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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그때는 독립군 지금은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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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후대세

홍범도 장군, 그때는 독립군 지금은 빨치산?

n.news.naver.com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반병률 교수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파묘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는 보수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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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률 교수는 “역사는 풍부한 자산이지만 엄중한 값을 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시사IN 조남진

2년 전 은퇴한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며칠, 다시 ‘강단’에 서고 있다. 밤낮없이 울리는 휴대전화로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앵커의 질문에 답한다. 8월25일, 육군사관학교(육사)가 교내에 있는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한 이후부터다.

소식이 알려진 뒤 독립운동 기념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군은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이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8월28일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육사를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호국 간성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규정한 뒤,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있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평생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반병률 교수는 객관적 증거를 통해 학계에서 인정된 역사적 사실조차 국방부가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 교수가 건넨 명함에는 그의 이름이 러시아어로도 적혀 있었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려면 연해주 등 러시아 지역과 자주 교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8월30일, 경기 광주시에 있는 무돌국제한국학연구소에서 반병률 교수를 만났다. 그의 등 뒤에는 손때 묻은 책 1만5000여 권이 꽂혀 있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고 한다.

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의혹’이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홍범도 장군이 그 당시 그 지역에 있었던 건 맞다. 하지만 어떠한 영향력도 끼친 적 없고,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그가 독립군의 무장해제에 찬성했다던데.

1921년 참변이 벌어졌던 자유시는 원동공화국(극동공화국, 제국주의에서 유래된 단어인 ‘극동’ 대신 ‘원동’을 쓰기도 함)에 있었다. 러시아 내전 때 완충지대로 잠시 만들어진 국가다. 이곳에는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가 있었는데, 원래 상해파가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러시아 볼셰비키 간부들의 결정으로 권한이 넘어가면서 이르쿠츠크파가 상해파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한다. 상해파에 통합돼 있던 한인 독립군들은 무장해제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남의 영토에서 '손님'으로 지내고 있는 처지였으니까.

김좌진 장군은 자유시로 가지 않았다. 홍범도 장군도 자유시로 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지금 관점에서 당시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때 시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게 역사학자의 기본적 태도다. 이걸 ‘역사주의’라고 한다. 역사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자유시 참변이 있기 직전인 1920년 경신참변(간도참변)이 일어나지 않았나. 일본군이 한인 3500여 명을 학살한 상황에서 대다수 독립군들은 옷과 식량을 보급해주고 피난처를 제공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자유시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좌진 장군과 함께 북로군정서를 이끌었던 서일 총재도 자유시로 갔다가 참변에 휘말렸다. 혼란스러운 때였다.

그렇다면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은 어디서 나온 걸까?

역사학계에도 책임이 있다. 연구를 더 깊이 했어야 하는데 러시아나 중국 지역에 걸쳐 있는 근현대사는 이념 문제로 연구를 많이 하지 못했다. 또 대중적 통로를 통해서 국민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라도 온 국민이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반공’ ‘빨치산’ 단어에 머물러 있는 국민들의 역사 인식 수준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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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5인 흉상 제막식. 맨 왼쪽이 홍범도 장군이다.©연합뉴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과 청산리전투에도 빨치산으로서 참가했다는 의혹”이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건 그야말로 초보적인 내용이다. ‘빨치산’ 어원이 ‘파르티잔(partizan)’ 아닌가. 러시아어로 파르티잔은 ‘비정규군’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을 뜻한다. 홍범도 장군이 자신을 ‘빨치산’이라고 한 건 의병이라고 적은 것일 뿐이다. 그걸 가지고 마치 나중에 김일성이 했던 항일 빨치산인 것처럼 몰아가는 건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홍범도 장군이 빨치산으로 활동했다고 적은 기간은 1919~1922년인데, 당시 김일성은 7~10살이었다.

실제로 홍범도 장군은 소련공산당에 입당했는데.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에 가입한 건 1927년, 59세 때다. 60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은 콜호즈(집단농장)를 수차례 옮겨다니며 떠돌고 있었는데, 당적이 있으면 그나마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생활형 당원’이었다. 게다가 당시 소련공산당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공산당이 아니다. 당원 가입을 신청하면 거의 대부분 받아주던 시기였다. 1962년에 박정희 군사혁명위원장이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할 때도 그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 삼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그조차 독립운동의 가치는 알았던 거다. 이명박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도 이렇게까지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흉상 이전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이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이념을 따질 것 같으면 김좌진 장군이나 이회영 선생은 아나키스트다. 아나키즘이 지금 국가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맞나? 자유민주주의는 각자의 가치관을 향유하면서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거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공산주의고 파시즘이다. 공산당 가입 이력이 있으니 항일 투쟁 이력 전부를 부정한다는 건, 1945년 이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만 독립운동으로 보겠다는 뉴라이트 사관이다. 홍범도 장군을 빼고 백선엽 장군을 넣겠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나. 이건 보수가 아니다. 보수주의의 전통은 애국이다. 애국의 뿌리는 독립운동가를 예우하는 게 아닌가. 지금 윤석열 정부는 보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거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가깝게는 문재인 정부 때 자신들이 싸우고 피해 봤던 것에 대한 보상 심리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옳다는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게 아닐까.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항상 역사를 빌려 자신을 빛내려는 유혹에 빠진다. 역사는 참 풍부한 자산이지만 엄중하고 무서운 값을 치러야 한다. 심판을 받게 돼 있다.

문재인 정부 때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비판도 있는데.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은 1990년대부터 여러 차례 추진됐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한 직후인 1993~1994년에는 북한에서 유해를 모셔가려 했지만 고려인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021년 유해 봉환 직후 SNS에 “김일성은 자신의 항일 업적만 내세우기 위해 홍범도 장군의 독립 무장활동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일부 홍 장군을 좌익계 독립운동가로 평가하지만, 김일성은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다”라는 글을 올렸다).

유해를 봉환하지 말았어야 했나?

고려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이대로 두자’ ‘통일된 이후에 모시고 가자’ ‘남이든 북이든 적극적인 쪽으로 가시는 게 낫다’ 등. 그러다 2021년 문재인 정부가 유해를 수습해왔을 때 박노자 교수는 “카자흐스탄 국가 권력자와 협의한 거지, 고려인 사회의 여론은 무시한 게 아니냐”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흉상을 설치할 때도 논란이 있었다.

없애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파묘나 다름없다. 그 사람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중대사를 결정할 때는 결정권자들이 한발 물러서서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 설득도 하고 의견도 모아야 한다. 역사학자들은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척을 지지 않는다. 돌아가신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이승만 재평가를 이끌어낸 분인데,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둘 다 자료를 우선하고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서로 아끼고 존중했다. 정치적 의견과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다면 그래야 한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군 내부적으로 판단해서 결론 내릴 수 있으면 굳이 외부 학계와 협의는 필요 없을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쉽다. 명색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 나라의 중요한 부처인데 이렇게 편향되고 왜곡된, 작위적인 역사 해석에만 의존해서 해명을 내고 입장을 밝힌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다 기록에 남지 않나. 이것도 역사가 될 텐데. 군도 바뀌어야 한다. '독립운동가는 맞지만 공산당에 가입했기 때문에 육사생도의 롤모델로 삼을 수 없다'니, 지금은 2023년인데 1950년대 반공 가치관에만 매달려 북한만을 유일한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군은 북한뿐만 아니라 그 누구로부터든 민족과 국가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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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0일 열린 항의 기자회견에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들고 있던 피켓.©연합뉴스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민족과 국가를 지키는 군대라고 했지만, 사실 민족을 지키는 군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분단된 상태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지키는 군대는 되어야 하는데 지금 군은 5년짜리 정권, 그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수를 지키는 군대다. 설사 지금 흉상을 옮긴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어떻게 확신하나?

역사가 그렇다. 딱히 진보사관을 믿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지고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방향으로 발전해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논란을 겪으며 든 감정은?

소모적이다. 쌓여 있는 현안도 많은데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고, 서로 감정적인 골만 깊어지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성과도 없다. 빨리 이 논쟁을 끝내고 생산적인 일에 힘을 모았으면 한다. 한국 사회의 진짜 문제와 허점을 들여다보고 고쳐나가기도 바쁜데 이런 걸로 싸우면 힘들지 않나. 내가 지금 체력이 떨어지듯이. 어제부터 아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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