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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박’ 최주봉 “계엄·탄핵 정국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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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윤수호 레전드

‘쿠웨이트 박’ 최주봉 “계엄·탄핵 정국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파” [2025 신년특집-1945년생 해방둥이의 광복 80년]

n.news.naver.com

1945년 광복 후 태어난 ‘해방둥이’…“우리나라가 정말 이렇게 발전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
“팔십 평생 가장 선명한 기억은 일제 때 의용군 끌려간 아버지의 사진…아버지가 살아 돌아왔기에 내가 있어”
8남매 중 맏이였지만 배우 꿈 이루려 상경…20년 가까이 가난한 무명 배우로 살다 드라마 ‘왕룽일가’의 쿠웨이트 박으로 큰 인기
계엄·탄핵 정국 등 어지러운 나라 형편에 “어려운 민생과 경제를 위해 잘 수습됐으면”
“지혜롭고 저력 있는 민족이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위기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것”
힘든 청년 세대에겐, “살아보니 세상 만사는 순리가 있다…너무 조급해하거나 포기하지 말길” 당부

 

“대한민국이 지금 이렇게 발전해 사는 것 자체가 지난 80년 동안 이룬 위대한 성취라고 봐요. 우리나라가 정말 이 정도로 발전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서울 명동성당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원로배우 최주봉(80)은 ‘들풀 같은 한민족’이기에 80년 전 광복 이후 온갖 고난과 가난 속에서도 버텨내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군 것 같다고 했다.
 
“낫으로 짧게 쳐내고 발로 밟아도 다시 자라고 일어서는 들풀 같은 게 한국인의 민족성”이라고 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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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인기 드라마 ‘왕룽일가’에서 주연보다 더 유명했던 조연 ‘쿠웨이트 박’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연기파 원로배우 최주봉은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라 감회가 새롭다고 한 그는 “낫으로 짧게 쳐내고 발로 밟아도 다시 자라고 일어서는 들풀 같은 게 한국인의 민족성”이라며 “나라가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우리 국민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위기를 잘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최주봉은 1945년 9월21일 충남 예산 삽다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징병으로 끌려갔던 아버지가 해방되기 1∼2년 전 살아 돌아와 어머니와 결혼한 후 낳은 첫 자식이다. 줄줄이 동생이 생기면서 스무 살 차이 나는 막내까지 8남매 중 맏이였다. 그만큼 책임감이 막중해 아버지 장사를 물려받을까도 생각했지만 꿈이었던 배우가 되려 서울로 갔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입학 동기인 박인환, 윤문식과는 6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절친’이다. 1969년 연극 ‘퇴비탑의 기적’으로 데뷔한 최주봉은 가난한 무명 배우 생활을 오래 하다 1986년 MBC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에서 만수아빠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1989년 KBS드라마 ‘왕룽일가’는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쿠웨이트 박을 연기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그해 KBS연기대상 인기상까지 차지했다. “40대가 돼서야 부모님께 조금 효도했어요. 그야말로 금의환향해서 동네 사람들 다 모아 한턱 냈는데 우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셨습니다.”(웃음) 
 
TV와 무대를 오가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온 최주봉은 서울가톨릭연극협회 회장과 전국을 돌며 지역 명소와 명물 등을 소개하는 MBC ‘테마기행 길’ 진행도 맡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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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 평생을 되돌아볼 때 어떤 장면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묻자 그는 “초등학생 때 본 빛 바랜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했다. “일본군에 끌려간 아버지가 의용군 복장으로 어깨에 총을 멘 채 일본군인들과 찍은 사진이었는데 강렬했어요. 여전히 기억에 선명합니다. 아버지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덕에 내가 있는 거잖아요.”
 
광복 80주년을 맞는 나라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태로 얼룩지고 탄핵 정국으로 시끄러운 것에 최주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아프다”고 했다. 이어 조심스럽게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어려운 민생과 경제를 위해 잘 수습되기를 바란다”며 “문화예술계만 해도 지원과 후원이 끊겨 힘들다. 공연 제작비를 도와달라고 찾아간 기업마다 앞날이 불투명하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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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 배우 100여명이 가입한 서울가톨릭연극협회를 10년째 이끄는 최주봉은 최양업(1821∼1861) 신부의 삶을 조명하는 연극(9월 예정)을 준비 중이다. 최 신부는 김대건(1821∼1846) 신부에 이은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 전국 각지에서 공연하려 합니다. 어려운 이웃들의 마음가짐이 편안해지고 버티는 힘이 생기도록 문화예술로 그들의 정신을 살찌워 주고 싶거든요.” 당장 억대의 공연 제작비를 마련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지만 무대에 올리는 그날까지 그가 앞장서서 뛰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최주봉은 실제 인터뷰 내내 활력이 넘쳤다. 긍정과 희망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전도사 같았다. 몹시 위태롭고 불안한 나라 사정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은 지혜롭고 저력이 있으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겁니다. 언젠가 영웅이 나타나 어려운 이 나라를 구할 것이라는 희망도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 없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갑니까.” 
 
최주봉은 특히 힘든 나날을 보내는 청년 세대에겐 너무 조급해하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살아보니 세상 만사는 순리가 있어요. 마음대로 되는 것도, 조급해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젊은 세대가 ‘한발 한발 딛고 나가면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을 품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포기하면 지는 것이나 싸워서 이겨내야 해요. 나도 80이지만 마음은 청춘이에요. 언제든 무대에 불러주기만 하면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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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0년 후, 광복 10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사회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궁금했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웃음) 바라는 건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다하고 화합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자세로, 뭐든 남 탓하지 말고 내 탓이라 생각하고 살면 됩니다. 그러면 (지난 80년 동안 이뤄온 것보다) 더 대단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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