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 출신 정치인들이 사과를 안 하는 이유
"이태원 참사 대응 과정이 잘 보여주고 있듯, 윤석열 정부는 정치적 책임을 자꾸 법으로 해결하려는 버릇이 있어요.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완전히 다른 겁니다.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해서 정치적 책임이 사라지지 않아요. 법치와 정치가 같으면 분리되어 있을 이유가 없어요. 법치가 이미 일어난 일을 사후 처리하는 것에 가깝다면, 정치는 무언가 일어날 일을 대비하는 활동이에요. 근본적으로 목적이 다릅니다.
정치가 진짜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위기의 순간입니다. 위기 시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원칙과 법이 통하지 않잖아요. 그런 순간에 정치 리더가 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해요. 재난 상황에서 정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의 역할은 '이 책임이 궁극적으로 나에게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국민들이 서로 싸우지 않게 만드는 거예요. 정치 지도자보고 현장에 가서 사람 구하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런 역할이 아니에요. 국민들의 정신적인 구심적 역할과 책임 소재를 분산시키지 않는 역할을 해야 해요.
책임 회피는 인간의 본능에 가까워요. 사회심리학에서는 '선택적 도덕 이탈'이라고 불러요. '어쩔 수 없었다'라고 정당화하거나, 더 교묘해지면 자신들의 과오나 악행에 중립적인 이름을 붙입니다. 더 나아가면 적반하장입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는 거죠. 이런 식의 선택적 도덕 이탈이 계속되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잖아요. 그걸 막기 위해서 하는 활동이 정치에요. 그래서 정치는 책임과 분리될 수가 없어요. 정치한다는 말은 책임진다는 말과 똑같은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권위를 부여하는 거고요.
법률가 출신 정치인들이 특히 사과를 잘 안 하잖아요. 사과하는 순간 법적 책임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치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건 결국 정치가 위기에 빠졌다는 말이에요. 정치에 책임은 없고 권위만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어요.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구성원들은 용납하면 안 돼요. 도덕적 책임은 양심에 달려 있지만 정치적 책임은 행위에 달려 있어요. 권력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면 시민들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김만권(정치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