 원부처 복귀를 전제로 한 '대기발령' 내지 '업무 배제'로 해석된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1/23/2025012300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