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가 연달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급등한 것으로 나오자, 더불어민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이의신청을 했다.
지난 3~4일 아시아투데이 의뢰로 실시된 조사(응답률 4.7%,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로 집계되고 지난 4~5일 뉴데일리 의뢰로 이뤄진 조사(응답률 5.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국민의힘의 지지율(38.8%)이 민주당(33.7%)을 앞서는 것으로 드러나자, 민주당이 "여론조사 문항이 편향적으로 설계돼 응답자에게 특정 응답을 유도했다"며 해당 조사를 '불공정 여론조사'로 몰아세운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기각'이었다. 여심위는 지난 20~21일 아시아투데이와 본지에 공문을 보내 "회의 결과, 이의신청의 내용이 이유 없어 기각했다"고 통보했다.
앞서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제108조(누구든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를 하는 경우에는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편향되도록 하는 어휘나 문장을 사용해 질문해서는 안 된다)를 근거로 해당 여론조사가 '여론 호도' 목적이라고 주장했으나, 민주당이 문제 삼은 문항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가 아닌 '일반 정치 현안' 여론조사의 문항으로, 애당초 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여심위는 '정치 현안에 관한 문항을 연속해 배치해 선거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언론사 및 여론조사 기관이 해당 인물의 정치적 비중과 행보, 국민적 관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며 "공직선거법 및 선거여론조사기준 위반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선관위로부터 사전 검토를 받고 진행한 여론조사를 함부로 편향·왜곡조사로 단정하고, 여심위의 심의 대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리수를 던진 민주당의 패착(敗着)이었다.◆"허위로 소명하거나 미제출 시 처벌"
'헛발질'을 한 건 여심위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의 이의신청을 접수한 여심위는 지난 8일 본지에 소명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면서 허위자료를 내거나 거부할 시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이 공문에서 "공직선거법 및 선거여론조사기준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라며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9항에 따라 소명서 제출을 요구한다"고 밝힌 여심위는 "우리 위원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거짓의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 같은 법 제256조 제1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않을 경우 같은 조 제3항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에 특정 문항을 넣은 동기와 목적 △특정 문항에 대한 (민주당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입장 등을 묻는 소명 요구사항을 첨부했다.
여심위가 소명서 제출의 근거로 삼은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9항은 "공표 또는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의 객관성·신뢰성에 대해 정당 또는 후보자가 이의신청을 할 경우 여심위는 해당 조사를 실시한 기관·단체에 '보관 중인 여론조사와 관련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관 중인 여론조사와 관련된 자료'는 △조사설계서 △피조사자선정 △표본추출 △질문지작성 △결과분석 등 조사의 신뢰성과 객관성의 입증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일컫는다. 선거법상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단체는 해당 자료 일체를 선거일 후 6개월까지 보관해야 한다.
본지는 여론조사를 의뢰한 언론사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이나 단체가 아니다. 따라서 관련 자료를 6개월간 보관하거나 여심위 등에 제출할 의무도 없는 언론사에 자료 제출을 강요한 건 명백한 오판이다.
게다가 여심위가 여론조사기관에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건, '보관 중인 여론조사와 관련된 자료'에 국한된다. 하지만 여심위는 본지에 보낸 공문에서 '권한도 없는' 소명서 제출을 요구했다.
◆선관위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조항에도 없는 소명서를 내라고 압박하며 거부할 시 공직선거법상 징역형 등에 처해질 수 있다는 공문을 보낸 행위는, 관계 법령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직권남용'이자 '협박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여심위가 민주당의 일방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관계 법령에도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은 입법부를 장악한 민주당의 막강한 영향력이 선관위에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수차례 편향성 논란을 빚은 '여론조사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오던 선관위가 민주당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바로 칼을 빼 들었다는 점도 선관위의 옥상옥(屋上屋)이 민주당이라는 우려를 짙게 한다.
선거를 관장하는 선관위가 누군가의 하수인이 되거나 불공정의 상징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존립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법의 원칙 아래 세워진 선관위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堡壘)라 할 수 있다. 선관위가 바로 서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 역시 바로 설 수 없다.
'환부'가 드러난 선관위의 개혁과 쇄신을 위해 모두의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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