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확보를 위해 '자본이득세' 개편 카드를 꺼내 든 영국 노동당 정부가 금융투자업계의 거센 반발로 부자 증세안을 일부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모펀드업계 이탈을 우려한 정부가 일종의 '절충안'을 내놓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절충안'은커녕 정치적 셈법에 얽매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때문에 증시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야당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6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이 30일 발표할 예산안에서 사모펀드업계에 고율 관세를 적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투자자들을 영국에서 몰아내지 않으면서 부족한 세금을 메우기 위해 타협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영국은 펀드매너지 성과보수(캐리드 이자)에 28%의 세율을 부과한다. 성과보수는 성격상 근로소득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영국 정부는 이를 자본이득으로 간주해 소득세 최고 세율인 45% 대신 자본이득세율 28%를 적용하고 있다.
8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더 넓은 어깨를 가진 사람이 더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면서 세율을 높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업계에서는 성과보수 세율이 최소 5%P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했고, 영국 사모펀드 산업이 활력을 잃을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영국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 4일 리브스 재무장관은 FT 인터뷰에서 "부유층 과세에 이념적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고 영국 투자를 줄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선 직전인 6월까지만 하더라도 "영국 사모펀드 경영진은 자기자본을 아주 적게 투자하고 있고, 다른 국가들이 요구하는 수준보다 낮다"고 지적한 것과 대조적이다.
리브스 장관 발언이 달라진 것을 두고 FT는 14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는 국제 투자 정상회의를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회의에는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에릭 슈밋 전 구글 CEO,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FT는 "리브스 장관과 스타머 총리는 수많은 투자자를 맞이할 예정"이라며 "이달 말 예산안 발표에서 큰 폭의 세금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투자자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사모펀드업계는 세율 인상을 지속 반대했다. FT에 따르면 사모펀드업계는 현재 28%인 성과보수 세율이 30%대 초반을 넘길 경우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과의 경쟁에서 밀린다고 추정했다.
영국 벤처캐피탈협회(BVCA)의 마이클 무어 CEO는 "새로운 세제는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절충안'을 고심하는 영국과 달리 정치적 논리에 매몰된 한국은 금투세 도입을 유예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시행 예정인 금투세 도입 문제와 관련한 당론 결정을 지도부에 위임하기로 했다. 전면적 시행을 요구하는 찬성파와 유예·폐지를 요구하는 반대파간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면서다.
시행해야 한다는 찬성파들은 2년 전 여야가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예정대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유예나 폐지로 방향을 틀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 중인 상법 개정도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협상 카드를 잃어버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찬성파의 한 의원은 "민주당은 그간 일관되게 부자감세에 반대하고 재정을 활용한 민생지원을 강조해왔다"며 "과세 대상이 극소수에 불과한 금투세의 시행 유예는 곧 자본시장 초고소득자에 대한 사실상의 부자감세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금투세 시행을 또다시 유예한다면 대선 국면에서 다시 유예론이 제기될 것이고, 제도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의 유예론은 사실상 폐기론과 다름없고 공정과세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유예나 폐지를 주장하는 반대파들은 기존 합의는 존중해야 하지만, 국내 증시가 침체기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특히 지방선거(2026년)와 대선(2027년) 등 향후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3년 후쯤에 시행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피력했다.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대선 이후에 결정하자는 것이다.
반대파의 한 의원은 "금투세 시행에 대한 반대 여론과 현실 여건을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며 "조세의 도입은 이론이나 논리적 정당성이 아닌 국민의 공감대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금투세 도입 여부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국내 증시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한국 코스피 상승률은 6.5%로, 전세계 주요국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코스닥 지수도 5.6% 하락하면서 최악의 성적을 냈다. 이는 확전 우려로 긴장감이 가득한 이스라엘 증시(13.8%)보다도 부진한 수준이다.
실제 코스닥 종목 1673개 중 1263개(75.4%)가 연초대비 하락했다. 주가가 50% 넘게 떨어진 '반토막 이하' 종목도 115개(6.8%)에 달했다.
이에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등 주식투자 카페와 종목토론방에서는 늦어지는 금투세 결정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투자자는 "지금 증시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금투세를 간 보는 민주당은 민생을 포기한 것"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대형증권사 한 프라이빗뱅커(PB)는 "뚜렷한 주도주 없이 테마별로 수급이 들쭉날쭉하면서 국내 증시 투자 난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다. 금투세에 대한 조속한 결론을 내야 증시의 방향성이라도 잡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10/08/20241008002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