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답이 있다.
정의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공명심은 더욱 아니었을 테고.
불의에 대한 비타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
그의 분노는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비릇된 것.
그의 풍운아적 기질 때문이었을 것이다.
홍준표는 젊은이들에게 내가 너희의 롤모델이다, 왜 나를 싫어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웃었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홍준표를 롤모델로 삼는다.
그가 악동이라 재밌어서? 그게 아니지.
노정객(老政客) 홍준표는 젊은이의 거울과 같다.
한국에서 왜 자식들은 아버지를 그토록 싫어하는가?
왜 자식들은 아버지를 닮아가는가?
한국에서 왜 젊은이들은 홍준표를 그토록 싫어했는가?
왜 젊은이들은 늙은 홍준표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는가?
여기 답이 있다.
왜 젊은이들은 홍준표를 지지해야 했는가?
거울을 감춘다고 자기 모습이 지워지진 않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