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세계무역기구(WTO) 등 기존 글로벌 거버넌스 기구들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요 7개국(G7)이 국제 현안을 제대로 다루려면 한국과 호주를 포함한 G9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견해가 미국에서 '초당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등 7개 선진국과 유럽연합(EU)으로 구성된 G7은 세계 무역과 국제금융제도, 국제외교질서를 좌우하는 선진국 그룹이다. G7은 북한·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을 상대로 실질적으로 견제하고 맞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실행 가능한 기구라는 평가를 받는다.
◆美 CSIS "G7 내 아시아 국가는 日뿐 … 韓·호주 가입해야"
16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12일(현지시간) G7 강화 방안을 담은 보고서에서 "현재 G7 회원국은 유럽에 불균형적으로 편중돼 있다"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는 단 한 곳(일본)뿐이며, 개발도상국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G7을 한국과 호주를 포함한 G9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러한 제언의 배경에는 과거에 비해 G7이 다뤄야 할 국제 현안은 많아졌지만 G7의 위상과 역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자리한다. G7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 66.9%에서 2022년 43.4%로 낮아졌으며 세계 인구의 9.8%만 포함하고 있다.
CSIS는 G7의 우선순위인 인도·태평양과 경제안보, 군축과 비확산 등 9개 영역에 기여할 수 있는 한국과 호주를 추가하고 현재 G7의 9석 중 2석을 차지한 유럽의회와 EU 집행위원회를 1석으로 통합해 유럽이 과도하게 반영되고 아시아가 과소 반영된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美 싱크탱크·전직 관료들 "韓, G7 가입해야" 한목소리
한국의 G7 가입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20년 5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기존의 G7 체제가 매우 구식이라며 한국, 호주, 인도, 러시아 등을 추가한 G11 체제로의 전환을 언급했다.
이로부터 약 한 달 뒤 CSIS는 'G7은 올바른 재편이 필요하다'(G7 Needs the Right Kind of Reset) 보고서에서 G7의 일관성·자금 부족을 지적하며 한국, 호주와 같은 국가들이 '유사 입장국들의 테이블'(G7)에 의석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 싱크탱크들과 미국의 전직 관료들은 한국의 G7 가입 필요성을 꾸준히 초당적으로 제언해왔다. 헤리티지재단의 앤서니 김 연구원은 2023년 3월 '70년간 변함없는 미한(한미) 동맹, 한 단계 도약할 때' 보고서에서 "세계 최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이끄는 국가 중 하나인 한국은 G7에 자리 잡을 자격이 있다"며 "G7에 한국을 초청해 G8으로 확장하는 명분을 쌓아야 한다"고 바이든 행정부에 권고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최측근인 론 클레인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지난해 11월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 기고한 'G9이 돼야 할 때'라는 글에서 "일본이 G7 중 유일한 아시아 회원국인데 중국의 도전을 고려할 때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을 G9으로 추가하는 게 타당하다"며 "이 지역 국가 중 (중국이 G7의 대항마로 키우고 있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 GDP 기준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두 나라인 한국과 호주가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재집권 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전력개발 담당 부차관보도 지난 4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G7에는 북대서양과 유럽국가가 너무 많다. 아시아가 (미국 안보 전략의) 핵심이기에 아시아 국가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면서 "G7에서 캐나다를 한국으로 대체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또 다른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캐나다는 방위비 지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그런데 왜 캐나다에 가장 명망 있는 국제단체 회원이라는 보상을 줘야 하나. 한국은 방위비를 충분히 지출하고 있으며 지금은 아시아의 세기(世紀)다. 그런데 왜 G7 회원국 중 6개가 북미나 서유럽 국가인가"라고 반문했다.
◆韓 경제력, G7 플러스 자격 요건 충족 … 국방력·기술력·소프트파워까지
한국은 여러 지표에서 G7 플러스(G8 혹은 G9 국가)로서의 자격을 충족한다. 한국은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1975년 G6 회원국 자격 요건을 토대로 추정한 2022년 기준 G7 국가들의 경제력 요건인 자유민주주의국가 1인당 GDP 3만 달러 이상, 세계 GDP 점유율 비중 2% 이상에 부합한다. 국방력은 2023년 기준 세계 6위(핵보유국 제외 시 1위)다.
GDP 대비 연구·개발(R&D) 비중은 세계 2위, 국제특허출원은 세계 4위로 기술력과 혁신 능력을 갖췄고 반도체 시장점유율 세계 2위로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하고 있다. K팝과 K드라마, 한식 등 전 세계적인 한류 열풍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입증한다.
◆美, 韓 가입 초당적으로 지지 … 캐나다, 자격 미달에도 美 지지로 가입G7 플러스로서 자격을 갖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초당적인 지지는 한국의 G7 플러스 가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캐나다는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3%로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1976년 미국의 강력한 지지로 당시 G6(이후 G7으로 확대)에 가입할 수 있었다.
G7 플러스에 가입하려면 기존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지만, 반드시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야 할 필요는 없다.
맥스 버그만 CSIS 유라시아 국장 최근 CSIS 토론회에서 "호주와 한국의 가입에는 큰 공식적인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며 "G7의 진화 과정에서 EU도 어떤 면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들어왔다. 이미 참여하고 있는, 같은 마음을 가진 이 두 국가를 추가하는 것은 G7을 보다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韓 G7 가입 장애물은 국내 정치 … 민주당, '한반도 천동설'만 주장
그러나 G7 플러스로 향하는 한국의 발목을 잡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국내 정치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지난달 니어재단 포럼에서 "정부도 '최소한 3년 내 G7에 가입하겠다'는 등의 내부 계획조차 마련하지 않았고, 야당은 G7 플러스 가입에 관심이 없다"며 "윤석열 정부 3년 임기 내에 가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할 때처럼 (G7 플러스 가입을) 국가 전략 목표로 설정하지 않는다면 (G7에 걸맞은) 내부 역량을 갖추고 여론을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오랜 외교 기조인 '균형외교'(실용외교)로 비춰볼 때 자유민주주의 선진국 연대인 G7 플러스 가입이 초당적인 국가 전략목표로 설정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 등으로 대표되는 실용외교는 외교가에서 '한반도 천동설'로 통한다. 70년 동맹인 미국, 북한의 혈맹인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중립'을 지킴으로써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정치 판도를 주도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중견국이라는 한국의 현실과 크게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이 문재인 정부 당시 한국의 G7 가입에 회의적이었던 이유도 문 정부의 외교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본은 문재인 정부의 남북 화해·친중 성향과 외교 정책이 G7과 다르다고 문제 삼았고,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역사 문제를 제기할 것을 경계한다"고 분석했다.
◆ 민주당, '北혈맹' 중국과의 관계 강조… 국제정치 현실·이탈리아 속내 간과
민주당이 주장하는 실용외교 기조를 들여다보면 결국 중국과의 관계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17년 3월 6일 "대통령이 되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철회하겠다"고 중국 관영 방송에 출연해 약속했다. 2023년 6월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예방한 자리에서는 "대한민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적극 지지한다"며 한국 정부가 1992년 한중수교 교섭 당시부터 거부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는 것처럼 역사왜곡까지 일삼았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3월 22일 충남 당진 유세에 "왜 중국에 집적거리느냐. (중국에) '셰셰'(謝謝·감사합니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발언해 빈축을 샀다.
민주당은 한국이 6월 이탈리아가 주최한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지 못하자 윤석열 정부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외교'를 실용외교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4월 20일 서면 브리핑에서 "대중(對中) 관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미·일을 비롯한 서방국과의 연대를 강화해 왔음에도 이런 결과라니 참담할 지경"이라며 "그간의 실패한 외교·안보 정책을 성찰하고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라"고 주장했다.
'집권 야당'으로 불리는 민주당의 '외교참패 공세'는 아프리카 난민 유입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유럽국가들이 G7 정상회의에 아프리카 국가들을 위주로 초청해왔고, 이탈리아가 한국의 G7 가입 시 자국의 위상이 더욱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북한·중국·러시아 등 전체주의 세력이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세계안보를 파국으로 몰고가고 있는 현실도 무시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비호하며 거부권을 남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불능 상태에 빠뜨렸고 북한의 유엔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의 활동마저도 종료시켰다. 중국은 브릭스(BRICS)를 확대하며 G7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북한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무기거래와 첨단 군사기술 거래 등 불법적인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쟁은 국경에서 멈춰야" … 한국판 '반덴버그 결의' 절실
"정쟁은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Politics stops at the water’s edge)는 아서 반덴버그의 명언은 전 세계 외교가의 상식으로 통한다. 1948년 당시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였던 그는 고립주의를 버리고 민주당 소속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초당적인 외교적 협력을 약속해 소련 팽창을 저지할 초석을 마련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국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외교적 논란을 자초하며 상식에 역행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좌파 진영의 '독도 선동 언론 플레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회의원 3명(민병덕·백혜련·김병욱)을 포함한 민주당 경기도당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회 독도수호단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對)언론 공개 일정'으로 각각 지난 4월과 5월 독도를 방문했다. 이들의 공개 방문은 역사·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가 확실하고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독도를 국제 분쟁화할 우려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MBC의 '바이든 vs 날리면 이메일 사건'은 외교 참사로 번질 뻔한 사례로 꼽힌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방미 당시 MBC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단정적인 자막을 추가한 뒤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에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 대해 비하 표현을 쓴 데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묻는 이메일까지 보냈다.
G7 플러스 가입 등 국익을 위해 국내 정치인들이 한국판 반덴버그 결의를 채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6/15/20240615000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