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항소심이 지난 23일 1차 공판을 시작으로 본격 심리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 15일 1심 선고 이후 약 두 달 만이자 지난 2022년 9월 기소 이후 약 2년 4개월 만이다.
이 대표는 대선을 앞둔 지난 2021년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해외출장 중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발언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대표는 해당 인터뷰에서 "마치 내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는데 확인해 보니 전체 우리 일행, 단체사진 중 일부를 떼 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아울러 같은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 협박으로 백현동 개발 부지 용도를 상향 조정했다'는 취지로 허위 답변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앞서 1심은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에게 허위 사실이 공표되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며 "민의가 왜곡되고 민주주의가 훼손된다는 점에서 죄질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며 이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선거법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이 선고돼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 대표의 국회의원 당선은 무효가 된다. 이 대표가 1심에서 선고받은 징역형 집행유예가 3심까지 유지되거나 감형되더라도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결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제한돼 차기 대선 출마도 불가능해진다.
이 대표 측은 1심의 유죄 선고에 같은 달 21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 역시 일부 무죄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李, 1심 선고 후 2개월 간 재판 방해…'법꾸라지' 비판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위반 사건 항소심을 담당하는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9일 이 대표에게 소송기록 접수통지서를 처음 발송했다. 하지만 해당 서류는 '이사불명' 사유로 반환됐다. 이사불명은 송달 대상자가 이사했으나 새로운 주소를 알 수 없어 송달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소송기록 접수통지서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내야 한다. 기간 내에 항소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소가 기각된다.
이후 법원은 같은달 11일 이 대표의 새로운 주소로 다시 송달을 시도했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거나 집에 사람이 없어 송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의 '폐문부재'로 송달되지 않았다.
법원은 같은달 18일 이 대표의 사무실이 있는 국회의원회관을 통해 서류를 전달했다. 결국 이 대표는 법원이 보낸 서류를 수령했고 항소심 절차가 시작됐다.
재판부는 이 대표에게 서류가 전달된 후인 같은달 23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국선변호인을 선임하고 해당 결정을 이 대표 측에 통지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사선변호인을 위촉하지 않을 경우 공적 자금으로 변호인을 지정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이 대표는 사선변호인 선임계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고 해가 넘어갈 때까지 버텼다. 그러다 이 대표는 제출 기한 만료일을 하루 앞둔 시점인 지난 7일 항소이유서와 함께 변호인 선임계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후 대표는 '무더기 증인·증거 신청' 카드를 꺼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표는 최근 항소심 재판부에 7건의 증인 신청서와 증거 제출서 1건, 문서 송부 촉탁 신청 4건 등을 제출했다. 형사재판에서 증인 신문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다는 점을 이용해서 다수의 증인을 신청한 것이다.
◆李, '위헌법률심판제청'도 만지작…與 "재판 지연 전술"
이 대표는 항소심 첫 재판을 전후해 공직선거법 250조 1항과 관련해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재판부에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법률대리인인 이건태 의원은 지난 23일 "이 대표의 변호인은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서도 "변호인단에서 신청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250조 1항은 '당선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 등 방법으로 출생지·가족관계·직업·경력 등에 관해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검찰은 지난 22일 이 대표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문제와 관련한 의견서를 서울고법 재판부에 제출했다. 1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한 근거 조항인 선거법 허위사실 공표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할 것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만일 이 대표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제청하면 헌재의 위헌 여부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재판이 중지된다. 헌재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사건 심판에 주력하고 있다. 이 대표 선거법 사건의 2심이 그만큼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 주진우 의원은 "공직선거법 처벌 규정은 수십 년간 적용되어 온 규정이므로 위헌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가 노골적인 재판 지연 전술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주 의원은 "이재명 피고인은 경기지사 시절에도 당선무효형이 선고되자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바 있다"며 "고법 재판부는 즉시 이번 신청을 기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역시 "이재명 대표가 내일로 예정된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에서 7건의 증인신청서와 증거제출서 1건, 문서송부촉탁신청 4건 등 여러 증거 신청을 하는 등 '노골적인 재판 지연'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李 항소심 재판부, 결심 공판 오는 2월28일 계획…'신속 재판' 의지 드러내
이 대표의 항소심을 심리하는 서울고등법원 형사6-2부(부장판사 이예슬 최은정 정재오)는 지난 23일 열린 1차 공판에서 '신속 재판' 의지를 드러냈다.
당시 재판부는 차후 공판 기일 일정을 정리하며 "이르면 2월 말에 공판 절차를 종료하겠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2월 26일에 결심 공판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심 공판에서는 검찰의 구형·변호인의 최종변론·피고인의 최후진술이 진행된다. 결심 공판이 끝난 후 진행되는 선고 공판은 통상 1~2개월 후 열린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이르면 오는 3월 내로 이 대표에 대한 선고가 이뤄지게 된다.
앞서 재판부는 서울고법에 신건 배당 중지를 요청하고 이를 법원이 인용 했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 1월 13일부터 오는 3월 12일까지 두 달간 새로운 사건을 배당받지 않는다. 법원 예규에 따르면 집중적인 심리가 필요한 경우 재판부는 법원에 신건 배당 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의 신속 재판 의지 표명은 선거범죄에 적용되는 '6·3·3 원칙'을 지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공직선거법 제270조(선거범의 재판 기간에 관한 강행 규정)에 따르면 선거범 등에 대한 재판은 다른 재판보다 우선하여 신속히 진행하고, 1심 선고는 기소 6개월 이내, 2심 및 3심은 원심 선고로부터 3개월 이내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본인의 취임사와 지난해 12월 진행한 신년사에서 재판 지연 문제를 언급하며 "각 법원은 선거사범 재판에서 1심은 6개월, 2심과 3심은 각 3개월 안에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며 '6·3·3 원칙'을 지킬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이 대표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선거법 판결 일정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한 '6·3·3 원칙'을 지키려면 항소심 판결은 2월 15일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다만 이 대표의 재판 지연 전략과 설 연휴 등으로 2월 내 선고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법조계 "이미 늦었지만 6·3·3 원칙 지켜 3월 안에 선고해야"
법조계에서는 이미 1심에서 '6개월 이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항소·상고심 법원의 '신속 재판'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조계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신속 재판'을 강조해 온 점을 언급하며 이 대표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 지연을 경계하고 신속 심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동현 법무법인 신진 변호사는 이 대표의 재판 지연 전략에 대해 "일반 형사 피고인은 재판에 두 번 정도만 안 나가도 바로 법정 구속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대표 경우를 보면 법원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변호사는 3월 내 선고 가능성에 대해선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야 하고 조 대법원장이 신속 재판을 강조한 만큼 항소심 재판부도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라는 사법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건 법무법인 건양 변호사는 변호인 미선임 전략에 대해 "대북송금 사건에서 법관 기피를 신청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변호인 약 2주간 선임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인 전략'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 변호사는 "위헌법률심판제청 역시 의도적으로 법 테두리 안에서 재판 지연을 위해 악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인 만큼 재판부가 주의를 주는 등 신속 재판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도 "1심 판결문을 보면 이 사건 1심이 2년 넘게 걸릴 정도로 복잡한 사건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최근 사법 불신이 심한데 2심·3심 재판부의 신속 재판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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