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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 한 손으로 태극기 받으려 하자 ··· 이승만 "두 손으로 받는게 예의"

뉴데일리

■ 태극기로 무장한 불굴의 자유 혁명가

(2025년)은 이승만 대통령의 탄신 150주년입니다.반세기 이상 잊혔던 그분을 우리는 어떻게 기려야 할까요?이와 관련,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 12일, 미국에서 링컨 탄신 150주년을 기념하여 시인이며 작가인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1878-1967: 링컨 전기로 유명)가 미 상하원합동회의에서 행한 연설(사진)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링컨은 어떤 형태로 후세에 기억되기를 원했을까요?링컨의 절친인 러브조이가 사망하자, 누군가 링컨에게 그의 대리석 기념비 만드는 일에 참여해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링컨은 국정이 바빠서 그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답신을 보내면서, 끝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러브조이가 일신을 돌보지 않고,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이 그의 대리석 기념비와 함께 영원히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이를 감안할 때, 우리가 링컨을 위해 만들어줄 가장 확실하고 영속적인 기념비는 사람들이 그를 눈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링컨이 살아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링컨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먼 미래까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무엇보다도 자유가 있는 곳, 거기에는 반드시 그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싸우고, 쓰러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입니다.”

샌드버그의 주장대로, 이승만 대통령도 우리가 눈으로 보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그분이 살아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이승만 박사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먼 미래까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태극기로 무장한 불굴의 자유 혁명가”로 남아 있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이승만 박사는 “태극기로 무장하고, 불굴의 투지로 싸워서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자주독립국가를 세우고 지켜낸 혁명가”였습니다.

그때 그분이 있었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가난하며, 힘없고, 이념적 갈등이 심했던 대한민국이 현재 세계 237개국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강한 자유 민주국가이자 군사 강국으로 비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없었다면?북한처럼 전 세계인이 손가락질하는 가장 고립되고, 가난하며, 인권이 유린되는 세습 독재 전제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 허름한 가게서 만난 책과 사진

2005년 4월 초, 미국에서 근무하던 필자는 어느 허름한 골동품상 진열장에서 뜻밖의 책을 만났습니다.대한민국 공보처가 1955년에 발간한 라는 제목의 영어 원서였습니다.이 책에는 1954년 7월 26일부터 8월 13일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활동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책에는 원래의 소장자가 보관해 온 것으로 보이는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이 꽂혀있었습니다.그것은 태극기를 들고 서 있는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었고, 6.25전쟁 발발 후, 채 한 달이 안 된 1950년 7월 21일 피란지에서 미군 사진사가 찍은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실망스러웠습니다.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왜 우리 대통령은 총이나 칼을 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그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태극기를 들고 서 있을까?그것도 1949년 법률로 정한 태극기와는 태극과 괘의 모습이 사뭇 다른, 어느 장롱 속에서 꺼내 온 것 같은 태극기를!

그러나 그날 밤, 책자에 끼워진 이 대통령 사진을 책갈피 삼아 밤새도록 그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미국의 군사ˑ재정적 지원 없이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를 지킬 수 없었던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짊어진 노(老)정치인이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와 여론을 상대로 공산주의자들과의 거룩한 전쟁(crusade)을 설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 읽기를 마친 후, 이 대통령의 사진을 다시 곰곰이 살펴봤습니다.그분이 든 태극기는 6.25전쟁 때 황망하게 피란하면서도 챙겨나온 것으로 보였고, 처음 접했을 때 느껴졌던 그분에 대한 실망스러운 감정이 이번에는 연민과 애정으로 변해있었습니다.나아가, 그 초라한 사진에서 그분의 선지자적 예지와 두둑한 배짱이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누가 뭐래도 이승만 대통령은 필자에게 ‘태극기로 무장한 불굴의 자유 혁명가’였습니다.그리고 이승만과 태극기에 관한 자료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본 태극기에 관한 자료들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영한대역으로 엮은 일기형식의 책 <이승만 대통령 방미일기>, 그리고 <우주를 품은 태극기>라는 책도 펴낼 수 있었습니다.

아시나요?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이 자주독립 국가임을 선양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들에게 태극기를 선물했던 기상천외한 분이었다는 사실을!=================

■ <건국전쟁>에 나온 민주당 전당대회 손수건

(1) 이승만 박사는 1912년 6월 19일, 프린스턴 대학 은사인 우드로 윌슨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만나서 태극기를 선물했으며, 민주당은 태극기와 세계 50개국 국기로 디자인된 손수건을 만들어서 그해 7월 전당대회 기간 중 수만 장이나 배포했습니다.국권을 침탈당한 대한의 태극기는 오른쪽 맨 위에 배치됐고, 국권을 강탈한 일제의 일장기는 오른쪽 맨 아래에 있습니다.이승만 박사는 진짜 위대한 홍보전략가 아닌가요?

참고로 경선에서 열세였던 윌슨 후보는 이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후, 재선을 노렸던 윌리엄 태프트(William H. Taft)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태프트는 전쟁부장관 시절인 1905년,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어서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强占)할 수 있는 발판을 놓아준 사람입니다.================

■ 트루먼에게 "태극기는 한민족의 상징물···"

(2) 위 서한은 1945년 10월 4일, 40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을 접고 워싱턴DC에서 귀국하던 날, 70세의 망명 노인 이승만 박사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태극기와 함께 보낸 서한입니다.태극기 실물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그러나 서한 내용을 보면, 찬사가 절로 터져 나옵니다.

1945년 10월 4일친애하는 트루먼 대통령님:한국의 독립 문제에 관해서 호의적인 관심을 보여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렇게 소박한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태극기는 일반적으로 한민족을 대표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귀하께 선물하는 이 태극기는 바로 귀하에 대한 한민족 전체의 감사한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는 상징물입니다.신의 축복이 늘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존경심을 담아서, 이승만====================

이승만 박사의 편지와 태극기를 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개인비서 로즈 콘웨이에게 답변을 구술해주고 서한을 보내도록 했고, 그녀는 1945년 10월 17일 이승만에게 아래와 같은 서한을 보냈습니다.(사진 위)

1945년 10월 17일

친애하는 이 박사님:

10월 4일 귀하가 트루먼 대통령께 보내주신 한민족을 대표하는 국기와 다정한 편지에 대해서, 대통령이 귀하께 드리는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대통령은 귀하가 보여주신 정중한 호의에 대해서 그에 상응하는 호의를 갖고 계시며,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진실한 마음을 담아서, 로즈 콘웨이

트루먼 대통령 비서====================

■ 아이젠하워를 향한 심리외교전

(3) 1952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캠페인 중에 ‘한국에 가겠다’고 했던 대국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같은 해 12월 2일 방한했습니다.이승만 대통령은 아이젠하워를 설득해서 북진통일을 이루려고 했지만, 아이젠하워는 이미 6.25전쟁의 휴전을 결심한 후였습니다.따라서 그는 이 대통령 만나는 것 자체를 꺼렸습니다.

그러나 둘은 만났고,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대형 태극기를 선물했습니다.이때 이 대통령이 건네는 태극기를 아이젠하워가 한 손으로 받으려 하자, 이 대통령은 황급히 태극기를 거두며 아이젠하워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국기를 받을 때는 두 손으로 받는 게 예의입니다!”라고.

곧 아이젠하워는 두 손으로 태극기를 받은 다음,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오른손으로 이 대통령과 악수했습니다.그 장면을 담은 아래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딘지 어색해 보입니다.

이같은 이승만 박사의 태극기 사랑의 사례를 한 가지만 더 소개합니다.1944년 미국 우정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유를 박탈당한 유럽 12개국의 국기를 주제로 우표를 발행키로 했습니다.이 사실을 알게 된 이승만 박사는 미 우정국과 접촉, ‘자유수호우표’에 태극기를 포함시켰고,이 우표는 수백만 장이 발행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승만 박사가 영문과 한글로 서명한 ‘태극기 우표’ 봉투와 우표에서, 외교와 홍보의 달인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 썩어 문드러진 조선 감옥서 쓴 <독립정신>

도대체 이승만 대통령이 이렇게 기발한 행동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일까요?이는 1895년 5월 서구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에 입학해서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문제는 그곳에서 공부한 학생이 많을 텐데, 왜 이승만 학생만 유별나게 성년이 되어서도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했을까요?그 답은 그분의 저서 <독립정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국기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국기는 그 나라 국민과 영토를 대표하는 것이다.비록 전쟁 중이라도 어느 나라 국기가 꽂힌 곳은 사람이나 물건이나 그 나라의 보호를 받는다.국기가 이렇듯 소중하므로 몇천 명, 몇만 명씩 다투어 나아가 영광스러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던져 서 그 밑에 속한 국민과 영토와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함으로써 나라가 태평하고 안락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조상들이 이런 보배로운 기초를 마련했더라면, 오늘날 남들처럼 무궁한 복을 누리며, 우리 태극기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을 것이나, 그렇지 못해서 원한이 맺히게 되었다.이를 깊이 깨달아 변변치 못한 우리 목숨을 귀중하게 바쳐서, 우리 후손들이 즐거운 세상을 보게 함이 마땅하다.이렇게 작정한 후에는 누구든지 국권에 손해가 되는 일이나 말을 하는 자는 친형제라도 곧 나의 원수로 여겨서 하나의 하늘 아래 머리를 두지 않기로 다짐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2천만 동포 중 1천9백9십9만9천9백9십9명 모두가 머리를 숙이거나 살해된 후라도, 나 하나는 태극기를 받들어 머리를 높이 들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맹세합시다!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나아갈 것을 각각 마음속에 맹세하고, 다시 맹세하고, 천만번 맹세합시다!”

여기서 잠시 1955년에 널리 유행했던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 불러”라는 가사가 돋보이는 <조국 찬가> (양명문 작사, 김동진 작곡)를 감상해 보기로 하죠.

→ <조국 찬가>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yZpe0dzbvFE

■ 남·북 좌파들, "이승만은 미제의 괴뢰"진실은 "김일성이 '스탈린 쏘련' 의 주구"지금부터 태극기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난 후, 남북한의 국기는 모두 태극기였습니다.그러나 북한은 언제부턴가 태극기를 배신하고 인공기를 만들어서 오늘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북한의 이런 태극기 배신의 배경을 짐작은 했지만, 그 진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해방 직후 북한에 진주해서 김일성 정권의 수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소련 점령군 레베데프(1901-1992) 소장의 비망록이 1995년 초 <대구매일신문>에 공개됨으로써 그 진상이 밝혀졌습니다.레베데프는 1948년 4월 15일 비망록에 아래와 같이 기록했습니다.

“김일성 에게 : 인공기와 인민군기(人民軍旗)를 제작하되 붉은색과 청색, 흰색과 검은색 (선과 악 상징)을 배합하도록 할 것.”문맥상으로 볼 때, 레베데프 가 태극기를 폐지하고 인공기를 만들도록 김일성 에게 지시한 것입니다.결국, 북한은 소련의 명령으로 한민족의 태극기를 배신했던 것입니다.사정이 이러하니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는 북한에게 당당하게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통일은 태극기부터 시작하자!남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서신 교환과 전화 통화도 하자!끊어진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고, 서로 왕래하는 날을 앞당기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인에게 해방 후 소련이 태극기를 말살하려고 함으로써 빚어진 한반도 비극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고 평화통일에 도움을 줄 것을 호소해야 합니다!한반도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공존의 장으로 나오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호소와 촉구야말로 총칼이 아니라 태극기로 무장하고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서 투쟁했던 자유 혁명가 이승만 박사의 노선과 맥을 같이하는 것입니다.따라서 그분도 천국에서 우리를 대견해하시며, 우리의 목표가 기필코 달성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기도해주실 것입니다.이번 삼일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태극기를 높이 들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북한이 태극기로 평화통일을 이루자고 외쳤으면 좋겠습니다.그리고 애국가의 후렴 중에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우주 품은 태극기 휘날리면서”로 바꿔서 우렁차게 불렀으면 합니다.

→애국가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eNuKeQz33bs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2/28/20240228002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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