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승만 대통령은 기분이 저조한(down) 상태이다. 협상에서 너무 양보하지 않았는지, 다가오는 정치회담에서 한국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지 걱정하고 있다...」올리버(Robert T. Oliver) 교수(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는 휴전협정 조인후의 이승만 대통령이 몹시 걱정되었다. 곧 내한한다는 덜레스 미국무장관과 이승만의 평생목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한 ‘담판’을 앞두고 한국대통령의 개인 자문역으로서 난감한 장애물이 또 생긴 것이다. 판문점에서 북한대표 남일이 미국의 ‘대폭 양보‘를 공개함으로써 ’미국의 배신‘을 알게된 이승만이 격노하여 이 사실을 외신기자들에게 폭로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 덜레스와의 회담이 순조롭기는커녕 또 하나의 폭탄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 (올리버 [이승만의 대미투쟁, 상-하] 비봉출판사, 2013. 원제: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
◆“옳지 않은 때 옳지 않은 방법으로 성립된 옳지 않은 휴전”
미국의 확고한 응답을 기다리는 이승만대통령은 휴전협정 조인 후 닷새가 지난 8월 2일 외국기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발표하였다. 곧 방한하는 덜레스와의 협상을 앞두고 강력한 한국입장을 재다짐하려는 것이다.
*문1=정전이 조인된 이때 한국이 취할 적당한 정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답=중공침략자들이 한국으로부터 철퇴하고 그 결과 한국이 자동적으로 통일 될 때까지 정전이나 평화를 수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한국정부가 취하여왔음은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그러나 로버트슨씨와의 회담에서 우리는 아이젠하워대통령이 정치적 방법으로 한국을 통일하려는 그의 계획을 시도하는 동안 우리들의 목적달성을 몇 개월 연기하는데 동의하였던 것이다.우리는 그 기간에 정전을 방해치 않겠다는 우리들의 합의를 준수할 것이며 정치회담 계획이 성공하기를 희망한다.*문2=그 정치회담에서 유엔과 한국은 어떠한 정책을 취해야 할 것인가?◉유엔과 한국은 우리의 공동목적, 즉 한국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완전히 협력해서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엔이 이 목적을 견지하는 한, 한국으로선 단독적 행동을 취할 아무런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이 이 입장으로부터 뒤로 물러서는 경우, 우리는 단독으로라도 사태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국가로서 생존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생존은 다른 자유국가들의 생존과 큰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엔이 우리를 도우라 온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적을 격파함으로써 우리의 공동안전보장이 강화되며 세계대전의 위험이 적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그러나 유엔의 몇몇 국가는 우리의 공동의 적과 유화함으로써 자기네들 자신의 잠정적인 안전을 꾀하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으로 그들은 침략에 의한 패망의 시기를 좀 늦출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국엔 그들은 최초의 희생자는 아닐망정 최후의 희생자가 될 따름이다.특히 현재 공산국가들이 자기네들 자신의 내부적 곤란을 당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자유세계의 효과적인 방위를 위해선 우리의 결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선전 협박 모욕 욕설은 공산측이 우리들에 대하여 가림없이 쓰는 냉전의 무기이며, 그들은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말만 듣기를 요구한다. 모든 자유국가 정부는 이것이 공산측이 가장 잘 쓰는 간계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문3=한국의 부흥을 빨리 하기 위하여 미국회가 신속히 예산을 통과시켰는데?◉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미국 국회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 원조의 소기목표를 위하여 1달러라도 뜻있게 쓰도록 힘쓸 것이다. 1952년5월29일 조인된 협정에 의하여 합동경제위원회가 최고기획수립체로서 설립되었는데 현재 모든 원조자금에 대한 사용계획을 작성하고 있다.*문4=미국민에게 보낼 특별한 말씀은?◉우리를 지지하여 준 미국민과 기타 세계각국 국민에게 나는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올린다. 그중 수천수만의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양보하지 말라는 격려의 말을 전문과 서신으로 보내왔으며 그 외에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기도하여주었다. 이번 전쟁은 최종 승리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번 정전(휴선)이 옳지 않은 때 옳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어진 옳지 않은 정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많다. 우리가 이미 치른 것보다 그리 많지 않은 희생을 치르고서도 완전한 승리를 획득할 수 있었을 전쟁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은 더욱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침략에 절대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자유세계도 그동안 우리들의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였다는 것이 영원히 옳은 것으로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후략) ([조선일보]1953.8.4.)
◆경무대 협상 제2막...두 거인의 역사적 도박판
‘서울공항’이라 불리던 여의도 비행장, 1953년 8월4일밤 10시 5분 시커먼 미군 4발기가 어둠을 뚫고 한강 한가운데 내려앉았다. 온다던 덜레스(John Foster Dulles, 1888~1959) 미국무장관이 예정보다 12시간 늦게 서울에 왔다. 지난 달 경무대서 15일간 날마다 이승만과 씨름했던 로버트슨이 동행했음은 물론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협상도 끝나고 휴전협정도 조인되었으며 이제는 첨예하게 대립해온 한미방위조약 체결문제를 매듭지을 시간이다. 육해공 3군군악대가 미국 국가를 연주하고 예포(禮砲) 19발을 쏘아 국빈급 환영을 베풀었다. 백두진 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3군수뇌가 출영하였고 한복차림의 소년소녀와 부인 대표들이 증정하는 꽃다발을 받은 덜레스는 짤막한 도착성명을 읽었다. 덜레스는 백선엽 육참총장의 안내로 국군의장대를 사열하였다.워싱턴을 출발할 때 그는 “한국전쟁이 종결된 지금 또다시 구우(舊友:old friend)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할 수 있음은 평생의 기쁨”이라고 말했다. 덜레스는 1950년 6월 북한군의 침략 1주일 전에 백악관의 고문으로서 방한했었고, 특히 이승만과 프린스턴대학의 ‘박사 선후배’사이로 이승만보다 13살 연하이다. 여의도 환영행사가 끝나자 덜레스는 가로등도 파괴된 밤거리를 달려 필동(筆洞) 소재 미8군 ‘영빈관‘(VIP숙소)에 여장을 풀고 첫 밤을 지냈다.
★이승만, 덜레스 환대...경무대 대식당을 건국후 처음 사용
이튿날 5일 아침 9시57분 경무대에 도착한 덜레스를 환영한 이승만 대통령은 본격적인 ‘한미동맹’ 체결 준비에 돌입하였다. 덜레스가 전해준 아이젠하워 대통령 친서에는 “3년간 전쟁에서 보여준 이승만대통령의 영웅적 투쟁을 찬양하고 한국 국민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며 한미방위조약과 한국통일방안 및 경제원조 등 최대의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강력한 양국유대를 전세계에 과시하고 싶다”는 등 요란한 말잔치 선물이 가득하였다.첫 날 2시간 가까이 진행된 1차 회담은 ‘화기애애’하였다고 신문들이 보도하였다.꼬박 사흘 계속된 회담은 경무대에서 이승만-덜레스가 단독협상을, 중앙청에서 변영태 외무장관이 지휘하는 한국팀과 로버트슨 등 미국팀이 별도 실무회담을 병행하였다.중요한 국제동맹의 조문들을 결정하는 나날인지라 올리버는 이승만의 특별지시에 따라 영어문장을 꼼꼼히 살피고 미국인들을 설득하는 역을 맡았다. 올리버는 일단 안도하였다. 처음부터 이승만이 ‘미국의 위약’을 성토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경무대 대식당까지 문을 열어 덜레스에게 화려한 만찬을 베풀어주기 때문이다. 그 대식당은 이승만이 이화장에서 경무대로 이사 온 이래 5년 만에 처음 사용되었다. 대통령 부부는 평생 몸에 배인 절약생활에다가 전쟁 중 극도의 긴축을 더하여 대식당은 늘 문이 잠겨있었던 것이다.
◆불 뿜는 쟁점 <유사시 미국의 즉각-자동 개입>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협상이 시작되자 이승만의 ‘휴전거부 본색’이 드러난다.잘 알려졌듯이 그 휴전반대는 ‘한반도의 통일 없는 강대국용 일방휴전’이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을 완성한 후에야 휴전 아닌 종전, 영구 평화체제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 한국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의 너무나 당연한 기본원칙이다.
★이승만이 판문점 휴전협정에 서명을 거부한 이유그런데 이 휴전거부에는 숨은 목적이 또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미군을 철수 못하게 붙잡아 두자는 묘수였다. 휴전을 결사반대하며 ‘단독 북진통일’을 줄기차게 외친 까닭이다. 휴전후 미군마저 철수해버리면 이승만이 무슨 일을 벌일는지 전세계가 걱정하는 상황을 만든 것. 한국군이 진짜 단독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니 ‘미군이 주둔해서 감시해야한다’는 공감대가 미국정계는 물론, 미국민여론까지 스며들게 되었다. “이승만이 요구하는 한미동맹은 당연하다” 놀랜드(William Fife Knowland,1908~1974) 상원의원 등 미의회의 이승만지지 의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와같이 한미동맹 체결의 당위성을 국내외적으로 확보하며 이승만은 느긋하게 덜레스의 방한을 기다려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덜레스가 오자 극진히 모시는 79세 대통령의 기막힌 변신을 보여준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승만 대통령의 ‘한미동맹’ 구상의 핵심은 NATO와 같은 ‘양국일체’(兩國一體) 군사동맹이 필수였다. NATO 제5조는 어느 한 동맹국이 공격받으면 전체 동맹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 즉시 유엔에 보고하고 자동적으로 총동원체제로 전환하여 방어전에 나서는 의무를 규정한다.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공동운명체의 공동방위정신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례, 이승만은 공산군의 6.25침략에 유엔군이 즉각 개입하였던 것처럼 한국과 미국이야말로 빈틈없는 결속체로 묶여야하고 그것을 영구불변의 문서로 만들어야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덜레스가 내놓은 미국측 조약초안에는 NATO식 조항이 보이지 않았다.유사시에 미군의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군사개입’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것은 한미방위조약의 심장, 아니 대한민국의 생명줄이다.
★덜레스, 휴전협정처럼 한미방위조약도 미국안을 밀어붙이다
“미국은 지금 한국과의 관계를 새로운 토대위에 정립하려고 합니다.”덜레스가 이승만의 말을 미리 막으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지금까지 우리는 일부 강대국들과 한국에 관한 문제를 결정하고 그것을 한국에 통보해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는 안합니다. 내 자신이 여기에 왔다는 사실자체가 엄청난 큰 의미가 있지요. 강대국 국무장관이 약소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정책을 조율하러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움직인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던 일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어떤 문제에 대하여 내린 결정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입니다.”그러니까 강대국 국무장관이 몸으로 직접 약소국 한국의 방위를 보증하러 왔으니 ‘잔말 말고’ 미국측 조약안을 그대로 다 수용하라는 간접 협박이나 다름없다.잠시 후 이승만이 입을 열었다.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지오” 올리버가 거들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장관께서 아시아를 상대하는 방법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덜레스가 동의했다. “많은 나라들이 강대국과 마주앉기를 좋아하지 않지요”이승만과 덜레스는 방을 나서 잔디밭에 차려진 점심식탁으로 향했다. 이승만의 기분이 좋아진 듯 보였다. (올리버, 앞의 책)
★이승만 격노 “자동개입 조항 없는 조약은 쓸모 없다”그날 오후 벼락이 떨어졌다. 이승만이 노발대발 전화통에 불이 난다.“완전실패야, 한국 홀로 싸워나갈 수밖에 없소. 미국이 공동투쟁에 동의하지 않으면 모든 걸 잃을 것이오. 당장 조약문을 가져와 보시오”덜레스와 회담을 이어가던 이승만이 폭발하여 올리버에게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올리버는 변영태 외교팀과 로버트슨 팀이 따로-함께 마련한 조약 초안을 들고 이튿날 김용식과 함께 경무대에 들어갔다. 초안을 훑어보는 이승만이 말했다.“어디 있소? 미국이 북한에서 공산당을 몰아내는 군사행동을 한다는 보장 말이오?”올리버는 우물우물 대답한다. 여기엔 그런 조항이 없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뭐라고?” 또 폭발하는 노기가 대통령의 얼굴 줄음 살을 실룩거린다. “그만두시오. 우리는 모두 실패하였소. 그런 조항이 없는 조약은 아무 쓸모가 없단 말이오.”올리버와 주일공사 김용식(金溶植,1913~1995)은 예상보다 더 격렬한 대통령의 분노를 잠재우려 애쓴다. 손가락을 훅훅 부는 이승만은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다.“회의를 다시 하시오. 덜레스가 듣든 말든 그건 별개문제니, 이 조항은 반드시 합의문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승만의 불같은 명령이다. 어? 조약이 아니고 합의문? 순간 올리버의 머리속이 ‘반짝’ 빛을 발한다.
다음날 백두진-변영태 실무회의 팀은 밤새 씨름을 거듭한 나머지 양국 ‘공동성명서’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승만-덜레스의 오전 회의에 참석했던 올리버는 중앙청으로 내려와 그 ‘공동성명서’ 초안을 가지고 다시 경무대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눈빛이 빛을 뿜는다. “이거 괜찮군. 덜레스가 동의할까?” 올리버가 건네준 문서를 읽어본 이승만이 말했다.올리버는 모두 덜레스와 로버트슨이 동의했던 내용이라고 대답하고 “전략상 공동성명서 공개에는 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그러자 이승만이 말했다. “덜레스가 여기에 서명만 하면 되는 것이오” 공개여부는 아무래도 괜찮다고 했다.
★이승만 “전장에서 못 이룬 것을 공산당이 테이블에서 준답니까?”
이승만은 덜레스와 세 번째이자 마지막 회담을 열었다. 그 자리에 배석했던 올리버는 “한-미 양국 거두의 뜨거운 설전이 ‘도박사의 대결’을 보는 듯, 한국전쟁 드라마의 하이라이트”같았다고 길게 기록해 놓았다. (올리버, 앞의 책)덜레스: 대통령 각하, 결론에 도달했으니 동의해주시기 바랍니다.이승만: 장관께서는 내 뜻을 알고 계시잖소. 그 점을 논의합시다.덜레스: 논의할 것이 없습니다. 유엔 각국은 우리가 취할 입장을 결정하였고 이것을 바꿀 수 는 없습니다.대통령은 벌떡 일어나 노기 띤 어조로 말했다.“그렇다면 장관은 왜 오셨소? 나와 조건을 의논할 생각이 없다면 한국까지 올 필요가 없잖소? 전문으로 보내면 될 것 아니오?”덜레스가 설득조로 대답한다. “각하를 무시려하는 게 아닙니다. 각하의 휴전 승인을 받으려고 내가 온 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덜레스가 말을 이어간다.“우리목표는 각하의 목표와 같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대통령께서는 전쟁으로 달성하기를 원하고 우리는 평화적수단으로 달성하기를 원하는 것 뿐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고집하십니까?”이승만은 참착하게 천천히 입술을 뗀다.“장관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이 전쟁으로 한국만큼 큰 고통을 당한 나라고 없고, 평화적으로 우리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면 한국 국민보다 더 기뻐할 국민도 없을 것이오. 장관께 묻고 싶은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것이오. 만약 평화적 협상을 통해 양국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경우, 그 다음은 어떻게 된다는 것이오?”덜레스가 머뭇거리자 이승만은 입가에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전쟁으로 얻을 수 없던 것을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장관에게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단 말이오?”덜레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의 마지막 카드를 던진다.“만일 90일이내에 정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장관께서는 미국이 우리와 전투를 재개하는 데 동의하겠소?” 직격탄을 맞은 덜레스는 표정을 가다듬고 다짐하듯 미국의 카드를 던진다.”우리는 실패시키지 않을 작정입니다. 실패는 미국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목표가 성공할때까지 평화적 수단을 밀고 나갈 결심입니다.“
한 시간 넘게 계속된 회담은 침묵과 말씨름과 뜨거운 열기를 뿜는 역사의 카지노였다. 번갈아 벌떡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하늘을 내다보며, 더 이상 말상대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서성거린다. 탈출구는 어디인가? 한국의 운명을 건 딜레마에 빠진 두 사나이는 ‘합의’가 불가능함을 진작부터 알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가능한 일은 이미 유엔이 서명한 휴전협정 제4조의 이행 뿐, 결국 마지막 해결책은 정치회담으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올리버, 앞의 책)
◆한미동맹 체결...‘미군의 무기한 주둔’ 확보 성공
마침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승만의 요구사항중 하나는 명문화하는데 성공하였고 하나는 제외되었다.하나는 ‘미군의 무기한 한국 주둔’ 보장이었고, ‘자동 개입’은 조약문에서 빠졌다. 겨우 공동성명서에 ‘즉시 그리고 자동적으로 반격’이란 문구를 넣느라 몇 밤을 새웠다.
[조선일보 보도] 이승만 대통령과 덜레스 미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합의를 본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은 8일 상오10시 6분 경무대에서 이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위원 일동 및 국회 조-윤 부의장등 대표 일행, 그리고 미국측 브릭스 주한대사와 스티븐스 육군장관, 로지 유엔대표, 로버트슨 국무차관보등 일행과 내외기자 다수 참석리에 양국정부를 대표하여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장관이 각각 2매로 된 조약문에 각기 서명을 하여 조인을 완료하였다.조인은 불과3분간에 이루어져 10시9분에 마치었다. 이대통령과 덜레스 장관은 곧 이어 장문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다.이리하여 덜레스 장관일행은 낮 12시10분 이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각료 및 기타 다수인사 환송리에 여의도 공항을 출발할 수 있었다.([조선일보]1953.8.10)
*공동성명 전문*우리들의 우호적이며 이해에 넘치는 협의는 한미양국이 한국통일을 포함하는 양국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서로 친밀한 협의를 하여 나갈 결의를 명백히 표시하는 바이다.우리는 오늘 공동방위조약 원안에 가조인하였다.이 조약은 우리 양국이 공동위협을 막기 위하여 연합해서 공동행동을 취하도록 하기위한 것이며 이 조약은 한국에서의 공산침략의 위협과 싸우기 위하여 우리 양국을 결합케 하였던 유대를 더욱 공고히 만들게 될 것이다. 우리 양국은 이 조약이 효과를 발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헌법에 의한 수속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미국의 경우에서 볼 때 이와 같은 헌법에 의한 수속이란 상원에 의한 인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금주 휴회에 들어갔으므로 내년 1월까지는 정기회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우리들이 오늘 취하게 된 행동에 이르기까지 서로 교환된 견해를 미상원 지도자들은 충분히 통고받아 왔으며 따라서 미국 상원이 급속히 찬동적인 행동을 취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성심으로 희망하고 있다. 오늘부터 이 공동방위조약이 발효케 되는 날까지 사이에 한국에 있는 우리 양국군대는 유엔군사령부에 소속되며 동 사령부는 정전조항에 의거하여 행동할 것이다. 휴전협정에 위반하여 공산군이 한국에 불법 무력공격을 가하는 일이 생길 경우 한국군을 포함하는 유엔군사령부는 그와 같은 불법공격을 동 사령부자체와 예하군대에 대한 공격이요 위협임으로 즉시 그리고 자동적으로 반격을 할 것이다.불법공격에 대한 이와 같은 반격은 새로운 전쟁이 아니며 정전으로 말미암아 종결된 능동적 전투행위를 공산군이 재개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유엔 사령부는 이러한 공격에 대비하여 부단히 감시를 할 것이다. 우리 양국정부는 공동방위조약이 발효케 된 이후 한국이 한국에 주류케 할 군대의 지위 그리고 우리들의 공동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한국측 시설과 인원의 사용에 관한 협약을 즉시 상의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한편으로 한국은 계속 유엔군사랑부와 협력할 것이며 한국에 있는 유엔군의 지위와 그들에 대한 한국측 시설 및 인원의 사용은 현재대로 계속될 것이다.정전협정에 의하면 정치회담은 3개월 이내 동1953년 10월27일 이전에 개최되기로 되어있다.이 정치회담에서 한국대표단은 한국 및 기타 유엔군사령부측 각국대표단과 협력해서 역사적인 한국을 하나의 자유독립국가로 평화리에 통일하기에 노력할 것이다.우리와 우리의 보좌관들은 충분하고도 만족할만한 의견교환을 이미 끝마치었으며 우리는 그것이 정치회담에서 예비적인 기초가 되리라고 희망하며 또한 믿는 바이다. 만약 정치회담이 90일간 개최된 후 그 본래의 목표를 달성키위한 모든 기도가 헛된 것이었으며 공산측은 동회담을 이용하여 침투하고 선전하고 또는 기타 방법으로 한국을 곤란케 만들려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 양국정부에 명백히 되었을 떼에는 우리들은 동회담에서 동시에 퇴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후 우리는 통일된 자유독립 한국을 성립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할 것인바 이 목표는 제2차대전중 한국이 그 전후 목표로 확정한 것이며 유엔 역시 이를 그의 목표로 수락하였으며 또 이는 계속 미국외교정책의 중요한 목표가 된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 자기문제를 처결한 고유한 주권적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그러나 한국은 서로 합의를 본 정치회담 기간중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일방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기로 동의하였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한국의 경제를 부흥하기 위하여 작성된 3개년 내지 4개년계획은 한미양국대표를 통하여 통활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이 계획은 미국국회에 의하여 예산이 통과 되는대로 약 10억불의 자금을 사용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장차 국방비에서 절약되는 금액 중에서 이미 2억불은 한국을 위하여 할당되었다.우리는 또한 한국 육해공군을 유지 발전하는데 관계된 제반문제에 관하여 예비적인 의견을 교환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해서 우리 양국정부 사이에 확립된 관계가 극동에 있어서의 독립과 자유를 진전시키는데 중요한 공헌을 할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공동안전보장에 대한 불굴의 신념을 가지고 또한 유엔헌장을 충실히 준수하는 우리는 통일된 민주독립국의 회복이라는 우리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같이 앞으로 나아갈 의도이다.여기 표시된 것 이외에 우리들의 협의의 결과 표명 또는 제시된 약속이나 합의된 것은 하나도 없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全文(현행)◀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본 조약의 당사국은 모든 국민과 모든 정부와 평화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재인식하며 또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평화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이 태평양지역에 있어서 고립하여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도 가지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하여 그들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통의 결의를 공공연히 또한 정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또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제1조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한다.
제2조 당사국중 어느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와 상호원조에 의하여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고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실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 하에 취할 것이다.
제3조 각 당사국은 타당사국의 행정지배 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당사국의 행정지배 하에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제4조 상호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제5조 본 조약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에 의하여 각국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비준되어야 하며, 그 비준서가 양국에 의하여 워싱턴에서 교환되었을 때에 효력을 발생한다.제6조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후에 본 조약을 종지시킬 수 있다.
*양해사항어떤 체약국도 이 조약의 제3조 아래에서는 타방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 또 이 조약의 어떤 경우도 대한민국의 행정적 관리하에 합법적으로 존치하기로 된 것과 미합중국에 의해 결정된 영역에 대한 무력공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합중국이 대한민국에 대하여 원조를 제공할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이승만의 묘수! 미군을 ‘인계철선’ 배치...‘휴전선 인질’
마침내 이승만은 평생의 꿈 ‘한미동맹’을 이루어냈다.한반도에 침략의 욕심이 없는 나라 미국의 기독교적 자유의 십자군을 ‘영구적으로’ 붙잡아두는 군사동맹 체결을 성공시키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전문 6개조항인 조약은 무엇보다 미국이 이승만의 단독북진 등 군사적 돌발행동을 예방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의 목적에 배치되는 무력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한다”고 다짐한 제1조가 그것이다.이것만으로 모자라서 미국 의회는 '양해사항'까지 덧붙였다. 즉, 한국군이 한국영토 이외의 지역을 공격할 경우엔 미국이 원조해선 안된다는 것, 이승만의 단독북진 방지를 위해 2중수갑을 채운 것이다. 이승만은 미육해공군을 대한민국 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제4조)시키는데는 뜻을 이루었지만, 절치부심 갈망하던 NATO형 ‘즉시 자동개입’ 조항을 명문화하는 일은 끝내 포기해야 했으며 미국의 주장대로 ”각자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제3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즉 아무리 긴급한 사태라 할지라도 ‘선전포고’는 미국의회의 권한에 따를 수 밖에 없으니 승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어렵사리 공동성명서엔 ‘즉시 자동개입’을 한줄 반영했으나 믿을 수 없는 것이 공동성명이다. 미군의 ‘무기한 주둔’도 1년짜리 ‘전세’와 같은 것, 제6조는 일방이 원하면 1년후 종지(終止)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결국 미국은 일본이나 필리핀과 맺은 조약수순을 넘지 않았던 것이다.
★조약에 못 넣은 '즉시 자동 개입'을 끝내 실현하다
그토록 끈질기게 매달렸던 이승만은 역시나 덜레스의 압력에 완패한 것인가? 아니다. 이승만이 누구인가. 그의 컴퓨터 두뇌는 금방 새로운 ‘묘수’를 만들어낸다.무려 1년 넘게 질질 끌던 한미동맹이 다음해 11월18일 발효되었을 때, 미군의 ‘즉시 자동 개입’문제가 해결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어떻게? 이승만의 기막힌 전술! ”주한미군은 반드시 한강 이북에 주둔해야 하고 그 주력부대는 서울 북방 휴전선에 따라 배치되어야 한다“는 이승만의 요구에 미국은 그대로 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왜?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바로 이런 것!
◉이승만의 병법=주한미군을 북한군의 침투통로 파주 문산과 동두천, 포천, 의정부에 집중 배치한다. 휴전선 턱밑의 미군이 공격을 받으면 미의회의 승인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 반격, 미군통수권자 대통령 명령으로 정당방위 자위권(Self-Defense)이 발동된다. 바로 ‘인계철선’((引繼鐵線, tripwire, trigger)의 역할, 미군은 사실상 ‘휴전선의 인질’ 그것이다. 유엔헌장 51조의 자위권도 있다. 전쟁으로 확대시 유엔군의 재파병도 가능하다. 조약문에 없어도 더욱 신속대응 효과 만점, 국제법박사이자 용병술의 전략가 이승만의 묘수 아닌가. ◉미국의 속셈=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때 가장 시급한 목적은 이승만의 단독북진 예방이다. 서울 북방에서 한국군의 북진 동태를 감시하고 휴전선에서 한국군의 북한 진입을 막아내려면 서울과 휴전선 사이에 주둔하지않으면 안된다. 이승만의 요구만이 아니라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었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두 국가이익의 만남! '남침 저지'+'북침 저지'의 결합이다.이처럼 이승만은 전략을 알고 미국을 알고, 강대국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았다.그리하여 미국은 이승만이 노리는 침략방패막이 인계철선 노릇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한국군의 단독북진도 예방했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경제번영에 기여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한미동맹은 이승만의 국가독립 수호를 위한 으뜸 공적이오, 휴전 후 70년간 북한의 재침략을 막고 동북아의 전쟁을 없애 ‘평화와 번영’을 이루게 만들었다. 미국에 조약체결을 요구하면서 이승만은 여러번 말했다. ”이 조약은 북쪽 공산권의 남침은 물론, 남쪽으로부터 일본의 재침도 막기 위한 ‘2중봉쇄(dual containment) 방벽“이라고, 이러면 미국이 아시아 전쟁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그 덕분에 G7선진국이 된 일본과 중국은 물론, 미국도 이승만에게 감사해야 할 역사적 기념물이다.▶이처럼 북한의 침략을 막아 한국을 지켜준 '휴전선의 인질' 미군을 누가 밀어냈는가?맹목적 민족주의를 내세운 YS 문민정권, 햇볕정책 핑계로 북한 김정일을 지원한 DJ 좌파정권,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될 나라라고 공언한 노무현 정권, 북핵은 김정은의 자위책이라며 대변한 문재인 정권. 하나같이 국가보다 권력유지가 앞섰던 반미친북세력들이 미군을 한강이남 멀리 평택으로 쫓아버리고, 사드 배치까지 거부 방해하였다. 그런다고 한미 자유동맹이 끊어질 줄 알았던가. 다행히도 이제는 주둔지 위치가 무의미해진 우주전쟁시대, 한미동맹 덕분에 번영의 기적을 이룬 자유대한민국은 "자유통일로 광복 완성"을 부르짖는 자신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승만 ”자손만대 영구 복락의 토대 세웠다“
2년 넘게 미국의 일방적인 휴전 강요에 분노했던 국민들은 조약 체결 뉴스가 나오자 ”이제는 살았다’며 만세를 불렀다. 언론도 조약체결 현장 스케치 기사까지 실었고 거리에는 축하 행진이 이어졌다. 조인 다음 날 8월 9일 이승만은 전국민을 향하여 의미 깊은 담화를 발표한다.
★1882년 이래 역사의 반전! “우리가 잘만 하면 강국 된다”
*담화 전문*1882년 한미통상조약 이래로 오늘날 미국정부와 공동방위조약이 성립된 것은 처음 되는 일이요, 또 우리나라 독립역사상에 가장 귀중한 진전이다.강대한 이웃나라 중간에서 약소국이란 명칭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우리 금수강산에서 소산(所産)되는 물품이 풍부함으로 자고로 우리나라를 탐내는 나라들이 많아서 어떤 큰 이웃나라를 의지하지 않고는 독립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도 하에서 우리 반도강산을 변동되는 주인 없는 물건으로 보아왔던 것이다. 우리는 자초로 국제상 도의를 믿고 무력을 무시한 결과로, 무력을 숭상한 일본이 서양각국의 지지를 받아서 우리나라 전고에 없는 치욕과 통분의 40년간의 노예명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이 무력을 믿고 세계를 정복하려다가 패전하게 되고 그 후에 각국이 한국을 어떻게 조치할까 하여 저희들끼리 모여서 정책을 정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 결정에 복종시키려고 노력한 결과로 필경은 남북분단의 참담한 상태를 이루었던 것이다.다행히 천의인심(天意民心)에 응하여 우리 전민족의 한마음 한 뜻과 우리 청년의 애국 충심으로 우방의 도움을 얻어 국군을 조속한 시일 내에 동양에 큰 강병이란 칭송을 듣게 된 것이니 실로 커다란 공로를 성취해 놓은 것이다.지금에 와서 이 결과로 한미방위조약이 성립된 것은 그 영향이 자손만대에 영구히 미칠 것이니 우리가 잘만해서 합심합력으로 부지런히 진전시키면 이웃나라들이 우리를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고 무시하는 자가 있어도 침략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이번에 덜레스씨 일행이 여기 와서 성공한 것은 방위조약으로써 영원한 복리를 우리에게 줄만한 토대를 세워 놓은 것이니, 첫째로 미국이 10억불의 예산으로 우리 건설을 돕기로 타스카씨의 제의로 거의 성안이 되어서 내년 국회에서 통과될 것인데 미국대통령의 특별주선으로 2억불을 불일내로 지출해서 우리 건설과 공업등 발전을 시작하기로 된 것이니 지금부터 오는 정월까지를 한하고 계획을 만들어서 다 쓰게 될 것인데 지나간 5~6년 동안에 미국에서 우리에게 원조를 준 것은 다 외국인이 주장해가지고 사용한 결과로 명의상으로는 우리에게 준 돈이지만 사실상으로는 일본 경제를 부흥하는데 태반 자금이 사용되고 우리는 소비품만을 받게 되었던 것이므로 실상 효과는 심히 박약했던 것이다.이제는 한미 양국대표가 합동경제위원회에서 작정하여 미국원조 목적대로만 쓰게 된 것이니 우리 경제력을 발전케 하는데 막대한 성공을 우리가 치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둘째로는 우리 국군확장인데 지금까지는 미국 육해군의 중요한 권위자들이 우리를 양해하고 동정해서 각각 자기들의 힘에 따라 이만치 발전시켜온 것이므로 우리 육군은 이만치 발전되었으나 해군 공군에 대해서 태반부족의 약점을 가졌던 것인데, 지금부터는 우리 국군세력의 방위력이 상당해서 미국방 원조예산중에서 한국에 육군증강과 해공군력을 증진시키기로 이번 토의결과로 협정된 것이니 우리 전민족이 경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중략)....우리 군인들은 이 시간에 몸과 마음을 굳건히 준비해서 기회가 오거든 일시에 밀고 올라가야 될 것이다. 이런 관계 하에서 휴전조약에 서명도 아니하고 오직 휴전을 막지 않기로 협약된 것이니 정치회담에서 성공만 될 수 있으면 다행인 것이오, 못되더라도 우리는 이 관계로 많은 손실은 없을 것이오, 우방들의 협의로 성공케 할 것이다.이 동안에 우리가 할 일이 하고많은 중에 한편으로 국가재건에 전력해서 2억불과 기타 다른 원조경비 등으로 우리 공업을 대확장해서 자급자족의 기초를 이때 세워놓아야 하니 일반경제가나 국민이 사소한 이를 도모하지 말고 국가경제 대발전의 토대를 이때 건설함으로써 많은 피를 흘리고 또 많은 희생을 한 큰 의의를 장원한 장래에 미처 가도록 전국민의 단결로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이승만, 국가경제 대발전의 기반 건설을 선언
이와 같은 이승만대통령의 유명한 ‘한미동맹 담화’는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해왔다. 연구자들은 흔히 ‘이 조약으로 자손만대에 번영을 누릴 것”이란 대목만 인용하곤 했는데 정작 이 담화의 초점인 ’국가경제 건설‘엔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있었던 터이다. 왜냐하면 이승만 집권기의 경제성장 수치만 가지고 저평가 했던 것, 그러나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경제성장 산출방법조차 등장하지 않았던 때였다. 정치적으로 이승만 비난시대가 되자 경제학자들마저 그 후에 등장한 추정수치를 가지고 이승만 경제정책을 혹평했던 것인데 그것이 정착되고 만 것이다. 각설하고 이 담화의 핵심은 결론부분이다.한마디로 이승만의 담화는 국가경제 재건과 부흥이었다.첫째, 미국의 원조자금을 10억 달러 확보했고 우선 2억 달라가 들어오니, 이 원조자금으로 우리 공업을 대확장해서 자급자족의 기초를 이때 놓아야 한다.둘째, 국민들이 ’국가경제 대발전의 토대를 지금 건설하는데 합심‘하자는 것이다.
’공업의 자급자족‘과 ’국가경제 대발전의 토대 건설‘--이것은 하와이 독립운동시절 이승만 박사의 원대한 국가건설 설계도였다. 여기서 이승만은 하와이 큰 섬에 스스로 기업을 세워 궁핍한 독립자금을 마련하려 했고 동지촌(同志村)까지 건설했던 사실은 앞에서 보았다. 이제 꿈같은 거액 10억 달러를 가지고 전쟁 황무지를 복구하고 경제부흥으로 새로운 경제대국을 일으키려는 국가목표를 내놓은 담화임을 그동안 왜 주목하지 않았던가. 이승만 대통령은 원조를 받기 시작한 1954년부터 5년도 안된 1958년에 전후복구를 끝내고 한단계 뛰어오른 산업부흥 3개년계획, 5개년계획까지 추진했던 기록들이 생생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간산업 공장들의 건설과 발전소 증설, 철도 부설, 지하자원 개발 등은 물론, 기술인력 양성 등 놀라운 실적들이 숫자로 명백히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실적들은 4.19후 집권한 민주당 장면 정권이 작성하여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 ’통한각서‘(統韓覺書)가 세계에 발표한 자료에도 다 나온다. 이 경제발전 부분은 뒤에서 다시 살펴보자.요컨대, 이승만은 이 담화에서 밝힌 대로 원조자금으로 국가경제 ’대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전력을 기울여 성공하였던 ’경제대통령‘이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영어버전 조약 전문을 아래에 소개한다. 조약문 머리에서 보는 것처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다음해 1954년 11월18일부터 시행된다. 경무대서 가조인(1953.8.8.) 하고나서 무려 15개월이나 기다려야했다. 그해 10월1일 워싱턴서 본조인을 마친 조약은 이듬해 1954년 1월 양국 국회가 비준한다. 비준하면 발효되는가? 아니다. 비준서에 대통령이 서명하여 교환해야만 그 순간 효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승만은 비준한 조약문을 움켜쥐고 무언가를 또 기다렸다. 그토록 목숨 걸고 쟁취한 한미동맹을 이승만은 왜 즉시 발효시키지 않고 1년 넘게 시간을 끌어야 했던가? 그야말로 올리버가 쓴 전기의 제목 [이승만-신화에 가려진 사나이: Syngman Rhee-The Man behind the Myth] 그대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가.
◀영문: 한미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Signed at Washington October 1, 1953Entered into force November 18, 1954
The Parties to this Treaty,Reaffirming their desire to live in peace with all governments, and desiring to strengthen the fabric of peace in the Pacific area,Desiring to declare publicly and formally their common determination to defend themselves against external armed attack so that no potential aggressor could be under the illusion that either of them stands alone in the Pacific area,Desiring further to strengthen their efforts for collective defense for the preservation of peace and security pending the development of a more comprehensive and effective system of regional security in the Pacific area,Have agreed as follows:
Article 1
The Parties undertake to settle any international disputes in which they may be involved by peaceful means in such a manner that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and justice are not endangered and to refrain in their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the threat or use of force in any manner inconsistent with the purposes of the United Nations, or obligations assumed by any Party toward the United Nations.
Article 2
The Parties will consult together whenever, in the opinion of either of them, the political independence or security of either of the Parties is threatened by external armed attack. Separately and jointly, by self-help and mutual aid, the Parties will maintain and develop appropriate means to deter armed attack and will take suitable measures in consultation and agreement to implement this Treaty and to further its purposes.
Article 3
Each Party recognizes that an armed attack in the Pacific area on either of the Parties in territories now under their respective administrative control, or hereafter recognized by one of the Parties as lawfully brought under the administrative control of the other, would be dangerous to its own peace and safety and declares that it would act to meet the common danger in accordance with its constitutional processes.
Article 4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
Article 5
This Treaty shall be ratified b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Republic of Korea in accordance with their respective constitutional processes and will come into force when instruments of ratification thereof have been exchanged by them at Washington.
Article 6
This Treaty shall remain in force indefinitely. Either party may terminate it one year after notice has been given to the other Party.
IN WITNESS WHEREOF the undersigned plenipotentiaries have signed this Treaty.Done in duplicate at Washington, in the Korean and English languages, this first day of October 1953.
FOR THE REPUBLIC OF KOREA: /s/ Y. T. PyunFO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s/ John Foster Dulles<연재 계속>◆필자 인보길(印輔吉)=현 뉴데일리 회장, 전 조선일보 이사 편집국장, 논설위원, 디지털 조선일보 대표 역임. 2010년부터 '이승만 포럼' 운영 대표. 2023년부터 이승만 기념관 건립위원. *저서: [이승만 현대사-위대한 3년], [이승만 다시보기] 외. YouTube '인보길의 우남이야기' 뉴데일리TV 등 다수.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8/31/20240831000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