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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4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자체 개혁안'을 내놨다. 국회의 통제 방안 마련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자정‧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성난 민심을 달래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선관위는 과거에도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과 채용 비리 등이 터졌을 때 수차례 자체 쇄신 방안을 내놓았으나 무위에 그쳤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선관위에 대한 감사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일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난 대규모 채용 비리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선관위는 "감사원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선관위 직무감찰 결과에 따른 일부 고위직 자녀 경력채용 문제와 복무기강 해이 등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관련 규정에 따라 관련자들에 대해 신속하고 엄중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23년 7월 이후 인사‧감사 관련 제도를 개선하면서 강화된 채용 규정을 적용해 고위직 자녀 채용 문제를 원천 차단했다"며 "그럼에도 국민의 믿음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국민의 불신이 선거 과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덧붙였다.
선관위는 또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선관위가 행정부 소속인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국회에 의한 국정조사와 국정감사 등 외부적 통제까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회에서 통제 방안 마련 논의가 진행된다면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밖에 외부 인사로 구성된 한시적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자정‧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선관위의 '셀프 개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2022년 3월 대선 당시 유권자들이 기표한 사전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기는 모습이 공개돼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이 일자 조병현 선관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선거관리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혁신위는 이후 혼잡 사전투표소 지정 및 특별관리 등 사전투표 관리·운영 개선 방안과 감사 기능 강화 등의 대책을 발표했으나 사전투표 관리 부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선관위는 2023년 10월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에도 이미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바 있다. 하지만 감사위 첫 회의가 석 달 후인 이듬해 1월에서야 열려 '보여주기식' 논란이 불거졌다.
여기에 지난해 5월에는 조직 개편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조직·인사 개선 추진 기구를 설치했지만 모두 내부 인력으로만 구성돼 실효성 논란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지난달 27일 감사원이 공개한 '선관위의 채용 비리 실태'만 보더라도 자체 개혁이 무용지물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이에 따르면 10년간 진행한 경력직 채용 291차례에서 규정 위반이 878건이나 있었다. 규정 위반을 하지 않은 채용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선관위의 채용 비리가 오늘만의 일이 아닌 조직적‧집단으로 성행해 왔다는 방증이다.
일례로 박찬진 전 선관위 사무총장의 딸이 2022년 1월 전남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응시해 합격할 당시 전남선관위는 면접 위원들에게 점수칸에 '빈 평가표'를 내게 한 뒤 박 전 총장 등 내정자들의 점수를 사후에 써넣었다. 또 김세환 전 사무총장 아들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 딸은 각각 인력 소요가 없는데도 경력 채용을 진행한 인천선관위와 충북선관위에 합격했다. 이들은 현재도 선관위에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채용 비리 제보‧신고가 들어왔을 때 "우리는 가족회사" "친인척 채용 전통이 있다"며 묵살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다 보니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선관위에 대한 개혁을 이번에는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개혁을 위해 특별감사관과 사무총장 인사청문회 도입, 법관의 선관위원장 겸임 금지, 시도 선관위 대상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도입, 지방선관위 상임위원 임명 자격 외부 인사로 확대 등 5대 선결 과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선관위의 대국민 사과 이후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입장문을 낸 것에 대해 이제는 정말 국민을 의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줘서 다행"이라면서도 "어떤 기관이 자정능력을 상실하면 외부 제3의 기관이 외과적인 수술을 하는 게 그 조직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정말 필요하다. 국회가 특별감사관법을 제정해서 한시적인 기간 내 선관위의 모든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이 선관위나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은 “선관위가 부정채용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며 '뽑은 사람만 징계 하겠다'고 한다”며 “뽑은 사람만, 그것도 징계만 하면 일이 해결 되는가. 뽑은 사람은 물론 뽑힌 사람까지 모두 파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원 전 장관은 “고심하며 자소서를 쓰고, 절박하게 면접을 준비하고 결과를 기 다리던 수많은 청년들을 모두 들러리로 만들어놓고, 부정채용자 는 그대로 둔채 이제 와서 국회 통제방안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부정채용에 관여한 자, 부정채용된 자 모두 즉시 파면해야 한다. 은근슬쩍 '정직' 처리하고, 몇 달 뒤 슬쩍 복귀할 생각 말라”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정에 민감한 2030세대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며 "그동안 일반 젊은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기회를 얻지 못했다. 더욱이 이런 비리가 집단‧세습적으로 일어났다고 하니 더욱 경악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선관위 셀프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외부적 감시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감사원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직무 감찰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53.8%에 달한다는 여론조사가 이날 나왔다.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민'이 뉴데일리 의뢰로 지난 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감사원이 선관위 인력 관리와 직무 감찰을 해야 한다'는 응답은 53.8%였다. 반면 '감사원이라도 인력 관리 등 직무 감찰은 하면 안 된다'는 응답이 28.9%,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17.4%로 집계됐다. 선관위에 대한 직무 감찰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반대보다 24.8%포인트 높다.
이번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RDD 방식으로 무작위 생성해 추출된 가상번호에 구조화된 질문지를 통한 자동응답(ARS) 조사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6.2%,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3/04/20250304003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