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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호러풍자] 사육(飼育)

오주한

Chapter 1. 방(房)

 

눈을 떴다. 캄캄하다. 머리가 아프다. 한참 동안 심연(深淵)을 바라본다. 갑자기 든 생각. “여긴 어디인가” 고요함을 뚫고 몸을 일으킨다. 사지(四肢)가 바늘로 쑤신 듯 아프다. 만져본다. 뭔가 튜브 같은 긴 선(線)이 손에 잡힌다. 더듬으며 거슬러 올라가니 선은 내 몸에 박혀 있다. 뽑아본다. 통성(痛聲)이 절로 나온다. 흘러나온 피는 어느샌가 굳어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일어나 앉는다. 내려다본 나는 사람이다. 또다른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나는 누구인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향은 어디이고, 나이는 얼마이며, 이름은 무엇이고, 몇 년도이며, 대표 정치인은 누구이고, 왜 여기 있는지. 그저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포만감(飽滿感)만 느껴질 뿐이다.

 

조심스레 발을 내디뎌본다. 바닥은 적정온도. 어둠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보니 벽이 손에 닿는다. 혹 바닥에 뭔가 있을까, 벽을 따라 조심조심 옆으로 걷는다. 무언가 불룩한 게 손에 잡힌다. 돌리고 당겨본다. 갑자기 빛이 쏟아진다. 타들어갈 듯한 통증이 망막(網膜)을 엄습한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어지럽다. 구토가 나온다.

 

식도(食道)를 역류한 뜨거운 것들을 어지러이 토해내고 고개를 들어본다. 빛이다. 하얗고 긴 복도를 따라 빛이 펼쳐져 있다. 걷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지만.

 

Chapter 2. 사람(人)

 

복도 저 끝 문 너머로 말소리가 들린다. 사람의 언어다. 여러 사람이다. 만감(萬感)이 교차한다. 누구일까. 선(善)한 이들일까, 악(惡)한 이들일까. 언제 가동됐을지 모를 정도로 멈췄던 두뇌회로를 돌린다. “난 낯선 곳에 갇혔다, 느긋한 걸음걸이 보니 저들은 구조대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면 저들은 납치범이다”

 

삼단논법(三段論法)에 따라 본능적으로 위기가 감지된다. 숨죽인 채 문 앞에 선다. 대화내용을 엿듣는다. “이곳이 그렇게 유명한 곳이라던데” “미O랭가이드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던데”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걸음소리가 멈춘다. 문 열리는 소리 나더니 다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다. 아까 그들은 사라지고 없다. 아마 13시 방향에 보이는 저 문 안으로 들어간 듯하다. 주변 인적(人跡)은 없다.

 

발소리 죽인 채 그들이 사라진 것으로 여겨지는 문 앞에 가 본다. 귀를 대 본다. 뭔가 빨대로 허겁지겁 꿀꺽꿀꺽 들이마시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때때로 아까 그들의 경탄성(敬歎聲)도 들린다. 그 틈틈이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소리도 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크게 이상하다. 급히 그 곳을 떠난다.

 

Chapter 3. 조우(遭遇)

 

정신없이 걷는다. 몇 개의 복도, 몇 개의 문을 지났는지 모르겠다.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아까와는 뭔가 다르다. 나처럼 발끝으로 조심조심 걷고 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경계심이 풀린다.

 

소리를 따라 간 곳에는 한 여자가 있다. 극도로 긴장한 채 주변을 살피고 있다. 혹 놀랄까, 조심스레 뒤따라가 본다. 그리고는 역시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을 걸어본다. “이봐요”

 

움찔하던 여자는 마치 체념이라도 한 듯 떨며 대답한다. “알았어요, 앞으론 안 그럴께요. 선처(善處)해줘요” 그렇게 뒤돌아서서 날 쳐다본 여자의 동공(瞳孔)이 확장된다. 표정은 뭐라 형언(形言)할 수가 없다. 겁먹은 것 같으면서도 뭔가 찾던 걸 발견이라도 한듯 기뻐하는 얼굴이다.

 

“조용히 하고 날 따라와요” 내 손을 낚아챈 여자는 마치 이곳이 처음은 아닌 듯 능숙한 솜씨로 달리기 시작한다. 발소리가 고요하던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그에 맞춰 어디선가 어지러운 구둣소리가 들린다. “거기 서!” “재료가 달아난다!” 호통소리와 함께 내 심장박동도 미친 듯 고동(鼓動)친다.

 

Chapter 4. 자기소개

 

궁지에 몰렸다. 사면초가(四面楚歌)다. 급박한 얼굴로 당황하던 여자는 이내 옆방으로 나를 이끈다. 구르듯 방안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여자는 나를 바라보며 입 열지 말라는 듯 중지(中指)를 입술에 갖다 댄다. 우리를 찾지 못한 그들은 서로에게 지시하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윽고 손가락을 뗀 여자는 나지막한 소리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한다. “반갑네요, 이렇게 정말 만나게 될 줄이야” “난 비덩주의자에요. 허나 난 괜찮지만 남들은 안 되죠. 저런 나쁜 놈들” “늘 이곳에서 생명을 구하는 날을 고대해왔어요” “아무 것도 기억 못 하나요?” “깨어나면서 이전 기억이 사라졌나보네”

 

자기소개를 하는 여자의 표정은 ‘내가 해냈다’는 듯한 우월감에 젖어있으면서도 뭔가 약간 ‘맛’이 간 듯하다. 소개내용도 무슨 의미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정말 만날 줄 몰랐다니, 나를 아는 사람인가? 비덩주의는 또 뭐고. 생명을 구한다니. 문맥(文脈)이 연결이 안 된다.

 

어쨌든 날 구해준 사람. 나도 내 소개를 한다. “난 이름은 모르겠고. 왜 여기 갇혔는지 모르겠어요. 나같은 사람을 왜 여기로 끌고 왔는지” 그런데 여자가 갑자기 실소(失笑) 내뿜기 시작한다. “그럼요, 억울한 ‘사람’이죠” 유독 사람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뭔가 기분 나쁘다. 선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아니면 정신이 약간 이상한 여자든가.

 

Chapter 5. 돌변(突變)

 

아무튼 나는 사람. 고마움을 표할 줄 아는 사람. “고맙습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여자는 내 손을 잡지 않는다. 그녀는 애써 모른 척하며 말한다. “아무튼 빨리 나가요. 우리 동지들과 기자(記者)들이 밖에서 기다리니”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니. 이곳을 나가기만 하면 사람을 잡아가두는 이 범죄자들을 그냥 용서치 않으리라. 반가움에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금 밀행(密行)에 나선다. 여자가 앞장서고 나는 뒤따른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비상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몇 층을 지나자 여자는 말한다. “이제 다 왔네” 지하까지 내려간다. “주차장에 내 차가 있어요” 여자의 어깨가 환희(歡喜)로 들썩인다.

 

보무당당(步武堂堂)히 주차장으로 나아가는 문을 연다. 순간 여자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힘없이 쓰러진다. 뭘까? 흉악범들이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여자를 해친 것일까. 황급히 밖을 내다본다. 뭔가 기계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여자가 외친다. “CCTV!”

 

번개 같이 일어난 여자는 돌연 나를 밀어버린다. 계단을 구른 나는 벽에 머리를 부딪친다. 처음 일어날 때처럼 정신이 몽롱해진다. 눈앞이 흐려지는 가운데 여자의 처절한 절규가 들린다. 내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미안해요! 또 이런 것들 구하다 걸려 벌금 내긴 싫다고! 나 돈 없어! 밖에 저걸 갖고 나가야 스폰서가 돈을 준단 말야!”

 

여러 사람에게 붙잡혀 나가는 여자에게 누군가가 말한다. 그의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다. “정신 차려! 저것들은 우리를 위해 사육되는 식재료(食材料)일 뿐이야! 저것들이 있어야 너도 우리도 살찔 수 있단 말이다! 저것들 기본사료 주고 속여 넘겨 그 고혈(膏血) 빨아먹는 게 얼마나 힘든데. 너희들, 저것 당장 주방(廚房)에 넘겨!”

 

<끝>

 

※ 해설 : 2023년 지금도 기본OO 등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해 적당히 살찌운 뒤 그 고혈을 빨아먹으려 하는 일부 정치세력, 피(彼)사육체를 위하는 척하며 제 이권만 채우려 하는 일부 정치인 풍자. 오늘도 사육당하는 이 땅의 일부 유권자들, 그리고 저들에게 저항하는 이 땅의 일부 유권자들께 이 작품 같지 않은 작품 바침.

 

※ 당부1 : 허접한 글이라 그럴 리는 없지만, 혹여라도 재배포 시 필자 이름 석자 정도는 밝혀주시길 요망. 본 단편작과 관련된 모든 책임은 필자가 짊.

 

※ 당부2 : 본 소설은 비덩주의 등을 비하하려는 등의 의도는 결코 없음. 혹 불쾌하신 분들껜 진심으로 사과.

 

※ thanks for : 말 그대로 귀한 시간 쪼개 읽어주신 분들께 겸허히 감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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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소유

    필력이 엄청나시네요.

    납량특집인가요?

  • 풀소유
    오주한
    작성자
    2023.07.26
    @풀소유 님에게 보내는 답글

    무더운 날씨 식히시라고 마음도 심란할 겸 새벽에 끄적여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