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주인아와 시간을 보냈다. 패턴은 지난번 주인아와 처음 시내에서 만났을 때와 거의 비슷했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양식집에 가서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 카페로 향했다. 시간만 저녁시간이었을 뿐 정말 그때와 다른게 거의 없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생활, 알바, 진로, 심지어 연애얘기까지... 물론 얘기가 재미없지는 않았다. 우리는 같은 또래에 이성 친구였기 때문에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유하며 즐겁게 얘기했다. 하지만 뭐랄까... 그냥 거기까지였다. 주인아는 나에게 이제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뿐이다.
“선우야 이제 우리 슬슬 나갈까?”
시간은 벌써 8시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주인아와 함께 카페를 나왔다. 예전처럼 시내를 좀 더 걷다 가겠지...
“선우야, 우리 도라지 공원으로 갈까?”
주인아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도라지공원? 그곳은 갑자기 왜...
“응? 거긴 왜?”
“네가 은비랑 예전에 자주 갔었다며, 최근에도 거기서 마주치기도 했고... 나도 너랑 거기 가보고 싶어!”
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다. 도라지공원은 내가 단은비와 첫사랑을 나눴던 추억이 담긴 장소... 지금도 잊지 못하고 찾는 장소... 그런 장소를 알면서도 같이 가자는 것은... 이제는 주인아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선미 누나의 말이 옳았다.
“미안해 인아... 난 거긴 가고 싶지 않아.”
나는 결국 주인아의 제안을 거절했다. 오늘 저녁시간을 내내 같이 보내면서 느낀 결과가 이것이다. 나는 주인아를 정말 좋은 친구로 생각하지만 이성적인 감정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제 이 의사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어설프게 행동해서 상처주어선 안된다.
“역시, 그렇구나... 네 말 뜻 잘 알겠어.”
나는 순간 정말 당황했다. 주인아는 그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다. 요즘 들어 웃는 모습도 많아서 의아했는데 우는 모습은 정말이지 난생 처음 본다. 얼음공주라는 애가 눈물을 흘리다니... 전교 1등을 놓쳐도 표정변화가 없던 그 얼음공주가...
“인아야, 울지마 미안해...”
나는 마침 가지고 있던 주유소 휴지를 꺼내 주인아를 달래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자리를 피하였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볼 것이다. 여고생은 정말 서럽게 울고 있고 남고생은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미안해, 감정이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그만...”
시간이 지나서 어느 정도 진정을 하고 주인아는 다시 차분함을 되찾고 나에게 말했다.
“아니야, 내가 너무 매몰차게 말한 것 같아.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넌 그냥 솔직한 네 맘을 말한거잖아? 난 오히려 그렇게 해줘서 좋아! 지금까지처럼 애매하게 행동했으면 난 더 힘들었을거라고!”
그랬구나... 선미 누나의 말이 대충 다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확실하게 선을 그음으로써 오히려 주인아의 맘도 한층 편해진 것 같다.
“선우야 마지막 부탁이 있어. 이 일로 우리 어색해지지 말자! 앞으로 학교에서나 알바할때나 평소처럼 지내자!”
“그래 물론이지,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너 요즘 알바한다고 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넌 평소처럼 전교 1등을 해야 어울려! 이번 중간고사 꼭 전교 1등 했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당부의 말을 했다. 무언가 가슴이 엄청 아파왔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제법 훈훈했다. 잘 된 것이다. 주인아에게는 당분간 큰 상처로 남을 지도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상처를 주는 것보단 이렇게 한 번 상처를 주고 끝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집으로 향했다. 어느덧 시간이 10시가 넘어있었다. 주인아를 달래고 다시 얘기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나보다. 초가을 밤바람은 제법 매섭게 불고 있었다.
“선우야 넌 이제 저쪽으로 가지? 오늘 재밌었어! 그리고 고마워! 잘가!”
주인아는 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주인아는 애써 웃는 모습이었지만 표정에서 허탈함과 슬픔이 잔뜩 느껴졌다. 왠지 주인아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 집 강산아파트라고 했지? 거기까지 같이 가자!”
“응...? 아니야... 나 괜찮아!”
“시간이 10시가 넘었어! 빨리 가자!”
나는 당황한 주인아의 팔목을 당기며 강산아파트 방향으로 향했다.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 시간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주인아의 표정이 굉장히 좋지 않아보였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침묵을 유지했다. 각자가 각자의 생각에 잠겨있는 듯 했다.
“선우야, 정말 고마워! 이럴 필요 없는데...”
아파트에 도착하고 주인아의 공동 현관 앞까지 왔다. 주인아는 어쩔줄 몰라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니야, 어서 들어가! 날씨가 슬슬 추워지네.”
“응, 시간 진짜 많이 됬네. 너도 어서 들어가!”
“그래 나도 이만 가볼게!”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나도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바람이 제법 차다. 나도 어서 들어가야지...
그런데 뒤에서 주인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혼잣말인지 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또렷히 들렸다.
“은비는 정말 좋겠네... 너무 부럽다!”
나는 못 들은 척을 하며 집으로 갔다.
...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평소처럼 늦잠을 잤고 아버지는 이미 일을 하러 나가셨다. 선영이는 어제처럼 요리를 하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제와 같았다. 나는 선영이가 해 준 요리를 먹고 책을 읽고 게임도 하며 주말을 만끽했다. 정말 평화로웠다.
나는 옷을 입고 준비를 마친 뒤 다시 시내의 종탑으로 향했다. 현재 시각 5시 10분... 어제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거리에는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어쨌든 약속시간에 20분 빨리 도착했다. 후후... 여유를 가지고 사람구경이나 하며 기다려야지... 모든 것이 어제와 비슷했다. 그러나 종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음을 금방 깨달았다. 약속시간과 장소는 똑같았지만 오늘 한 가지 다른 것은 내가 만나는 사람이었다. 종탑 앞에는 이미 단은비가 도착해 나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빨리 왔네?”
<주유소 휴지를 꺼내>
너무 디테일 한것 아냐!! 어떤건지
확 떠올라 버렷어 ㅋㅋ
<주유소 휴지를 꺼내>
너무 디테일 한것 아냐!! 어떤건지
확 떠올라 버렷어 ㅋㅋ
ㅋㅋㅋ 주유소 휴지는 유용하니 가방에 꼭 하나씩 넣어다니도록!
역시 생활력에
스며든 필력! 굿굿
다재다능 갤주 ㅊㅊ!
감사추
벌써 22편이라니 오늘 집에가서 정독한다
이걸 정독하다니...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