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애국심'과 사회의 '신뢰'이다.
맹목적인 애국심이 부족하다는게 아니다.
자신이 맡은 의무를 다하는게 애국심이다.
그런데 자신이 맡은 의무를 다하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프랑스 혁명의 3대요소는 '자유','평등', '박애'
이다.
근데 이 박애가 뭔지 사람들은 잘모른다. 박애는 연대라는 의미에 가깝고, 국가적으로 보면 애국심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
왕정을 무너트리고 공화정 국가가 만들어졌지만 애국심이 없었다면 프랑스 공화국은 무너졌을것이다.
그런데 국민들로 하여금 애국심을, 연대의식을 갖게 하는것도 지도자의 몫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 잇속만 챙긴다면 당연히 국민들도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고, 연대의식은 버리며 시키는 일만, 그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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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전투는 나폴레옹이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영광스러워하던 전투로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이 체코의 아우스터리츠 지역에서 싸운 전투이다. 수적으로 프랑스군이 불리했다.
거기에는 프라첸 고지라 불리는 지역이 있었는데.. 그곳을 점령하는게 중요하단걸 파악한 나폴레옹은, 일부러 다른지역을 약하게 함으로써, 적군을 유인, 그리고 그틈을 타서 고지를 점령후 적군에게 대포를 쏘게했고 이는 완벽히 들어맞아 연합군은 갑작스런 포격에 우왕좌왕했다.
근데 갑자기 예상못했던 적군의 신병들이 프랑스군이 차지한 고지에 등장했다. 이 프랑스군들은 포병으로 사격에만 능숙한, 즉 보병이 아니었다. 여기서 포병이 무너지면, 프랑스군의 패배는 확실했는데...
이 포병들은 적군이 신병이라는걸 알아채고 칼을 들고 고지를 뛰어내려오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는 누구의 지시가 아니라 고지를 점령한 부대의 독자적 판단이었다. 나폴레옹은 적군 등장시 포병들에게 백병전을 하라고 시킨적이 없었다.
그런데 적 연헙군의 신병들은 높은 위치에서 칼을 들고 내려오면서 하는 백병전 공격에 무너지고 도망갔다. 고지를 사수한 프랑스군은 계속 대포를 쏟아냈고,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은 패퇴할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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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엘바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은 부하들의 도움으로 탈출,프랑스에 상륙하여 파리로 진격하기 시작한다.
그르노블 근처에서 진군하던 나폴레옹의 병력은 자신들을 막으라는 부르봉 왕조의 명려믈 받읃 제5보병연대가 길가에 포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주민들은 "신경쓰지 마세요. 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으나 측근들은 좀 걱정된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우리가 속았는지도 모르겠군. 뭐 상관없지, 전진!"이라는 말과 함께 맨앞으로 나아가 제5보병연대를 정면으로 바라본 뒤 이렇게 말했다.
"제5보병연대여! 짐을 알아보겠는가?"
"예, 폐하."
"짐이 자네들의 꼬마 부사관(별명)이다. 자네들 중 짐을 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여기 짐의 가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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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병사들이 "황제폐하 만세!"를 외치며 백색 휘장을 떼어내고 황제의 손을 만지기 위해 달려나갔다.
나폴레옹은 항복한 제5연대를 규합해 전진을 재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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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가에 너무 많은걸 바라시는 듯
우리는 항상 간첩을 염두할 수 밖에 없는 나라임
즉, 가까운 사람이 언제나 간첩일 수 있음을 감안하고 사는 나라...
님이 말하는 그 순수한 박애의 개념은 당분간 발생할 수 없는 구조라고 생각함
그럼 평생 2류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