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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을 동시에 받게 되면서 헌정사상 전례 없는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오는 2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 10차 변론이, 같은 날 오전에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 첫 형사재판이 열린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 측은 형사재판과 탄핵심판의 일정이 중첩된다며 변론기일 변경을 요청했으나 헌재의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헌재의 탄핵심판과 법원의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향후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헌재는 20일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을 증인으로 또다시 소환한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홍 전 차장이 작성한 정치인 '체포 명단' 메모의 신빙성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홍 전 차장이 메모를 작성한 경위와 방식, 대통령에게 체포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 등에 대해 엇갈리는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홍 전 차장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인사 청탁까지 한 정황까지 나오면서 민주당 의원들의 회유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 논란이 단순한 법적 공방을 넘어 정치적 파장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헌재에서의 증언과 검증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메모의 진위 여부가 어떻게 판가름 날지 주목된다.
◆尹 탄핵 촉발시킨 "싹 다 잡아들여"…국정원 출신 박선원과 사전 모의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이 "싹 다 잡아들여"라며 정치인 체포 지시설을 공식적으로 처음 알린 정부 고위 공직자였다. "잡아들여"의 대상엔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뿐 아니라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포함됐다.
체포 지시설의 시작은 갑작스러운 그의 해임이었다. '12·3 비상계엄' 사흘 뒤인 지난해 12월 6일 오전, 홍 전 차장의 해임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가 술렁였다. 비상시국에 해외·대북 업무를 관장하는 정보기관 고위직의 해임 소식이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정보위원회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신성범 정보위원장(국민의힘 의원)이 전화로 홍 전 차장에게 해임 여부를 묻자, 그는 "전화로 드릴 수 있는 말이 아니다"라며 국회로 향했다.
이후 국회에 도착한 홍 전 차장은 일부 여야 정보위원들에게 "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이 '방첩사를 도와 정치인을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했고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이 민주당 대표와 한 전 대표를 포함한 체포 명단을 불러줬다"는 말을 털어놨다. 윤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설은 이 말로 공식화됐다.
하지만 여권에선 홍 전 차장이 국회 정보위 보고 전, 정치권에 윤 대통령의 체포 지시 사실을 사전에 누설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홍 전 차장이 계엄 직후인 4일 새벽, 민주당 박선원 의원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현직 정보위 야당 간사이자,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차관급인 국정원 기조실장과 1차장을 지냈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12월 9일 김어준씨 유튜브에 출연해 "4일 0시 2분에 '무슨 일이냐' 하니까 홍 전 차장이 '저도 TV만 보고 있다'고 해서 제가 '그래야 한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었다"고 말했다.
◆체포명단 적힌 '메모'…원본은 버리고 4가지 버전 존재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홍 전 차장이 핵심 증거로 제시한 체포명단 메모가 재작성된 것이 알려지면서 '메모 조작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 메모지 역시 박 의원에게 전달했다.
검찰과 야당에 넘어간 메모에는 '검거 요청(위치 추적)' '축차 검거 후 방첩사 구금 시설 감금' '1차, 2차 검거 차례대로 하는데' 문구가 들어갔다. 또한,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김민석, 딴지일보 김어준, 조국' 등 주요 정치인 실명이 적혀있다.
문제의 메모는 계엄 당일 오후 11시 6분 홍 전 차장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의 통화에서 비롯됐다. 여 전 사령관이 "체포조가 나갔는데 소재 파악이 안 된다"며 10여 명의 명단을 불러줬다는 것이다.
홍 전 차장은 지난 4일 탄핵심판에서 "국정원장 공관 입구 공터에 서서 포켓 속에 있던 메모지에 받아적었다"며 "어두운 곳에서 전화를 받으며 빠르게 적었고, 사무실에 와서 보니 나도 알아보기 어려워 보좌관을 불러 정서(正書)하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보좌관이 정서한 메모에 자신이 '검거 요청' '감금 조사' '방첩사' 등을 가필한 것이 현재 증거로 남아 있는 메모다. 처음 흘려 적었다는 메모는 구겨서 버렸다고 했다.
박선원 의원은 지난해 12월 12일 유튜브에서 이 메모와 관련해 "홍 전 차장이 여 전 사령관과 통화할 때 목소리를 크게 하니까 현장에서 보좌관이 받아 적은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홍 전 차장의 직속 상관이던 조태용 국정원장은 지난 13일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나와 "최근 해당 보좌관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니 사실관계가 달랐다"고 주장했다.
조 원장은 "3일 밤에 홍 전 차장이 사각 포스트잇에 쓴 메모를 줘서 보좌관이 정서를 한 건 맞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오후에 홍 전 차장이 다시 보좌관에게 '네가 기억나는 대로 해서 다시 한번 써서 달라'고 했고, 보좌관은 기억을 더듬어 메모를 썼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좌관은 사람 이름, 직책만 쭉 썼고, 동그라미를 친다든지 방첩사 등은 메모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 여기에 가필한 게 지금 (최종) 메모"라고 설명했다.
홍 전 차장이 처음 쓴 포스트잇 메모(1차), 보좌관이 당일 정서한 메모(2차), 보좌관이 다음 날 기억에 따라 다시 쓴 메모(3차), 누군가 가필한 최종 메모(4차) 네 가지 버전이 있다는 것이다. 메모를 작성할 때 보좌관이 곁에 있었다는 박 의원 주장과도 달랐고 1·2차 메모도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조 원장은 말했다.
메모를 썼다는 장소도 달랐다. 조 원장은 "홍 전 차장은 공관 앞 공터에서 메모했다고 하는데, (메모 작성 시점인) 11시 6분에는 (국정원) 청사 내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 CCTV로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 전 차장이 (메모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했는데 그 내용의 뼈대가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원장 말이 맞다면 홍 전 차장은 헌재에서 위증을 한 셈이다.
이에 대해 홍 전 차장은 "공관과 사무실이 가깝다. 특정 시간이 아니라 전체 동선을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체포지시' 전면 부인…"새벽 1시에 출동"
홍 전 차장에게 체포 명단을 불러줬다는 여 전 사령관도 메모 내용을 부인하는 입장이다. 여 전 사령관은 지난 4일 "홍 전 차장이 '체포조가 나가 있다'고 말했다는데, 저희 부대가 출동한 건 새벽 1시"라며 "그런 대화를 하진 않았을 거 같다"고 증언했다.
다만 구체적인 명단 등에 대해선 "형사재판에서 홍 전 차장과 따질 부분이 많다"며 말을 아꼈다. 여 전 사령관 변호인단도 "홍 전 차장에게 '체포'라는 말을 사용한 기억이 없고 위치 확인 정도만 부탁했었다"고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 측은 '진실 규명을 위한 분석보고서'를 내고 해당 사실을 부인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홍장원은 여인형이 '방첩사 구금시설에 가둔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하였으나 방첩사에는 구금시설 자체가 존재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홍장원은 여인형이 '경찰과 국회를 봉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으나, 방첩사 요원이 국회로 출발한 시각은 00시 25분이며, 평균 출발 시각은 01시"라며 "여인형이 2시간 전에 이러한 상황을 언급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홍장원은 여인형이 '체포조가 나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했으나, 여인형은 '체포조'라는 용어를 사용한 기억이 없으며 단순히 위치 확인만 요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라고 강조했다.
◆홍장원, 민주당 의원에게 7차례 인사 청탁…박지원·박선원과 공모조 원장은 지난 13일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직후 윤 대통령에게 홍 전 차장을 해임 건의한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홍 전 차장이 계엄 다음 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 한번 하시죠'라고 권했다"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국정원장이 야당 대표에게 연락한다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고 했다.
또 "작년 여름 국정원 출신의 야당 의원 중 한 분이 홍 전 차장을 지목하며 '내게 7차례 인사 청탁을 하지 않았느냐'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윤 대통령 측이 "박지원 혹은 박선원 의원 중 한명이냐"고 묻자 "네"라고 답했다.
조 원장은 이 같은 정치적 중립 문제 때문에 홍 전 차장을 해임 건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이날 "정치적 중립 문제가 심각하다는 문제가 있어서 해임을 재가했다"고 했다.
홍 전 차장의 진술 조작의 실체에 대해 여 전 사령관 측도 "홍 전 차장의 조작·거짓 진술은 단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국정원 출신 박선원 민주당 의원 및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의 공모 하에 진행된 것으로 의심된다"며 "이들은 홍장원을 통해 탄핵 정국을 조작하고, 현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이 홍 전 차장의 진술 조작 과정에서 배후를 조종하고 박 전 원장이 국정원 내부 정보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조작된 증거와 허위 진술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홍 전 차장의 메모가 원본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수정된 정황이 있다면 법적 증거로서의 효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홍 전 차장의 증언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고 그 증언으로 윤 대통령 탄핵을 심판하는 건 코미디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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