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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래시계 대통령”

오주한

서민+반공과 “MAGA”로 승리한 69세 레이건

색깔+구호 공식으로 모래시계 대통령 탄생하길

 

韓美의 ‘색깔→구호’ 공식 성공사례들

 

미국은 대통령제(大統領制)‧민주주의(民主主義) 발원지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생몰연도 서기 1732~1799)이 초대(初代) 대통령에 취임하자 대통령이 뭔지 생소하던 상당수 미국인들은 워싱턴을 왕(王)으로 떠받들고 워싱턴 스스로도 왕처럼 행동했지만, 임기가 끝난 워싱턴은 미련 없이 백악관을 비웠을 정도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좋든 싫든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나라다. 6‧25 때 궁핍했던 한국인들은 막대한 미국산 물자에 열광했으며, 이후엔 미국 문화에 심취했다. 일부가 반미(反美)를 신조(信條)로 삼으면서도 아O폰(OPhone), 마블링 가득한 미국산소고기 등에 환호하고 원정출산에 나서는 건 이 때문이다.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신봉한다는 이들도 정작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라거나 ‘지상락원’으로 가라고 하면 “수준 낮게 어떻게” 손사래 친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미국 잠룡(潛龍)들이 각 시대 민심(民心)의 니즈(needs)에 맞는 ‘색깔’ ‘드라마’로 승리를 쟁취했듯, 문민화(文民化) 이후 역대 많은 한국 잠룡들도 ‘색깔’ ‘이미지’로 자신만의 개성을 확보하고 판도를 뒤집곤 했다.

 

색깔로 지지층 확충 등 곱셈의 정치에 액셀러레이터 밟은 잠룡들은 표어(標語) 등 ‘결정적 한 방’으로 대세(大勢)를 굳히곤 했다. △‘첫 문민정부 대통령’을 주창(主唱)한 YS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1979년 10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1990년)” △서민‧기업인 출신 경제대통령을 내건 MB의 “이명박은 배고픕니다(2007년)” △안보대통령을 내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방은 이상 없습니까(1979년 10월)”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미국 영향을 받는 대한민국 대선 경‧본선에 있어서, 미국의 그것은 훌륭한 벤치마킹(bench-marking) 대상이 되곤 한다.

 

일관된 반공노선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미국 대선에서 회자(膾炙)되는 사례는 많지만, 그 중 69세 고령(高齡)에 대권을 거머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1911~2004)을 살펴보자.

 

레이건은 일리노이주(州)의 한 소도시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구두외판원이자 알콜중독자였으며, 가족은 정육점에서 버리는 가축내장을 공짜로 얻어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아이리쉬(Irish)는 사회 인권신장(伸張) 이전엔 같은 백인 사이에서도 “피부 하얀 흑인”으로 불릴 정도로 멸시받았다.

 

그러나 레이건은 탈선(脫線)하는 대신 왕성한 10대 시절을 보냈다. 강변수영장 안전요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한편, 학업에 충실해 고교 시절 학생회 회장 등을 지냈다. 일리노이주 유레카대학(Eureka College) 시절에도 학생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아이오와 주방위군(National Guard)에 입대해선 이병으로 시작해 소위로 임관(任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국방부 선전영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영상의 매력에 빠졌으며, 종전(終戰) 후 워너브라더스(WB)에 발탁돼 배우로 데뷔했다. 비록 2류 연예인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이 시기 정계(政界)와 연이 닿았다.

 

민주당 당원으로서 연방수사국(FBI)의 영화계 내 반미주의자 조사에 협력한 레이건은 공화당으로 당적(黨籍) 옮겨 정치활동에 본격 돌입했다. 이처럼 반공(反共)주의자로서의 정체성‧색깔을 확립한 그는 바이블벨트(Bible Belt)를 중심으로 유권자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60년대 당시 미국 우파는 소련의 우주정복, 전미(全美) 휩쓴 히피(Hippie) 열풍, 지지부진한 월남전 등에 크게 화 난 상태였다. 게다가 사회에선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로 귀결(歸結)되는 낙태허용 찬반논란이 거셌다. 분노한 우파들에게 레이건의 단호한 자세, 논리정연한 언변 등은 한 줄기 빛이었다.

 

1966년 공화당 험지(險地)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당당히 승리한 레이건은 곧장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 첫 경선에서 그는 현역 대통령 신분으로서 유리한 고지(高地) 선점한 제럴드 포드(Gerald Ford)에게 간발의 차로 낙선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1980년의 두 번째 경선 도전에선 고생이라곤 안 해본 귀공자 이미지 강하던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를 가볍게 격파하고 본선에 진출했다.

 

미국 우파 분노는 1976년 본선에서 포드를 꺾고 대통령이 된 민주당 소속 지미 카터(Jimmy Carter) 앞에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도덕외교(Moral Diplomacy)’ 주창한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하는 등 “공산권 앞잡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카터는 퇴임 후인 1994년 6월엔 방북(訪北)해 김일성을 만나기도 한다. 게다가 공화당 주류(主流) 지지층은 귀공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반공주의자로서의 정체성‧색깔을 굳히고서 우파 콘크리트 지지층 확보한 레이건에게 1980년 대선 본선 승리를 안겨준 ‘결정적 한 방’은 한마디 애국적 구호였다. 바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였다. 이는 우파뿐만 아니라 ‘조국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란 자부심 회복을 갈망(渴望)하던 상당수 중도층 표심(票心)도 자극했다. 이 한마디 앞에 “레이건은 셀럽(Celebrity)정치인” “딴따라 출신” “노인네” 등 좌파 측 비방은 유권자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패조(敗兆)에 조급해진 카터의 실수도 부동표(浮動票) 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CBS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는 “2차 토론에서 레이건은 만면(滿面)에 미소를 띤 반면 카터는 돌처럼 굳었다”고 평가했다. 토론회 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7%가 레이건 승리를 전망했다. 전미를 뜨겁게 달군 1980년 11월 대선은 고령이라는 리스크 딛고서 50.7%를 득표한 레이건(카터 41.0%)의 완승(完勝)으로 끝났다. 레이건은 나아가 1984년 대선에서도 73세 나이에 재선에 성공했다.

 

“슬롯머신 저격수, ‘야만(野蠻)의 시대’도 척결한다”

 

레이건 외에도 반공주의→“뉴프런티어(New Frontier) 정신”의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1917~1963), 경제우선주의→“문제는 경제다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의 빌 클린턴(Bill Clinton‧1946~) 등 ‘색깔 구축→강력한 한 방’ 공식을 따라 백악관에 입성(入城)한 사례는 역대 미 대선에서 무수하다.

 

물론 각종 변수(變數)가 돌출하는 대선 경‧본선 승리비법이 이 간단한 공식만으로 정리될 순 없다. 실제로 초강경 반공주의자로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가장 먼저 주창했던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1909~1998)가, 갑자기 터진 쿠바미사일위기(Cuban missile crisis)라는 돌발변수 앞에 “저 사람 뽑았다간 핵전쟁이다”는 역풍(逆風) 맞은 사례도 있다.

 

1964년 대선에서 골드워터와 맞붙은 민주당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측은 ‘데이지 걸(Daisy Girl)’이라는 TV광고를 송출해 역풍에 부채질을 가하기도 했다. 허나 이처럼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돌발변수의 소수사례를 제외하곤, 해당 공식이 승률을 어느 정도 또는 상당수 보장하는 건 사실이다.

 

범(凡)보수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결과 앞에 각 후보군 지지층 희비(喜悲)는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다음 대선(2027년 3월)까지는 아직 수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힘의 축 이동,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이뤄질 수도 있다.

 

필자 소견에, 그 때까지 차(次)순위 주자들이 해야 할 일은 뚜렷한 색깔 구축, 그리고 강력한 한 방 준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臨機應變)이 아닌가 싶다. 가령 현 정부‧여당의 지지부진한 대야(對野)투쟁과 심화되는 경제난, 난무하는 중범죄에 걸맞은 ‘여야 신분 넘나들며 산전수전(山戰水戰) 겪고, 도정(道政)‧시정(市政) 등에서 큰 성과 냈으며, 6공 황태자도 때려잡은 산골 출신 정치인’ 이미지 구축 및 “모래시계 대통령” 슬로건처럼 말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좌시(坐視)할 수 없는 1인(人)으로서의 필자의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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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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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DEX
    2023.08.02

    화력이 한군데 집약된 밀도높은 힘은 단순히 가감산을 넘어서 제곱의 힘을 냅니다. 우리는 이것을 란체스터 전략이라고 합니다. 홍준표 영감님은 좀더 자신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드러내야합니다!

  • INDEX
    오주한
    작성자
    2023.08.03
    @INDEX 님에게 보내는 답글

    한참 선배님 앞에서 한참 어린 아들뻘 후배가 구상유취로 분에 넘치게 써본 것입니다. 제게 부족함은 없을까 늘 두려워하며, 앞으로도 많은 것 배우고 또 정진코자 할 따름입니다.

  • 오주한
    작성자
    2023.08.03

    뜬금 없는 댓글일 수 있겠습니다만.. 국민일보 오주'환' 기자님과 저는 다른 사람입니다. 저와 오주환 기자님께 혹 불필요한 오해가 있을까봐 존경하는 여러 분들께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 위하여
    2023.08.03

    202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베일에 가리워졌던 신천지의 등장으로

    대선 출마의 꿈이 포기된 부분에 대해서 저의 느낌으로는 아주 철저하게

    준비와 대비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예상하는 그림은 홍준표 VS 이재명의 구도가 될 것 같습니다,

    대구시장의 직을 지금 하시는 것 처럼 잘 마무리하시면 모든 게 검증된

    대통령 후보로 손색이 없을 것 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마음 깊은 곳에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위하여
    오주한
    작성자
    2023.08.03
    @위하여 님에게 보내는 답글

    고견 감사합니다. 폭염 유의하시고 모쪼록 무덥지않은 오후 되시길 바랍니다. ^^

  • 오주한
    위하여
    2023.08.03
    @오주한 님에게 보내는 답글

    넵, 감사합니다.

  • 풀소유

    이 칼럼을 시장 님께서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풀소유
    위하여
    2023.08.04
    @풀소유 님에게 보내는 답글

    시장님께서 모니터링 거의 다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