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 회담에서 유일하게 의견 일치를 이룬 대목은 '의료개혁과 의대증원'의 필요성이었다. 야당 차원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설정했다는 것은 시대적 흐름으로 읽힌다. 그 근간엔 의료대란을 감내한 환자 희생이 존재한다.
2000명을 고집하던 정부는 의대증원 수치를 각 대학이 결정하라고 50~100%의 재량권을 넘겼다.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었으나 최종 수치는 1500명 이상으로 결정될 전망이다. 정책은 절차를 밟아 진행됐고 이를 번복할 논리는 부족하다.
의사들은 똘똘 뭉치고 있다. 의대생부터 명예교수까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만약 다른 의견이 나온다면 배신자 낙인이 찍힌다. 특히 5월부터 "목숨을 걸겠다"는 초강경파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당선자의 임기가 시작돼 타협 없는 투쟁 기조는 더 견고해질 것이다.
의협은 개원가를 대표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의료계 종주단체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제 의사회원의 권익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설정한 의협 중심으로 전체 의사들이 모이고 원점 재검토에서 백지화로 전환돼 강경 대응을 할 것이다. 마지막 카드로 남겨진 개원가까지 참여하는 총파업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30일 사상 초유의 평일 셧다운을 선언한 서울의대 교수들은 진료실이 아닌 행사장으로 향해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열었다. 의대증원을 결정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고 의료 정책과 전공의 수련환경을 바꾸자는 포괄적 내용도 다뤄졌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은 전 세계와 비교해도 매우 우수했으나 두 달 만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다"며 "정부가 의사 집단을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했다"고 비판했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의대증원 1년 유예를 전제로 '국민과 환자가 원하는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모습' 공모전을 진행 중이며 이를 토대로 적정 의사 수를 추계하자고 제안했지만 시간은 너무 흘렀다.
지난 2월 현 정부의 발표 이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추진됐던 것은 물론 의대 정원이 3058명으로 축소된 후 정체된 지난 2006년 이후부터 의사 수 확충은 국내 의료체계 개편과 고령화 대응을 위한 핵심 의제였다.
진작에 구체적 논의를 진행하고 근거를 갖춘 의료계의 연구가 있었다면 대응할 논리가 충분했겠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다. 의사 확충의 정당성이 확보된 논문이 나온다고 해도 의료계가 수용한다는 보장이 없다.
환자를 볼모로 잡고 정책을 반대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두 달여의 의료대란 상황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중중질환연합회만 비판 성명과 기자회견을 열어 대응했다. 각종 환우회가 주저했던 이유는 의사들이 생명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진료가 빨리 잡히길 바라면서 희생을 받아들였다.
적어도 1년 유예나 원점 재검토, 백지화를 주장하려면 이탈 전공의 복귀를 담보한 대안이 있어야 했다. 미래의료를 논하기에 앞서 당장 수술이 밀려 공포에 떠는 환자들에 대한 공감이 필요했다. 전공의 복귀는 기약이 없고 교수도 떠난다는 사실에 약자의 설움은 죽음의 경계에서 쌓여가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공백과 미흡한 지역의료, 공공의료원 의사 구직난은 국내 의료체계의 고질병이 됐다. 그렇다고 피부, 미용 분야가 아닌 전문의 타이틀을 지키며 필수의료로 회귀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가장 시급한 저수가 문제 해결방안은 의료계가 키를 쥐고 움직여야 하는데 정부가 알아서 추진하는 형태가 됐다. 의료개혁 특별위원회 등 판이 깔렸는데 의대증원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5월에 접어들어 의사들의 투쟁 수위는 더 올라가겠지만, 국민적 요구와 이를 묵인하기 어려운 정부와 여야는 의대증원을 추진할 것이다. 이미 환자 희생이 발생한 상황에서 원점 재검토나 백지화를 선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의료계가 2025학년도 의대증원은 받아들이되 2026년부터 재논의를 하거나 필수, 지역, 공공의료 활성화를 위한 수가 인상이나 지원책을 얻어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최소한 환자를 살린다는 숭고한 가치를 지닌 직업적 윤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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