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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 한때 사회주의를 진지하게 신봉했던 내가 홍준표 지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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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인근 학교에서 열린 마르크스 주의 포럼회 '맑시즘'에 아무 생각 없이 참석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게 시작되었다.

자유롭게 열린 포럼인 맑시즘에서는 반드시 무엇을 들어야하고 하지 말아야하는 것은 없었다.

마치 대학때처럼 내가 선택해서 그 시간에 맞추어 강의를 들으면 그만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간이 캐노피가 있었고, 

그곳에서 신청서를 작성한 후 회비를 걷었다.

신청서에는 간단한 개인정보와 소속을 물었는데,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개인 자격으로 왔기 때문에 나의 소속은 '없음'이었다.

 

 

맑시즘 포럼회에 홀로 개인적인 신분으로 참석해 쭈뼛거리고 있으면

근처에 있는 다른 소속 무리 몇명이 접근해오는건 예사가 아니다.

마치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지도를 보며 쭈뼛거리는 관광객들이

소매치기와 기념품 강매꾼들의 좋은 타겟이 되듯.

 

나 역시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도된것인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수업을 듣고 있을때 내 옆에 앉은 여성이 볼펜을 빌려주었다.

해당 강의에서는 필기를 위한 종이와 간단한 필기구를 주었지만,

당시 나는 붉은펜이 나오질 않아 고생했는데,

이걸 눈치채고 그 여성이 자신의 붉은펜을 준것이었다.

 

 

우리는 곧 친해졌다.

그녀의 근처에는 다른 남성과 여성 한명씩 있었고, 

통성명과 함께 특정 단체 이름을 댔다. (따로 언급은 안하겠음)

살갑게 웃으며 대하는 그 세 사람의 모습에 나도 점점 마음이 열렸다.

 

 

나는 그곳에서 강의를 세가지 들을 수 있었다.

불평등과 불공정, 소외 받는 자들에대한 연민,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반드시 건설하고 싶다는 투지로 내 마음은 점차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특히 마지막 강의에서는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당수인 알렉스 켈리니코스가 직접 나와

동시통역으로 사회주의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며 연대를 강조했을때 나는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집으로 갈때 쯤,

볼펜을 빌려주었던 여성이 식사를 하고 가자는 제안을 했다.

벌써 7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라 어디서 밥을 먹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대단히 넓은 학생식당 같은 곳이었지만, 온통 회색빛에 허름했다.

저렴한 국밥이 나왔고, 모두가 앉아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었다.

 

 

식기구들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사이로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바르샤바의 시민(Варшавянка)'이 흘러나오고 있었던걸 알았다.

노어노문을 전공해 어렴풋이 역사시간때 잠깐 들어보았던 이 노래가

가사없이 흘러나오고 있는걸 듣고는 정말 이곳은 혁명 하나로 뭉쳐있는 사람들만 모여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앉아 밥을 먹었고,

그 무리는 열댓명 되었다.

볼펜을 빌려준 그 여성은 그 모임의 간부였고,

앞으로 자신들의 모임에 참석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처음부터 이런 제안을 한다는게 부담스럽기도 했기에 나는 거부를 했다.

 

그러나 그들과의 연락을 끊은건 아니었다.

단체 카카오톡 방을 만들은 그들은 그곳에서 열렬히 토론했다.

간혹 그들은 필독도서 목록을 보내주거나,

사회적 이슈가 떠오를때마다 그 정보를 공유했다.

시위에 나가면 경찰들이 어디에 모여있는지,

어느곳이 보안이 허술한지를 공유했고,

갠중에는 시위중에 맞았다며 그 상처를 찍은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세월호 집회에 참석하며 나의 오프라인 활동은 시작되었고,

전국 대학에 소그룹 형태로 엮여있는 그 네트워크 인물들과 카카오톡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폭풍같던 1년이 흘렀다.

 

 

나는 다시 2015년 맑시즘에 참석했다.

신청서를 작성한 나의 소속은 그들의 단체이름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볼펜을 빌려준 그 여성과 그 무리에 나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시끄러운 일이 생겼다.

타 그룹의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난것이었다.

진보그룹은 필연적으로 노선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그중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혁명적인 이념으로 뭉쳐있는 단체의 사람 몇명이

작정한듯 우리 사람들을 향해 공개 비난을 한것이다.

(맑시즘은 강의가 끝난 후 청중들의 자유 발언시간이 있다)

 

 

강의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아수라장속에서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노동자 계급을 배신하지 말고, 부르주아의 하수인이 되지 말라는 그들은

욕설과 함께 퇴장했고 나는 그 아수라장속에서 결국 강의실을 나와 홀로 집을 갔다.

노선투쟁이라는것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그 후 소모임에서도 나는 개인적인 노선투쟁을 겪었다.

나는 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이념이고, 

부가 결국에는 재분배 되어야한다는것에는 강하게 동조했으나,

탈원전, 레디컬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이었다.

탈원전 도서로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읽고,

페미니즘에 대해서 '혁명의 영점'을 읽은 후 자신의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는 두가지를 반대했다. 그리고 분위기는 싸해졌다.

날을 잘못잡은 것이었다.

 

 

급진단체로부터 소위 '반동'으로 찍혀 

모두가 비판을 당한 이 와중에 

오늘 열린 토론회의 목적은 

진짜 독서토론이 아니라,

사실상 중앙에서 권해준 책을 읽고

'사상이 흔들리지말고 다같이 한 뜻으로 결집해라'였기 때문이었다.

난 그때 그걸 몰랐고, 결국 난 극도로 심한 비난을 받았다.

동지가 한순간에 반동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나는 모든 모임에서 배재되었다.

대놓고 왕따를 시킨건 아니었지만,

일정을 나에게 따로 공유해주지 않았다.

나 역시 단체 톡방을 나감으로서 그들과 뜻을 달리했고,

그 후 나는 맑시즘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가끔 볼펜녀가 어떻게 지내냐라며 은연중에 감시하듯 카톡을 보내긴 했지만,

이미 도끼눈으로 날 쳐다본 그녀에게 질릴대로 질린

나는 그녀를 차단함으로서 그 인연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게 나는 정치적 방황을 했다.

한때 '계몽'에 선두 주제로 서 있던 탈원전과 페미니즘은 

내 예상대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었고,

파쇼타도의 대안점으로 문재인을 지지하라고 했던 그들은

그 어떤 당론도 내지 않은채 은근슬쩍 다른 군소정당을 지지하라며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호소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과오나 실수따위는 눈감고 지나가고 

능구렁이 담넘어가듯 태세전환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 난 더 환멸을 느꼈다.

 

 

 

2021년, 홍준표를 알게되었다.

내가 과거 소속해있던 단체에서는 천하의 반동이자 악질급으로 찍혀있던 그 인물이 맞았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홍준표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건강한 정치관을 가진 그가

적어도 내가 몸담았던 그 허세와 거짓으로 가득찼던 그 단체보다 백번 나았기 때문이었다.

유튜브로 그의 연설을 들었고, 나는 오랜 정치적 방황을 끝낼 수 있었다.

 

 

정치는 계급투쟁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하는 것 처럼

빈자와 부자,

이대남과 이대녀,

노동자와 기업가.

한쪽을 적으로 두고 타도해야하는것은 정치가 아니다.

 

오히려 홍준표처럼 

자신의 실수는 인정하되,

아닌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공정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계급투쟁이 아닌, '합리주의'를 선택한 그가 진정한 이 시대의 혁명가였다.

 

 

그래서 난 지금,

내가 한때 그토록 힐난했던 그 반동,

정치인 '홍준표'를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지지하고 있다.

비록 그가 이번 경선에서는 패배했을지 몰라도,

분명 그는 다시 보수 혁명의 바람을 불러일으킬거라 믿는다.

유배갔던 패장 레닌이 거대한 바람이 되어 돌아와 러시아를 뒤엎었듯이.

홍준표는 거대한 바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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