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아직 일제강점기 세대가 많이 살고 있었고 사회 곳곳에 있던 빨갱이들이 반미를 선동했던것과 당시 주한민군의 여럿 범죄때문에 국민들이 많이 반일 반미 성향이 지금보다도 매우 강했던 97년의 대한민국의 인식이였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좋은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자면서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지금의 한일관계를 토대를 만들고 당시 덕분에 대한민국에 일본 문화가 많이 들어오고 한일 교류가 싹이 트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인정했는데 이 사과는 한국을 지칭한 사과라는 점공식문서화가 이루어졌고, 자민당 보수정권의 사과라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사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의 외교도 좋았는데 당시 반미감정이 매우 심한 상황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단 빌 클린턴과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이며 미국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했으면 한미간의 안보체제도 강화시켰다.
그리고 칠레와의 자유무역도 좋았는데 이것은 한국의 최초의 자유무역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경제의 높은 무역의존도로 전기·전자분야의 제조업이 발달한 한국은 구리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국내 구리수입의 30%를 공급하는 칠레와의 FTA는 상호 보완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FTA 체결을 통해 상대국의 투자시장이 확대되고 투자보장이 강화됨으로써 우리 기업의 안정적인 투자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 기업들은 해당국을 거점지역으로 삼아 주변 국가들의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며, 해당국이 다수국과 FTA를 체결한 경우 무관세 특혜를 받는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특히 칠레는 한국과의 FTA 등 전세계 54개국과 FTA를 체결하였으며 남미 공동시장을 통해 남미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고 한미fta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친북외교로 다 말아먹음
쌀을 핵으로 만든 연금술사
김대중 아니었으면 지옥소녀 애니 못보긴 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