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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직후 '이승만 라디오 연설문' 보니…"서울을 지켜라"는 말 없어

뉴데일리

그동안 이승만 전 대통령이 6.25전쟁 발발 후 서울시민들에게 "서울은 안전하니 생업에 종사하라"는 녹음 연설을 방송한 뒤 정작 본인은 대전으로 피신했다는 게 마치 학계의 정설처럼 전해져 왔으나, 이는 왜곡과 날조로 구성된 '거짓 역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과 김구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류석춘 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말 중에 '런승만'이라는 말이 있다"며 "이는 이 전 대통령이 6.25전쟁 때 국민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뜻으로, 서울시민들에게는 남아 줄 것을 호소하면서 정작 자신은 지방으로 피난을 갔다는 주장"이라고 언급했다.

류 전 교수는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이와 같은 내용의 연설을 한 사실이 없다"며 "세간에 퍼진 라디오 연설 내용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위급한 전쟁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군사원조가 오고 있는 만큼 좀 더 힘을 내달라'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만 전했을 뿐 '서울시민 여러분은 안심하고 서울을 지켜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황당한 거짓말을 학생뿐 아니라 사회지도층도 습관적으로 이야기한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류 전 교수는 "특히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2012년 '독부 이승만 평전'을 펴내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삽입해 '런승만' 논란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안심하고 서울 지켜달라'는 말한 적 없어

류 전 교수에 따르면 김 전 관장은 이 책에서 "이승만은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국군의 총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국군은 적을 압록강까지 추격해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달성하고야 말 것입니다'라는 거짓 녹음 연설만 라디오 방송이 되풀이하도록 해놓고 시민들이야 죽든 말든 내버려둔 채 자신과 그 수족들 그리고 정부각료들만 줄행랑을 놓은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 전 관장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인민군을 격퇴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대통령의 녹음 연설이 계속 방송되는 가운데 채병덕 참모총장이 북한의 탱크가 서울에 진입하기 전에 유일한 한강다리인 한강철교를 폭파하라고 최창식 공병감에게 지시해, 28일 새벽 2시 30분경 국군이 한강철교를 폭파하는 바람에 다리를 건너던 4000여 명의 시민이 현장에서 폭사하거나 물에 빠져 죽고 서울시민들의 피난길을 막아버렸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책 내용을 소개한 류 전 교수는 "기습남침 전쟁이 벌어진 지 이틀 반이 지난 1950년 6월 27일 밤 10시에 방송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연설은 어느 한마디, 어느 한군데 시비를 걸데 없는 전쟁 최고 지도자의 완벽한 연설이라며 최고 책임자로서의 고뇌는 물론, 주어진 상황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자신의 선택과 노력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군인과 국민의 협조를 당부하는 호소력이 단연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실제 이 전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문을 보면 김 전 관장이 거론한 방송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강조한 류 전 교수는 "그의 설명과 주장은 모두 이 전 대통령을 아무런 근거없이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선전선동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류 전 교수는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미국 CIA 소속 해외방송정보국(FBIS: 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이 감청해 작성한 영문기록이 있다며 3페이지 분량의 연설문 사본을 전격 공개했다.

류 전 교수가 공개한 연설문에서 이 전 대통령은 "지금, 우리의 원수들은 사방에서 중무장한 비행기와 탱크 그리고 군함을 몰고 와서 우리를 옥죄고 있다. 우리 군경은 이 어려움을 뒤집기 위해 모든 방향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우고 있다"며 (어제) 의정부 일대에서는 적군이 중무장한 수십 대의 탱크를 앞세워 밀고 내려왔는데, 우리 군인들은 전혀 준비되지 않아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했으나, 나중에는 침략하는 도로에 지뢰를 매설해 탱크를 격파하는 시도를 했다"는 등 지금까지의 전황을 상세히 전했다.

이어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미국의 맥아더 장군과 트루먼 대통령에게도 알려 군사원조를 부탁한 사실을 밝힌 이 전 대통령은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중대한 작전이 준비되고 있고, 충분한 원조가 가는 중'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전보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현재 상황에서 국민이 피난을 떠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보다 더 유력한 나라들도 이미 공산당 세력 수중에 넘어갔고, 일부는 넘어가고 있는 중"이라면서도 "우리는 공산당의 학살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조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 군대가 강력하게 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적과 힘차게 싸우고 있는 우리 군과 경찰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특별히 의정부 지역에서 무기도 없이 용감히 싸우는 군인들에게는 더욱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덧붙였다.◆'민간인 800명 희생설'도 거짓

류 전 교수는 라디오 연설 내용뿐 아니라 '국군이 한강철교를 폭파하는 바람에 다리를 건너던 다수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김 전 관장의 주장 역시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류 전 교수는 "1950년 6월 27일 오후 10시 대국민 방송을 마친 이 전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인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다리 폭파 소식을 접해야 했다"며 "한강다리 폭파를 둘러싼 논란은 신기철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이 2014년 출판한 '국민은 적이 아니다(헤르츠나인)' 53-42쪽에 잘 정리돼 있다"고 소개했다.

류 전 교수는 "김덕영 감독('건국전쟁' 연출)에 따르면 신 전 팀장은 2014년 인권평화연구소 소장 시절 처음으로 '민간인 800명 희생설'을 제기했으나 스스로 살펴도 그 근거가 너무도 허접해 사실을 따지게 됐다고 한다"며 "그 결과 2014년 출판한 책에서는 팩트에 근거한 입장으로 돌아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류 전 교수는 앞서 신 전 팀장은 '한 언론사 특파원'이 '어느 군사고문단 군인의 증언'이라고 소개한 내용을 바탕으로 '800명 사망설'을 제기했으나, "그런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류 전 교수는 "당시 현장에 있던 군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파 직전까지 피난민들은 인도교 근처에 설치된 '부교'를 이용해 이동 중이었다"며 "이미 한강 인도교가 헌병에 의해서 이중삼중으로 통제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인도교에 민간인이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고 단정했다.

게다가 '폭파 명령자'는 당시 참모총장 채병덕이었다고 강조한 류 전 교수는 "결론적으로 한강 인도교 민간인 사망설을 처음 제기했던 신 전 팀장 역시 자신의 오류를 인정, 연구 결과에 대한 보완 작업을 통해 2016년 '민간인 사망자가 없었다'고 수정했다"고 밝혔다.

류 전 교수는 "미국 해병대 자료와 신 전 팀장의 책 등을 종합하면 당시 우리 군대가 다리 위 민간인 통행을 금지하자, 피난민들은 다리 밑의 교각을 따라 부유잔교를 설치해 군인의 검문을 받은 후 강을 건너고 있었다"며 "그리고 부유잔교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다리 폭파 작전의 결과로 모두 파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폭파 직전, 2개의 경인철교 사이의 부교로 피난민들이 한강을 건너고 있는 사진을 소개한 류 전 교수는 "폭파로 상판이 붕괴되면서 교각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 때문에 때맞춰 그 순간 다리를 건너는 극소수 민간 피난민들이 다치거나 죽었을 수는 있지만 이는 극소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한강다리 폭파로 희생된 사람 중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경찰 77명 외에는 없다'는 김 감독의 주장을 인용했다.

다음은 류 전 교수가 공개한 이 전 대통령의 대국민 라디오 연설 전문(1950년 6월 27일).

내가 지난 대여섯 달 동안 계속해서 자랑스럽게 말한 것은 미국의 군사상 원조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내가 그것이 올 것을 믿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주정치 나라에서 그것은 (군사적 원조가 오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나는 상당한 시간 동안 침묵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한 말이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원수들은 사방에서 중무장한 비행기와 탱크 그리고 군함을 몰고 와서 우리를 옥죄고 있습니다. 우리 군경은 이 어려움을 뒤집기 위해 모든 방향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성공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어제) 의정부 일대에서는 적군이 중무장한 수십 대의 탱크를 앞세워 밀고 내려왔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전혀 준비되지 않아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했으나, 나중에는 침략하는 도로에 지뢰를 매설해 탱크를 격파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적군은 탱크를 세우고 내려서 지뢰를 제거하며 계속 전진했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지뢰를 치우는 적군을 소총으로 저격하고자 했으나, 장거리 소총으로 무장한 적군에 반해 우리 군인들은 그런 무기가 없어 대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무기도 없이 적과 대적하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 군인들은 맨손으로 용감히 싸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적군의 선봉대는 서울 외곽 수 십리 지점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리는 약 400 미터 거리).

이런 상황을 보고 나는 워싱턴과 동경에 밤과 이른 새벽 시간에 전보와 전화로 연락을 취해 맥아더 장군과 통화를 했고, (워싱턴 주재 우리 대사를 통해) 트루먼 대통령과도 통화를 했습니다. 내가 말한 바는 적이 우리 대문을 침입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기를 주면 우리는 미국, 일본, 한국에 있는 우리의 미국 친구들과 함께 국경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나는 트루먼에게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미국 대통령 승인을 얻은 1,000만 달러 원조가 우리가 이와 같은 비상사태를 맞이하고 있을 때 도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사이에 무초 대사의 노력도 있고 하여 (우리보다 더 긴급히 워싱턴과 도쿄에 이 상황을 호소하여...), 오늘 오후에는 맥아더 장군이 내게 보낸 전보에서 중요한 언급을 하였기에, 이를 동포에게 급히 알리고자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바를 모두 철파하고, 이 기쁜 소식을 방송하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의 전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중대한 작전이 준비되고 있고, 충분한 원조가 가는 중입니다“). 맥아더의 서명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긴급정보 보고는 한국에 대한 원조가 공군과 해군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조는 오직 38선 이남을 방어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오늘 오후에는 전폭기를 보내서 침략자들을 격파하고, 전투기로는 탱크를 공격한다고 합니다. 또한 처치 (Church) 장군은 즉시 동경에서 서울로 와 우리 국방 군사고문으로 일하면서 도울 것이고, 고급 참모들도 (여럿이 오고, 군사 원조물자도 지금 오는 중이며, 또한 계속해서 올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국민이 피난을 떠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유력한 나라들도 이미 공산당 세력 수중에 넘어갔고, 일부는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공산당의 학살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군대가 강력하게 싸워야 합니다 (원조가 도착할 때까지).

여기서 (서쪽 옹진반도부터 동해까지 38선 전 지역 그리고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는 지역까지 적과 힘차게 싸우고 있는 우리 군과 경찰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히, 의정부 지역에서) 무기도 없이 용감히 싸우는 군인들에게는 더욱 고맙습니다.

적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용기, 힘, 결단력을 가지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어야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지원을 기대하고, 남북한의 통일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나는 모든 시민들이 전쟁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용기와 애국심을 발휘하여 차분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2/15/20240215002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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