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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용도 위기의 민주화운동

오주한

우리 국민 과반 “가짜 유공자 있을 것” 의심

‘진짜 유공자’라면 野 정략 휘둘리지 말아야

 

이익집단(利益集團)의 한계

 

용병(傭兵)은 흔히 창부(娼婦) 등과 함께,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회에선 다다익선(多多益善) 즉 ‘머릿수’ 많은 게 최고다. 지난 잃어버린 5년 동안 도덕성 등이 희석된 대한민국이 ‘떼법’에 휘둘리는 건 이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고대인류도 부족한 머릿수 채우기를 위해 이웃부족 등에게 ‘이익’을 약속한 뒤 용병으로 고용하곤 했다.

 

선사시대(先史時代) 용병의 흔적은 헤라클레스(Heracles) 신화 등에 남아 있다. 양치기였던 헤라클레스는 키타이론(Cithaeron)의 사자를 물리쳐 명성 떨쳤다. 사자에게 시달렸던 테스피오스(Thespios)왕은 그 보답으로 헤라클레스를 자신의 딸 50여명과 동침시켰다. 헤라클레스는 이후에는 에우리스테우스(Eurysteus)왕 지시에 의한 12과업 달성을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

 

참고로 양치기라 해서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소설 별(Les étoiles) 등에 묘사된 낭만적 직업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목동은 몇날며칠이고 홀로 또는 소수로 고립돼 유목(遊牧)하는 과정에서 늑대 등 맹수, 산적 등 도적과 싸워 재산‧목숨을 지켜야 한다. 목동의 진짜 모습은 거친 사내들인 북남미 카우보이 등을 생각하면 쉽다. 당장 거인 골리앗(Goliath)을 일격에 쓰러뜨린 용사도 양치기 다윗(David)이다.

 

역사시대(歷史時代)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구절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에 용병이 등장한다. 고대 바빌로니아(Babylonia) 제1왕조에서 기원전 1750년경 작성된 이 법전 중 군법(軍法)에는 “용병 고용 후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장교는 처형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나온다.

 

보병강국 로마제국(the Roman Empire)도 부족한 기마전력 확보를 위해 누미디아(Numidia)기병 등을 고용했다. 동양에서도 고구려의 말갈(靺鞨)기병 기용 등 용병산업이 번성했다. 중세 대항해시대에도 사략선(私掠船) 등이 등장했다.

 

용병산업은 심지어 21세기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근래 가장 유명한 민간군사기업(PMC)은 ‘우크라회군’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 바그너그룹(Wagner Group)이다. 미국에는 아카데미(Academi‧옛 블랙워터)와 톱에이스(Top Ace)가 있다. 현대 PMC는 지상병력뿐만 아니라 군사자문, 심지어 톱에이스처럼 전투기를 고용국가에 제공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건 1970년대 로디지아(Rhodesia‧현 짐바브웨) 용병단이다. 영연방(Commonwealth) 국가였던 로디지아는 남아공처럼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흑백분리정책)를 실시했다. 이에 영국이 강력 반발하자 로디지아는 아예 영연방에서 탈퇴하고서 주변 흑인국가들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부족한 병력확보를 위해 로디지아 정부가 모집한 용병 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흑인도 다수 존재했다. 흑‧백인 용병들은 피부색깔에 상관없이 동지애로 뭉쳐 싸웠다. 이들의 이야기는 추억의 외화 A특공대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만 쓰고 보면 용병은 멋지고 낭만적인 직업인 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전쟁 과정에서의 약탈‧학살‧고문 등 극악무도한 전쟁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블랙워터가 사명(社名)을 바꾸고 회사 이미지를 세탁한 것도 각종 논란 때문이었다. 로디지아 용병단 활약 이면에도 각종 추악한 행적들이 있었다.

 

배경에는 용병의 태생(胎生)적 한계가 있다. 용병단은 기본적으로 이익집단(利益集團)이다. 이들의 최우선 목표는 정의실현도, 애국심도 아닌 ‘이윤’이다. 이들은 정규군이 아니기에 전쟁범죄 등을 엄금한 제네바협약(Geneva Conventions)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도적떼 자처한 이들, 정규군 추구한 이들

 

때문에, 하술할 스위스용병(라이슬로이퍼‧Reisläufer)처럼 모든 용병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용병은 틈만 나면 더 큰 이익에 탐닉하곤 했다. 이를 위해선 불법‧떼법도 불사(不辭)했다. 대표적 사건이 서기 1527년 란츠크네히트(Landsknecht)에 의한 로마대약탈, 즉 사코 디 로마(Sacco di Roma)다.

 

중세 시절 잘 나가던 용병집단은 스위스용병이었다. 지금과 달리 중세 스위스는 ‘악마의 소굴’ 쯤으로 여겨졌다. 국토 대부분이 알프스(Alps)산맥으로 뒤덮인 스위스는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다. 때문에 현지인들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서로 박 터지게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가난하기에 그들의 거주지는 불야성(不夜城)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우중충하기 그지없었다.

 

주변 문명국가 기사단은 이들을 우습게보고 덤볐다가 쌍코피가 터졌다. 무너진 자존심에 씩씩 거리던 귀족들은 어느 순간부터 스위스인을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파이크(Pike‧장창) 밀집대형을 이룬 스위스용병은 무적(無敵)으로 이름 떨쳤다. 이들은 용병으로선 보기 드물게 고용주와의 계약내용을 거의 철저히 준수했다. “한 번 신용이 깎이면 우리를 고용할 자는 줄어들고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다시 굶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독일은 스위스용병에 대항코자 자국 농민 등으로 구성된 용병단 란츠크네히트를 꾸렸다. 란츠크네히트는 파이크는 물론 양손대검 츠바이핸더(Zweihänder)‧화승총 등으로 무장했다. 이들은 화려한 전적(戰績) 못지않게 화려한 의복으로도 악명 떨쳤다. 스위스용병에 비해 절박감도 덜하고, “굵고 짧게 산다”는 ‘가오’를 중시한 란츠크네히트는 레이스가 치렁치렁하게 달린 알록달록한 옷을 선호했다. 이에 당대에도 “저속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고 한다. 물론 화려한 의복은 약탈로 얻거나, 약탈한 재화(財貨)로 구입했다.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은 외왕내제(外王內帝)를 둘러싸고 교황청(敎皇廳)과 대립하게 됐다. 제국의 황제는 용병단장 격이었던 게오르크 폰 프룬츠베르크(Georg von Frundsberg‧생몰연도 1473~1528) 등에게 로마 진격을 명했다.

 

그런데 제국은 란츠크네히트가 만족할만한 충분한 보수를 주지 않았다. 프룬츠베르크는 아내의 보석장신구를 팔아치우는 등 사비(私費)까지 들여 메우려했으나 용병들 성에 차지 않았다. “더 내놔라” 용병들 항의가 극에 달하자 끝내 프룬츠베르크는 1527년 쓰러져 이듬해 숨졌다. 현장 지휘체계가 붕괴되자 란츠크네히트는 “옳다구나” 외치며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폭주’했다. 어쩌면 제국 황제가 이를 노렸을 수도 있다.

 

란츠크네히트 눈에는 도덕이고, 법이고, 신앙이고 없었다. 로마는 그저 ‘현금인출기’일 뿐이었다. 수만 용병들이 창칼 휘두르며 떼거리로 달려들자 로마방어선은 대번에 무너졌다. 입성(入城)한 란츠크네히트는 “여기 정의구현용병단이 왔다. 내 돈 내놔라”며 닥치는 대로 죽이고 뺏었다. 남자는 노인‧아이 가릴 것 없이 살해됐고 여자는 수녀(修女)까지도 성범죄에 노출됐다.

 

교황청에 고용돼 끝까지 사수하던 스위스용병 189명 중 147명도 이 과정에서 무법자들에 의해 숨졌다. 교황 클레멘스7세(Clemens VII)는 이들 덕분에 목숨 건졌지만 끝내 제국에 굴복하고 말았다. 교황청은 스위스용병 정신을 기려 현재 스위스인들을 근위대(Pontifical Swiss Guard), 즉 사실상의 정규군(正規軍)으로 고용 중이다. 스위스 루체른(Luzern)에는 란츠크네히트와 달리 도덕‧법치(法治)‧신용을 목숨처럼 아꼈던 자국 용병들을 위한 빈사의 사자상(Lion Monument)이 있다. 반면 용병 중에서도 유별나게 도적떼를 자처한 란츠크네히트는 악명에 더해 시대흐름에도 뒤쳐져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뒤 오늘날까지도 두고두고 욕 먹고 있다.

 

민주유공자법 거부해 신용‧명예 회복해야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이 여권 반대 속에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를 근래 통과했다.

 

민주당은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그간 ‘보훈(報勳)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합당하게 예우해야 한다고 목청 높였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들은 “민주당 주류(主流)인 586운동권 세력들이 ‘자기편’만 유공자로 지정하기 위한 ‘내 편 신분격상법’이자 ‘가짜유공자 양산법’”이라고 비판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은 “민주유공자법은 ‘공적 과대평가→국가의 힘으로 추모 역사화→보상금 지급→유공자 인정’ 과정을 반복해온 결정판”이라고 했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이달 10~11일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3일 공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가짜 민주화 유공자 유무’를 묻는 질문에 62.2%가 “있을 것”이라 답했다. “없을 것”은 24.6%에 그쳤다. “잘 모름”은 13.2%.

 

때문에 그간 보상받아온 이들을 재차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려 한다면 그 공적이 독립운동 순국선열(殉國先烈), 6‧25 호국영령(護國英靈) 등등에 준한다는 걸 입증하고, 국민적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나온다. 2000년 민주화운동보상법 제정(制定) 후 민주화운동 관련자 중 4988명에게 보상금‧생활지원금 등으로 지급된 혈세(血稅) 등은 총 1169억3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진다. 평균 약 2300만원이다. 6‧25 참전용사 명예수당은 월 39만원이다.

 

란츠크네히트‧스위스용병 평판을 가른 건 ‘진정성’이었다. 여러 민주화 관련자들은, 유독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나온, 이번 민주당발(發)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견지해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민주화운동이 용병적 목적이 아닌 진정 이 땅의 정의‧법치 등을 위한 것이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해는 더 이상 오해에서 머무를 수 없다. 진짜 유공자라면,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신용하락을 더 이상 자초(自招)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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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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