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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1번지의 귀신들

오주한

‘버블레이디’ ‘요승’ 등 피해 막심했던 日露

아직 괴력난신 집착하는 韓 정계에 국제망신

 

간사이(關西)의 흑녀(黑女)

 

1980년대 일본. 당시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敗戰) 충격을 급속도로 딛고 무서운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중이었다.

 

1964년 도쿄(東京)올림픽 개최, 동년 세계 최초 고속철도 시스템 신칸센(新幹線) 개업, 1989년 미쓰비시(三菱)그룹의 미국 록펠러센터(Rockefeller Center) 매입, 1991년 일본 부동산재벌 가문의 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매입 등은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양분(兩分)하던 일본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미국사회는 일본을 극도로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열광했다. 디트로이트 등 러스트벨트(Rust Belt) 노동자들이 도요타(豊田)‧혼다(本田) 등 일제(日製) 자동차를 때려 부수며 “우리 일자리를 되찾자”고 부르짖는 사이, LA 헐리웃에선 ‘백 투 더 퓨처’ 등 “전자제품은 일본이 최고”라는 대사의 영화들 티켓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미 주요언론들은 이 ‘재패니즈 인베이전(Japanese Invasion)’을 앞다퉈 대서특필하면서 “제2의 진주만(眞珠灣)공습”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세제로 말끔히 닦아낸 뒤의 일본 거품경제(Bubble Economy) 실체는 머잖아 드러났다. 물 먹인 소(牛)마냥 실속 없는 허상경제 대표인물은 ‘버블 레이디(Bubble Lady)’ ‘오사카(大阪)의 흑녀(黑女)’로 불렸던 오노우에 누이(尾上縫‧생몰연도 1930?~2014?)다.

 

알려지는 바에 의하면 오노우에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 미색(美色)으로 이름 떨쳤다. 그를 촬영했다는 흑백사진들을 보면 소싯적 오노우에의 모습은 현대 기준으로 봐도 연예인감으로 손색없다는 평가가 많다. 덕분인지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오노우에는 한 유명건설사 사장 정부(情婦)가 돼 두 개의 고급 호스티스클럽(ホステスクラブ)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거품경제 당시 일본사회는 “개도 수표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돈이 넘쳐났다. 취업적령기 청년들은 기업면접 몇 번 보면서 거마비(車馬費) 받기만 해도 자동차 한 대 뽑을 정도였으며, 많은 중소기업은 자금은 많은데 일 할 사람이 없어 흑자도산(黑字倒産)했다.

 

자연히 잘 나가는 기업오너들은 도쿄 긴자(銀座) 등지의 고급클럽에서 돈을 물 쓰듯 썼다. 마담‧호스티스에게는 팁이라며 ‘아파트 한 채’를 선물하기도 했다. 오노우에가 클럽오너 시절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두꺼비 쓰다듬으며 혹세무민(惑世誣民)

 

이렇게 밑천을 마련한 오노우에는 일본산업은행(日本産業銀行) 직원 권유로 10억엔(2023년 7월 환율 기준 약 90억5000만원)어치의 채권(債券)을 사들이면서 증권에 손대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3조엔(약 27조1300억원)가량을 일본전신전화공사(日本電信電話公社‧NTT) 등 주식매수(買收)에 투자하면서 금융계 ‘큰 손’이 됐다.

 

오노우에의 클럽에는 산업은행 총재 등 내로라하는 금융권 인사들이 커다란 현금가방 들고서 분초 단위로 드나들었다. 증권사 부장쯤은 오노우에의 집사(執事) 정도로 부려졌다.

 

그런데 오노우에는 사실 밀교(密敎) 신도임을 자처(自處)하는 ‘사이비무속인(巫俗人)’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오후가 되면 금융권 인사들을 자신의 자택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이튿날 새벽이 될 때까지 ‘두꺼비에게 투자종목(種目)을 묻는’ 의식을 치렀다.

 

의식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두꺼비 머리를 쓰다듬고서 주문을 왼 뒤 신탁(神託) 받은 오노우에 자신이 투자종목을 정해주는 방식이었다. 일설(一說)에는 이런 황당한 방식으로 한 때 거래된 주식이 100억달러(약 12조8000억원) 상당에 달했다고 한다. 일본경제는 오노우에 말 한마디에 상당수 좌지우지됐다.

 

이게 왜 가능했는지는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M. Merton‧1910~2003)이 주창(主唱)한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SFP‧또는 자기 실현적 예언)’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쉽게 풀이하자면 아무리 과학적 근거가 없는 행위라 할지라도, 권위자(權威者‧전문가)나 집단의견이 이에 동조(同調)하고, 전문가‧집단심리에 의지하는 일반대중(大衆)마저 이를 믿고 따르게 되면, 결국엔 사회는 그 미친 행위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흑막(黑幕) 뒤에 숨어 전문가들을 조종하며 자신이 원하는 종목에 대한 일반대중 투자를 유도해 천문학적 사익(私益)을 취했던 오노우에. 그의 혀를 내두르게 한 행각은 1991년 이후 거품경제 종식과 함께 폭로됐다.

 

파산(破産)한 오노우에는,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처럼 현금화한 재산을 미리 어딘가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크지만, 길거리에 나앉았다. 1991년 8월 경찰에 체포된 그는 공모자들과 함께 수년의 징역살이를 한 뒤 2014년(추정)에 사망했다. 오노우에가 일본경제에 끼친 악(惡)영향은 막대했다. ‘두꺼비점’을 믿고 투자하거나 오노우에에게 주식을 담보로 대출했던 기관들은 2700억엔(약 2조44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은행 두 곳이 도산(倒産)했으며 산업은행장은 화려한 커리어를 접고 사퇴했다.

 

나라마저 결딴 낸 요승(妖僧)

 

만약 오노우에가 단순히 ‘금융계 큰손’이 아닌 내각(內閣)‧여야(與野) 등과 줄 닿은 ‘정계(政界)의 큰손’이었다면 그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솜방망이 처벌마저도 피해가고서 국가단위로 길이길이 해먹다가 현금화한 재산을 해외 비밀계좌로 이체(移替)한 뒤 ‘셀프실종’에 나섰을 수 있다.

 

때문에 ‘진정한 사이비무속인’ ‘진정한 사짜’들은 어떻게든 ‘VIP’와의 인맥(人脈) 형성에 주력했다. 이 분야의 대표주자는 제정(帝政)러시아의 요승(妖僧)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i Rasputin‧1869~1916)이다.

 

기록에 의하면 라스푸틴은 어려서부터 수도(修道)라 쓰고 사기술이라 읽는 지식습득에만 열중했다. 이리저리 떠돌던 그는 타고난 사기능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을 현혹해 돈을 갈취했다. 라스푸틴의 소문은 호사가(好事家)인 각지 귀부인(貴婦人)들 귀에 들어갔으며 급기야 황족(皇族)도 그에게 관심 보였다.

 

한 귀부인 소개로 라스푸틴과 만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Alexandra Feodorovna) 황후는 “용하기 그지없네”라며 탄복했다. 매우 공교롭고도 낯 뜨겁게도, 라스푸틴은 거근(巨根)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라스푸틴은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황족들 환심을 샀다. 당시 젖먹이었던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Alexei Nikolaevich‧1904~1918) 황태자는 희귀질환인 혈우병(血友病)을 앓고 있었다. 출혈(出血) 시 좀처럼 낫지 않는 해당 병은 조그만 상처도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

 

이에 라스푸틴은 알려지지 않은 치료법으로 황태자를 낫게 했다. 어떤 방식이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너는 이걸 먹으면 낫는다”는 식의 최면(催眠)을 걸어 환자로 하여금 정말로 “난 완치됐다”고 믿게끔 하는 플라시보 효과가 유력하다. 실제로 황태자는 건강히 장성(長成)하기는커녕 14세 어린 나이에 요절(夭折)했다.

 

허나 상술한 SFP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라스푸틴의 다른 어딘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지, 황후는 요하디 요한 요승을 신줏단지 모시듯 떠받들었다. 제정러시아 마지막 차르(Tsar‧황제)가 되는 무능한 니콜라이 2세(Nikolai II)도 덩달아 라스푸틴을 중용(重用)했다.

 

비선실세(秘線實勢) 라스푸틴은 황가(皇家)의 일은 물론 외교‧행정 등 국정(國政)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조각(組閣) 인선기준은 “얼마나 나 라스푸틴에게 충성하는 사람인가”였다. 그 과정에서 라스푸틴이 얼마나 천문학적 부정축재(不正蓄財)를 했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귀부인들 성추행 등 막나가던 라스푸틴은 심지어 속옷차림으로 공주들 침소(寢所)에도 맘대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라스푸틴의 악행은 니콜라이 2세의 무능에 의해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제 아내에게 추근대고 나라를 나락(那落)으로 몰고 가는 라스푸틴을 보다 못한 상당수 귀족들은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차르 허락 없이 1916년 12월 궐석재판(闕席裁判) 열고서 라스푸틴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는 동월(同月) 연회를 열어 라스푸틴을 초대했다.

 

라스푸틴은 치사량(致死量)의 청산가리가 든 요리를 먹었지만 거품 물고 쓰러지기는커녕 몇 시간이 넘도록 노래 부르고 춤 췄다. 이는 라스푸틴이 정말 영험(靈驗)해서라기보다는 평소 암살을 두려워해 요리를 먹는 척만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그의 사후(死後) 부검 결과 위장에서는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놀라 자빠진 귀족들은 권총을 꺼내 발포했으나 라스푸틴은 이번에도 즉사하지 않고 오히려 덤벼들었다. 귀족들은 라스푸틴을 오함마 등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한 뒤 말(馬)꼬리에 묶어 질질 끌고 가 얼어붙은 강물에 던져 넣었다. 제정러시아를 멸망으로 이끈 이 요승의 시신은 며칠 뒤 수습(收拾)됐지만, 기어이 살아남은 라스푸틴이 ‘셀프실종’ 돼 천수(天數)를 누렸을 것이란 소문은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주술 덕에 컸나

 

정치권을 둘러싸고 기묘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21세기 선진(先進) 대한민국 정치가 실은 괴력난신(怪力亂神)에 의해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풍문(風聞)이다. 복수(複數)의 인사는 ‘용산’ 고위급인사 거처 선정 등에 개입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은 ‘야권’ 고위급인사 부부와 수년 전 만나 식사했다고 스스로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논란의 인사들 때문에 경제가 휘청이고 국정이 어지러워질 수 있다는 꾸짖음이 필자 주변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고조된다. 민주주의(民主主義) 기본은 투명성이다. 괜히 금융감독원 등이 공정 시장경제(市場經濟) 구축에 나서고, 국회의원 등 재산이 공개되며, 국정감사(國政監査) 등이 실시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비선’은 이러한 감시체제에서 자유롭다. 자연히 권력을 등에 업고서 ‘불놀이’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설사 논란 인사들의 민주주의 훼손 혐의는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외신(外信) 정치면에 한국 정계‧샤먼(shaman) 접촉의혹이 보도되는 것 자체가 나라망신이라는 지적이 높다. 산업화‧민주화 등 이성(理性)의 역사를 써내려온 대한민국이 버블 레이디의 1980년대 일본, 요승의 제정러시아처럼 수준 낮은 국가로 인식되는 게 망신도 보통 망신이 아니라는 목소리다.

 

대한민국은 1t 이상 실용위성을 자력(自力)을 통해 세계 7번째로 쏘아올리고, 미국 등 내로라하는 나라들을 제치고서 현대 첨단기술 집약체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며, 불과 약 반세기만에 원조(援助)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하는 등 국제사회를 선도(善導)하는 모범국가다. 국민 모두가 땀 흘려 이룩한 위대한 나라다. 지박령(地縛霊) 따위의 힘을 빌려 큰 나라가 결코 아니다.

 

주술사를 진지하게 또는 여가(餘暇)삼아 만나서 주머닛돈을 주든 귀신에게 묻든 뭘 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自由)다. 오늘날 정치1번지는 과거와 달리 용산‧여의도로 규정된다. 일부 정계인사들은 개인 사생활을 공관(公館)부지 선택, 대선(大選) 승패여부 진단 등 ‘정치1번지’에까지 끌고 들어오진 말아주길 제발 요구한다. 그에 따른 국제적 망신살은 오로지 국민 몫이 된다. 더 이상 그들 때문에 부끄럽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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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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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dol7707

    아마 정치인들(특히 야당)은 현재의 과학을 유사과학으로 망상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 미신에 빠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 ydol7707
    오주한
    작성자
    2023.07.24
    @ydol7707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저도 과거 주변에서 업무차 뵙는 분들 중에 절박한 심정에 절박한 믿음에 기대는 분들을 종종 뵙곤 했습니다.

     

    절박한 그분들께 진심으로 한줄기 희망을 드리는 행위 자체가 아닌, 여야 정치권에 떠돌며 혹세무민하려는 일부 등등의 각성을 요구코자 하는 게 본 칼럼 요지입니다. 감사합니다.

  • 풀소유

    대선 전부터 무속에 대한 각종 구설수도 모자라 손바닥에 왕자 쓴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대한민국의 민도가 문제입니다.

  • 풀소유
    오주한
    작성자
    2023.07.24
    @풀소유 님에게 보내는 답글

    윗물 맑아야 아랫물 맑듯,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대한민국 살림을 떠맡은 여야 지도층 모두의 각성이 필요한 때 아닌가 싶습니다.

  • INDEX
    2023.07.26

    정치인은 할리우드 영화의 슈퍼히어로도 아니며 소설과 신화에서 나오는 마법사도 아닙니다. 그들의 한계는 너무나도 명확한데 현실적인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신봉하는 국민들을 보면 아, 이것은 종교구나 하는 느낌이 들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정치인이 할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무슨 행동을 하는지 어느정도 유능한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INDEX
    오주한
    작성자
    2023.07.26
    @INDEX 님에게 보내는 답글

    무속민국이라는 오명 뒤집어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분들 많으신 걸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