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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구 관경(官警) 충돌사태

오주한

불법엄단 척계광 훼방 놓은 왜관(倭官)들

警, “시민‧국민의 일꾼” 망각하지 말아야

 

질적으로 안 된다면 머릿수로

 

척계광(戚繼光‧생몰연도 서기 1528~1587)은 명(明)나라의 ‘애처가(공처가)’이자 학자이자 군인이다. 왜구(倭寇)를 막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특히 ‘원앙진(鴛鴦陣)’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도(日本刀) 등으로 무장한 왜구 개개인의 전투력은 막강했다. 1467년 또는 1493년부터 수십년 간 이어진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를 거치면서 왜구는 ‘프로페셔널 킬러들’이 됐다. 일격필살(一擊必殺)로 내려치는 왜구의 큰 칼은 어김없이 상대방 투구를 쪼개놓곤 했다.

 

따라서 조선은 물론 명나라도 왜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무기력한 조정을 지켜본 내국인들 중에는 왕직(王直)처럼 왜구와 결탁하는 매국노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조정으로선 왜구를 무찌를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이 때 유대유(兪大猷)를 대신해 최전선 책임자로 발탁된 게 척계광이었다.

 

척계광은 ‘인간흉기’ 왜구들을 정공법(正攻法)으로 격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사실 기발하다고 할 것도 없다. 척계광이 생각해낸 건 속된 말로 ‘다구리’로 왜구에 대항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우선 척계광은 숱한 정규군을 놔두고 새로이 장졸들을 발탁했다. 기준은 ‘공부한 놈’ ‘무술한 놈’ ‘날건달’ 등이 아닌 ‘땀 흘려 거두는 결실의 소중함을 알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군대의 생명은 철저한 상명하복(上命下服)이다. 지휘관 명령이 떨어지면, 그게 옳든 그르든 간에, 수백~수만명이 군말 없이 한 몸처럼 창을 내질러야 한다. 하지만 ‘배우신 분’은 잡념이 너무 많아 망설이게 된다. 이는 한 사람을 넘어 전체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창을 들던 옆 사람들도 “왜 쟤는 저러고 있지” “내가 명령을 잘못 들었나” “겁먹은 쟤 보니까 나도 괜히 오금이 저려오네” 등등 공포가 전염병처럼 퍼지게 된다. 괜히 현대군에서 쓸모도 없어 보이는 제식(制式)훈련을 실시하면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군인을 만드는 게 아니다.

 

‘무술가’는,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괜히 ‘가오’ 잡느라 기기묘묘한 병장기를 들고서 저 혼자 이리 저리 날뛰며 군심(軍心)을 흐트려놓기 일쑤다. 근세 이전의 전투에선 수백~수만명이 긴 창을 들고서 제 몸 하나 돌릴 틈도 없이 빽빽이 밀집해 적진을 밀어버려야 한다. 진세(陣勢)가 무너진 적이 어지러이 달아나면 추격‧섬멸한다. 상당수 전사자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한 명이 현란하게 칼춤 추면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각오로 적진을 노려보던 장졸들 시선이 ‘그 놈’에게로 향하게 된다. 게다가 칼춤 추면서 동료들 베던 ‘그 놈’은 제 풀에 지쳐 쓰러지게 된다. 진세는 어느 한 곳이라도 허점이 생기면 무너지게 된다. 그 빈틈으로 적군이 밀고 들어오면 그 전투는 진 것이나 다름없다.

 

날건달이 전장(戰場)에서 백해무익(百害無益) 하다는 건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미국으로 건너가 엄한 교민들 괴롭히던 건달들이 정작 1992년 LA폭동이 발생하자 쥐새끼처럼 튀어버렸다는 건 유명하다. 상당수 세계 각 군(軍)이 ‘양아치’ 입대를 엄금하는 까닭이다. 폭동 때 교민들 생명‧재산을 지킨 건, 척계광이 선호했던 것처럼, 생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같은 교민들이었다.

 

끝내 왜구를 무찌르다

 

척계광도 “우리 가족은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겠나”며 우직하게 묵묵히 생계를 꾸리던 백성들에게 간곡히 호소했다. 군대를 꾸린 그는 상술한 원앙진을 훈련시켰다. 척계광이 저술한 기효신서(紀效新書) 등에 의하면 원앙진은 장창(長槍)‧낭선(狼筅)‧당파(鏜鈀) 등으로 무장한 병사들을 단위로 묶어 여러 명이 한 명의 왜구를 척살토록 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우르르 덤벼들다간 각개격파(各個擊破)당하기 십상이니 방패‧낭선 등으로 일본도를 막고 무력화시킨 사이 장창병 등이 왜구를 사살하는 식이었다. 이 중 낭선이 특히 방어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고 한다. 가지가 어지럽게 달린 대나무 형태인 이 무기는 날아드는 일본도를 낚아채 고정시켜버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병장기치곤 볼품없는 게 사실이어서 후일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명군(明軍)의 낭선을 본 조선백성들이 어처구니없어 웃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막상 이들의 위력을 본 조선조정은 절강병법(浙江兵法)을 적극 수용했다. 조선 후기 무예훈련 교범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도 기효신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멸왜(滅倭)에서 큰 활약을 한 게 원앙진이지만 그래도 초창기 장졸들로선 불안할 수 있었다. 이들은 아직 실전경험이 없었기에, 아무리 우직하다곤 해도 사람은 사람이기에, 원앙진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우려가 들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척계광은 ‘어마무시한’ 군법(軍法)을 만들었다. 바로 분대장이 전사하면 해당 분대원 ‘전원 처형’이라는 규율이었다. 원앙진은 다수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게 핵심이기에 척계광은 “머리가 죽었는데 몸이 살아있을 수 있나”라고 강조했다. ‘원앙’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평생 일부일처(一夫一妻)인 원앙은 짝이 죽으면 나머지도 따라 죽는 것으로 알려진다. 분대장 시체 만들기 싫으면 교육받은 대로 죽기 살기로 싸워 이기라는 게 척계광의 방침이었다.

 

척계광은 이를 위해 앞열의 병사가 공격을 망설이면 뒷열의 당파수가 수차례 경고한 뒤 찔러죽이도록 했다. 척계광은 다만 “무능한 놈 분대장 만들어놓고 우리더러 책임지라네” 식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분대장은 분대원들이 자율적으로 뽑도록 했다. 분대 내 생활방식 등에 있어서도 분대원들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했다고 한다.

 

책임 망각한 오늘날의 왜국 관리들

 

척계광의 활약을 다룬 창작물에는 상술한 왕직의 양자 모해봉(毛海峰‧또는 왕오), 일본 다이묘(大名)의 가신(家臣) 쿠마자와(熊沢) 등이 등장한다. 모해봉은 실존인물이며 쿠마자와의 주인으로 나오는 마츠라 다카노부(松浦隆信)도 실제로 왜구와 결탁했던 인물이다.

 

일본은 왜구 발흥지로서 왜구를 막을 책임이 있었다. 당시 천하인(天下人)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도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왜구 퇴치에 나선 그는 “해적 진압의 공로를 인정해 달라”며 명나라에 요구하는가 하면 1588년에는 열도 전역에 해적정지령(海賊停止令)을 내렸다. 해적정지령은 왜구가 정권 복속, 특정 다이묘 가신 임관(任官), 무장해제 후 생업종사 등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왜구는 외국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노략질 일삼고 행패 부리던 상태였다. 척계광 관련 영화에는 무사도(武士道)를 지키려하는 정규 사무라이(侍)들과 왜구들 간 갈등이 묘사된다. 왜구들이 명나라 여인들을 납치해 겁탈하자 분노한 다카노부의 아들은 칼을 뽑아 베어버리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책임을 망각한 채 뒤로는 상당수 왜구를 방치해 조선‧명나라 침략을 야기하고 제 백성들도 도탄에 빠뜨렸다. 오히려 임진왜란 때는 왜구를 정규군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순신(李舜臣)과 안골포해전 등에서 맞붙어 패한 왜장(倭將)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 등이 대표적이다.

 

근래 대구에서 열린 논란의 한 축제를 두고 대구시‧경찰이 충돌했다. 해당 축제는 퇴폐(頹廢), 민생침해 등으로 물의를 빚어온 터였다. 때문에 대구시는 그간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축제 주최 측의 도로 불법점거 저지에 나섰지만, 불법 단속의무가 있는 경찰은 도리어 대구시 측을 막아섰다고 한다.

 

이를 두고 다수(多數)의 안녕에 힘 써야 할 경찰이 소수(少數)의 탈선에 매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고조된다. 시민의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권을 침해하면서까지 광란(狂瀾)을 비호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진다.

 

책임을 망각한 채 마치 척계광처럼 불법에 엄중대응하려는 대구시를 막아선 경찰 의중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국민이 급증한다. 극단적으로는 왜구를 이용해 미풍양속(美風良俗)을 해치려 한 히데요시의 앞잡이 마츠라 다카노부, 구키 요시타카 등이 생각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 믿고 싶다. 경찰은 늦게라도 실수를 참회하고 적극 해명하며 시정(是正)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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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email protected]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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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DEX
    2023.06.17

    이런 풍~신(豊臣) 같은 짭새나으리 같으니라고!

  • INDEX
    오주한
    작성자
    2023.06.17
    @INDEX 님에게 보내는 답글

    국민 시민 앞에 고개 '수길' 경찰이 돼야 마땅합니다. 라임 맞춰봤습니다. 이런 풍신썩..일.

  • Mango

    퀴어축제를 반대하는것도 아니고 조용한 공원에가서 지들끼리 놀으라는건데 그것도 안하겠다면 불법을 밥먹듯이 하는 민노총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버스가 우회할곳도 없고 도로점거가 불법인데 축제를 제재하는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결정을 한 경찰도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Mango
    오주한
    작성자
    2023.06.17
    @Mango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제가 예전에 칼럼 썼듯이 상위법과 하위법이 충돌하면 상위법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만,

     

    허나 헌법에는 민생우선도 기재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자 다수결이 근간이니, 그렇다면 상위법 중 다수 우선주의를 따라야 마땅합니다.

     

    헌법파괴 세력은 이 땅에서 축출해야 마땅합니다. 감사합니다.

  • 풀소유

    동성애자들 호위하면서

    자괴감드는 경찰분들도 많았으리라 봅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짓이었는지

  • 풀소유
    오주한
    작성자
    2023.06.17
    @풀소유 님에게 보내는 답글

    예전 제가 대북 일을 하면서 만난 많은 경찰분들(보안과)은 다들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소싯적 같이 공기 좋은 곳에서 토끼탕 먹었던 아저씨가 그립습니다.

     

    국회에, 그 간단한 검열시스템에, 실탄권총 차고 무사통과했다가 허탈히, 이렇게 허술해서 어쩌나, 안타까움 반 허탈함 반으로 웃으시던 모습도 생각나네요. 나라 위하시는 진정한 분이었습니다.

     

    헌데 지금은 헌신하시는 분들을, 개인적으로, 찾아뵙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셨겠지요. 경찰 관련 여러 수뇌부가 정신 차리길 바랄 뿐입니다.

  • 오주한
    풀소유
    @오주한 님에게 보내는 답글

    공직자들 윗물이 더러우니

    셀러리맨화와 자기보신이 우리 사회에

    역병처럼 번진 것 같습니다.

    제 주위에서도 깨끗한 사람들이 업을 그만 두고 더러운 놈들이 고이는 걸 자주 봅니다.

  • 풀소유
    오주한
    작성자
    2023.06.18
    @풀소유 님에게 보내는 답글

    세태에 통탄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