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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황우여 비대위, 항우일까 유방일까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의 담론

정체성 회복, 바람직한 형태로 이뤄지길

 

항우(項羽‧생몰연도 기원전 232~기원전 202)는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주역이다. 초회왕(楚懷王)을 의제(義帝)로 높여 허수아비 황제로 삼은 그는 전통으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진나라의 군현제(郡縣制)를 뒤엎고 주(周)나라식 봉건제(封建制)로 회귀하겠다고 선포한 것이었다.

 

군현제는 천하를 군‧현 단위로 나눈 뒤 천자(天子)가 임명한 태수(太守)‧현령(縣令)을 부임시켜 다스리는 개념이다. 태수의 직위는 혈통세습되지 않으며 이들은 매 사안을 조정에 보고하고 허가받아야 한다. 군현제는 오늘날 동서양의 행정구역 단위인 시군구(市郡區) 등의 형태로, 비록 지금은 지자체장이 주민투표로 선출되지만, 계승되고 있다.

 

반면 봉건제는 천하를 여러 나라로 쪼갠 뒤 황족(皇族)‧왕족(王族) 또는 귀족을 군왕(君王‧제후왕)으로 봉해 다스리게 하는 개념이다. 왕작(王爵)은 혈통세습되며 이들은 각자의 국사(國事)를 조정에 일일이 보고할 필요 없이 자치권을 갖는다. 군왕들에게는 종주국(宗主國)을 상전으로 떠받들 도의적 의무만 주어진다.

 

군현제는 기원전 350년 법가(法家) 사상가인 상앙(商鞅)이 올망졸망하게 각자도생하던 진나라 내 촌락들을 41개 현으로 정리하고 중앙정부가 관리하면서 시작됐다. 진시황(秦始皇)도 천하통일 후 전 국토를 36개의 군으로 나누고서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했다. 태수 선발의 첫째 기준은 ‘능력’이었다.

 

초나라 귀족혈통인 항우가 볼 때 군현제는 ‘개나 소나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될 수 있는 상놈의 제도’였다. 그는 천하를 18개 국가로 나누고서 분봉(分封)했다.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를 제외한 18명의 군왕은 △한왕(漢王) 유방(劉邦) △옹왕(雍王) 장한(章邯) △새왕(塞王) 사마흔(司馬欣) △적왕(翟王) 동예(董翳) △대왕(代王) 조헐(趙歇)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 △서위왕(西魏王) 위표(魏豹) △은왕(殷王) 사마앙(司馬卬) △한왕(韓王) 한성(韓成) △하남왕(河南王) 신양(申陽) △교동왕(膠東王) 전시(田市) △제왕(齊王) 전도(田都) △제북왕(濟北王) 전안(田安) △구강왕(九江王) 영포(英布) △형산왕(衡山王) 오예(吳芮) △임강왕(臨江王) 공오(共傲) △요동왕(遼東王) 한광(韓廣) △연왕(燕王) 장도(臧荼) 등이었다.

 

‘근본’으로 돌아가자면서 계층 간 이동 사다리를 치워버린 이 조치에 많은 백성은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군현제의 맛을 본 백성들이 항우의 복고주의를 쌍수로 환영했다는 기록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찾기 힘들다. 황제가 되지 못한 항우의 생애를 이례적으로 본기(本紀)에 상세히 실은 게 사기임에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군현제 하에서는 누구나 능력 여하에 따라 자신 또는 후손이 태수‧현령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진나라 백관(百官) 중에는 서민 출신이 적지 않았다. 사마흔만 해도 일개 옥리(獄吏) 출신이었다. 진시황을 도와 대제국을 건설한 승상(丞相) 이사(李斯)도 원래는 쥐떼나 쫓던 초나라 하급관리였다. 그러나 봉건제가 실시되면 이변이 없는 한 왕위는 만세일계(萬世一系)가 된다. 상전은 영원한 상전이고 상놈은 영원한 상놈인 세상이 된다.

 

때문에 초한쟁패(楚漢爭覇)에서 초나라를 무찌르고 천하를 재통일한 한나라는 곧바로 봉건제를 폐지한다. 대신 군현제‧봉건제를 혼합한 군국제(郡國制)를 채택한다. 그것도 나중에는 군왕들을 허울뿐인 명예직 군주로 만들어버리고 사실상의 군현제를 실시한다. 군왕들은 봉토(封土) 규모도 일개 도시 또는 작은 마을 수준일뿐더러 직접 다스리지도 못했다. 오로지 조세(租稅)만 일부 거둬 쓸 수 있을 뿐이었다.

 

각 제후국(諸侯國) 살림은 중앙정부가 파견한 국상(國相)이 도맡았다. 국상 또한 태수처럼 매 현안을 조정에 보고하고 지시받았다. 군왕의 제후국 사무개입은 곧 황제에 대한 반란으로 간주됐다.

 

실질적인 군현제로 넘어간 이후 제후왕이 행정‧군정(軍政)권을 행사한 사례는 후한(後漢) 말의 진민왕(陳愍王) 유총(劉寵) 등 극소수에 그친다. 그는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발발하자 군사를 모아 대적해 봉국(封國)을 지킨 뒤 보한대장군(補漢大將軍)을 자처했다. 그러나 이내 조정은 국상 낙준(駱俊)을 내려 보내 유총을 견제토록 했다. 유총을 제외한 나머지 제후왕 상당수는 난세가 오자 조세‧녹봉이 끊기고 도적떼에게 노략질당해 거지꼴로 굶어죽었다고 한다.

 

한고조(漢高祖‧유방) 또한 항우 못지않게 진나라라 하면 이를 갈았으나, 이처럼 구태요소는 제거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임에 따라 400년 한제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나라는 계층 간 사다리 이동에 성공한 이들이 적지 않다. 건국황제부터가 ‘백수건달’ 출신이다. 풍패지향(風沛之鄕)의 개국공신들도 말단졸병 한신(韓信), 개백정 번쾌(樊噲), 마부 하후영(夏侯嬰), 동사무소 계장 소하(蕭何), 교도관 조참(曹參), 건달2 왕릉(王陵), 피리쟁이 주발(周勃) 등 밑바닥 출신이 대다수다. 삼국지(三國志)의 유비(劉備)도 돗자리꾼에서 시작해 현위(縣尉)‧주자사(州刺史) 등을 거쳐 황제에까지 올랐다.

 

관리형 비대위를 거부한 황우여 국민의힘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이 “사이비보수로의 변질은 안 된다”며 당(黨)의 ‘근본으로의 회귀’를 시사했다고 한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이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바다. 국민의힘은 그간 적잖은 국민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 코스프레당’ 조롱이나 받아온 게 사실이다.

 

허나 비대위원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몇몇 인사들 면면을 보니 ‘사랑받는 보수’가 아닌 ‘구태(舊態)의 보수’로의 복귀 가능성도 염려되는 게 사실이다. 가령 금수저의, 금수저에 의한, 금수저를 위한 보수 말이다. 필자가 한 때 여의도연구원에 합법적으로 몸담으며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바 있기에 잘 안다.

 

정체성을 되찾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국민이 납득하고 열광할만한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즉 기본을 잘 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개인적 소견이다. 이미 상당수 국민은 권위주의, 양반주의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행히 황 위원장은 ‘재창당 수준의 쇄신’도 언급했다고 한다. 황우여 비대위가 항우식 봉건제를 택할지, 한고조식 군국제를 택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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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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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vereign
    2024.05.04

    구태 보수 말고 사랑받는 보수 하라고 하면 또 자기네들 좋을대로 해석해서 청년정치 호소인들 불러다가 따뜻한 보수 깨어있는 보수 그 놈의 중도타령 계속 하라는건줄 알아들을거 같습니다 ㅋㅋ

  • Sovereign
    오주한
    작성자
    2024.05.04
    @Sovereign 님에게 보내는 답글

    오해 소지가 있다면 할 말 없습니다. 마녀사냥 이미 당해봤고요 청년의꿈에서. 저는 스타일정치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진정'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정치를 말하는 겁니다. 물론 본문에서도 썼듯 시장주의, 반공은 기본으로 깔고요.

     

    저는 누구보다 공산주의의 폐해를 목격한 대한민국 사람 중 하나입니다. 뜨뜻한 방에서 입만 산 사람들이 아니라요. '기본베이스+민심어필=결과' 이 어려운 걸 하시라는 겁니다. 저도 나름 연구 중입니다만, 귀를 기울여주는 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부자끼리'는 산업화 의료보험의 박정희정신에도, 토지개혁의 이승만정신에도 안 맞습니다. 입만 산 게 아니라 진정 국민을 잘 살게 해주고 진심으로 존경(지지율)을 얻는 게 진정한 정신입니다.

  • 오주한
    작성자
    2024.05.04

    우리부자끼리가 많은 분 생각이라면, 자민련이나 되겠지요. 그런데 자민련 하고 구석에서 편히 살라고 저들이 그냥 놔 둘까요? 이 난리친 게 최소 8년째인데, 궤멸시키겠다고

     

    ps 혹여 망하면 그냥 돈 싸들고 미국 가지 이런 생각 가진 분들이라면. 무책임한 겁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최악이 되든 말든 미국은 어지간하면 지정학적 이유로 한국과 손 잡을 거고, 양 측의 당장의 이해타산이 맞으면 돈 싸들고 도미한 분들은 돈이 영원히 필요없어지는 겁니다, 숨 쉴 이유도 없고. 나라가 사라지면 이렇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