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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의 삶과 세상이야기] 19번째: 어머니와 일기장

이명박대통령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오래된 갈색노트를 내주셨다. 

네 귀퉁이가 해진 노트의 겉장에는 ‘십이월 이십이일에 시작함. 이회창’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청주중학교 1학년 겨울에 쓴 나의 일기장이었다.

 

“이런 걸 아직도 보관하고 계세요?”

 

웃으며 물었더니 어머니는 정색을 하시며,

 

“이런 걸이라니. 이보다 더 소중한게 뭐가 있어?”라고 말씀하시며 일기장을 내 손에 놓으셨다.

 

나는 소년시절의 나를 만나는 설레임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기장을 펼쳤다.

  

12월 22일

한번 공부를 열을 내면 되겠는데 개으른지 도모지 움직이지 싫다.

언젠가 동지인지 몰라서 집안사람이 다 모여 상의한 결과 오늘이 동지라 정했다.

그렇드니 두부장사가 와서 내일이 동지라 한다. 오늘 팥죽 쑬 계획도 “빵구”다.

  

12월 23일 동지

오늘은 장날이고 동지다. 날이 맑으니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다. 오늘 동지라 팥죽맛이 기다려진다. 

낮에 팥죽을 먹었다. 맛좋다. 너무 많이 먹었다가는 방귀가 나오니 그만 먹어야지. 저녁에는 오랫동안 

공부했다. 오랫동안이라 해봤자 얼마 안 되지마는……

  

1월 2일

정말 세월은 빠르다.

방학을 하기 전에는 날이 가는 것이 느린 것 같더니 방학을 하고 나서는 정말 세월이 빨라 벌써 설이 

지났다. 아직도 시험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 오늘은 장날이기에 장에 갔다. 놀랄 만큼 물가가 비싸다. 

무 하나에 50円이라니……

  

1월 5일

오늘 우리집 양식 배급 받을 날이 어서 배급소로 갔다. 쌀만 준다.

점점 배급물이 좋아진다. 이만한 정도로 나가면 조선 완전 독립도 그리 멀지 않을 걸 하는 생각이 났

다. 저녁에는 바람이 막 분다 아버지께서는 출장하셨다. 어찌 바람이 센지 앞 전매서의 포폴라나무가 

불어질듯 절을 하고 있다.

  

1월 22일

오전에는 비만 오더니 오후에는 눈조차 되풀이 쏟는다. 아침부터 심부름하느라고 정신없었다. 저녁에 

손님들이 오셨다. 그 중 한 분은 청주 중학교의 역사선생 이규택 선생님이셨다. 저녁에 또 눈보라치는 

길 위에서 죽을 뻔하면서 심부름하였다.

  

2월 1일

아아…… 길디긴 방학도 이제 끝났다.

내일은 학교에 간다.

그 길디긴 방학이 곡 어제 하루같이 생각된다.

그러면 이 일기도 그만 “안녕히 계세요”다.

  

일기장의 마지막 장에는, 담임선생님의 자상한 격려가 쓰여 있었다.

  

“회창 군에게,

군은 문학적 머리와 조직된 두뇌를 가졌다. 일기 서술체는 단순하였으나 읽기에 자미가 이섰다…

청주중학교 담임선생 박경주“

  

일기장을 덮으며, 가슴에 벅찬 기쁨이 고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지난 세월에 대한 그리움일까. 마치 어제 일처럼 그 당시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동생의 세 돌 생일을 

맞아서 기뻐하던 모습과 많은 호기심으로 세상에 관해 두리번거리는 소년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떻게 이런 걸 다 보관하고 계셨어요?”

 

일기를 읽는 동안 소년으로 돌아갔던 나는, 그때의 그 어린 소년의 마음으로 응석을 부리듯 어머니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까까머리 소년의 나를 만날 수 있었을까. 

어머니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자식들에 대한 기록들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일기장은 물론이고 통신

표, 상장, 입학 허가서 등……. 자식들에 대한 것은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소중하게 간직해오셨다. 

자식들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몇 년 전 내가 정치에 입문했을 때 어머니는 아내에게도 한 권의 일기장을 손에 건네주셨다. 

그것은 내가 소학교 1학년 때 쓴 일기장이었다. 60년이나 지난 남편의 일기장을 시어머니로부터 전해

받는 아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때 기분을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남편의 어린 시절을 갓 우물

에서 건져내 두 손에 고스란히 건네받는 심정이었다고……. 아내는 보물상자를 받듯이 숙연한 마음으

로 내 일기장을 건네받았다고 한다.

 

바스라질 것 같은 낡은 갈색 일기장을 펼쳐 보며 또 한번 마음이 뭉클해진다. 조금만 닿기만 해도 찢어

져버릴 것만 같은 60년이나 된 일기장을 어머니는 과연, 어떤 심정으로 보관해오셨을까.

  

어머니의 교육방식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인성 중심의 교육이라고나 할까. 

어머니는 어린 아들이 보따리를 메고 직접 시장에 나가 쌀을 사오도록 했다. 한 말씩 살 형편이 안 되

기도 해서였겠지만 어머니는 꼭 한두 되씩만 사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가지고 있는 돈으로 좋은 

쌀을 사기 위해 쌀집에 가서 직접 쌀을 먹어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좋은 쌀을 좋은 가격에 사오면 칭찬

해주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이들의 독립심을 키누는 데 주력하셨던 것 같다.

 

요즘도 잊을 만하면 며느리들에게 옛날 기록들을 건네시곤 한다. 얼마 전에는 사진을 보내오셨다. 

가장자리가 누렇게 바랜 흑백 사진의 뒷면에는 ‘광주 서석초등학교에서’, ‘청주중학교에서’…… 등 

이렇게 짤막짤막하게 추억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아직도 어머니의 사랑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한 사진을 들여다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 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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