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위한 변명

profile
ROTHSSHVILI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은 어찌보면 가여운 분임

 

역사에 무지한 그리고 자세한 것을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국민들 입장서는 부정 선거의 수괴로 해외에 도주, 망명해서 사망한 것으로 기억되고 있음

 

근데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1)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으로 취임하셨을 때 나이가 73세였음, 김대중 전 대통령이 74세때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게 뭐 대수냐 착각할 수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18세기에 태어난 분임

 

2) 18세기에 태어나서 전주이씨 왕족의 방계였지만 입헌 군주제를 주장하다 절대왕정 고수에 눈이 먼 고종에 의해 20대부터 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함 

 

3) 평생을 고생하고 고문당하고 외국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외교전에 힘쓰며 무국적자로 지내고 그러다 73세를 맞았던 것임, 18세기에 태어나서 온갖 고생을 다한 인물이니 당시 신체 정신 상태를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온갖 혹사란 혹사는 다 당하고 전혀 자기 건강 관리 못한 80대로 보는게 맞음

 

4) 그분의 원죄인 양 오해받고 회자되는 부정선거가 발생 했을 때는 이미 그분 당시 나이가 80대 중후반, 지금으로 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신체 정신 모두 진작에 한계에 도달한 90대임, 이미 진작에 한계에 도달한 마당에 부정선거를 진두지휘한다? 이건 말이 안됨, 임종 앞둔 노인을 강간살인 사건 용의자 선상에 올리는 격

 

5) 이승만 이후 다음에 대해 대안이 없던 이들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한게 아닐까 싶음, 그래도 아래 사람들의 행동을 적발, 막지 못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내려오신 것일 뿐인데 (21세기로 치면 신체나이가 90대 중후반 100세로 향해가는데 그냥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으셨을 것임)* 부정 선거의 수괴인 양 프레임만 씌워진 것임, 하와이에서도 현지 교민들을 설득 인하대학교 공대 등 국내 공학, 과학 인재 육성을 위한 기부를 할 수 있게 힘을 다하셨음 

 

*그분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하와이 망명한 것도 미국이 주선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어떤 미국 교민의 글을 접한 적이 있음

 

그분에 대해 유독 오해도 많고, 역사적 재평가도 좌파, 우파 진영 할 것 없이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가 내 짐작에는

 

1) 박정희 대통령 같은 경우 망명을 갔으나 여전히 상당한(ex.해방 후 심지어 사회주의 계열 정당 조차 이승만을 당대표로 영입하려고 신문에 기사먼저 띄울 정도였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억, 지지를 자신의 것으로 바꿔야 했음, 그렇다고 격하 운동을 할수도 없는 바, 김구를 라이벌인 양 대체재로 최대한 띄운게 아닐까 싶음, 일본에서 화족(=일왕가 바로 아래 귀족 계층)으로 잘 살다 맥아더 군정이 화족 자체를 없애니 끈 떨어진 연이 된 대한민국 팔아먹은 고종의 후손 대한제국 왕실 사람들이 귀국을 시도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거부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승인함 

 

2) 좌파 진영 역시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낸 역사적 사실과, 평생을 반일의 아이콘으로 사신 것은 철저히 숨기고 김구 띄우기에 주력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봄, (이승만을 격하하다 자칫 역풍을 맞느니 김구를 최대한 대항마로 평가절상 시키는게 최선이라 생각했을 것임)

 

김구도 독립운동의 공이 작지 않으나, 내가 김구를 마뜩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래 정도임

 

1) 우리 역사 교육에서 김구를 미화하다 보니 숨기는 사실 중 하나가 임시정부가 국민당만 지원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임, 현실은 국민당 및 중국 공산당 모두 돈을 받고 부역함

 

2) 김원봉 같은 사회주의계열 운동가들도 김구의 임시정부에 국민당 및 중국공산당이 주는 보조금 타먹기 위해 임시정부에 한지붕 두가족으로 들어간 형태였고, 그래서 김구를 단 한순간도 리더로 인정한 적 없음 (투명인간 취급)

 

3) 중국 공산당이 중국을 공산화한 방법을 미국 육군대학 교수 안툴리오 에체베리아가 쓴 책을 보면, 중국공산당은 항일 투쟁을 전혀 안하고, 반면 국민당은 항일 투쟁 와중에 궤멸적 타격을 받고, 중국 공산당은 우리가 항일투쟁을 다하고, 국민당은 항일투쟁에 도통 관심없다는 선전 선동이 통했기 때문이라 적고 있음  (국민당이 너무 부패해서 내부모순, 부패로 자멸했다  이건 중국공산당이 에드가 스노우, 님 웨일즈 같이 중국 관련 베스트셀러, 특종 기사로 출세하려고 중국에 왔고 중국 공산당이 극진하게 접대한 백인 언론인들이 출판한 책들 그리고 언론 기사들을 통해 전파된 선전 선동에 적극 활용해서 퍼트린 프로파간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1838482

군사전략 입문 - YES24

 

4) 부역이란 단어를 쓴 이유가 두가지인데 , 중국 공산당 입장서는 실익이 없는 3D 업무였던 항일 투쟁을 헐값에 대행할 외주업체를 찾았고 그걸 김구의 임정이 수행함, 즉 중국 대륙의 공산화에 김구의 임정이 상당한 일조를 함, 이것 때문에 해방 직후 중국공산당의 외무상 저우언라이가 김구와 마오쩌둥과의 독대 자리를 마련해주고, 성대하게 환송 파티도 해줌 (김구의 임정이 중국 공산당 외주업체로 중국 공산화 일조한 것 숨기기 위해, 임정-국민당 이렇게 쉬쉬했는데 몇년 전 독립기념관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중국쪽 학자가 양국의 인연이 깊다고 하면서 대놓고 발표함, 주류 언론은 기사로 안다룸)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3200

 

"1944년 6월 7일 동비우를 대표로 하는 중공 중앙은 연회를 베풀고 임시정부 요인을 초대하기도 했다. 또한, 해방 이후 환국을 준비하던 김구 선생을 1945년 9월 3일 마오쩌둥이 만났고, 중국을 떠나기 전 저우언라이 전 중공중앙대표가 김구 일행의 환송연회를"

 

김구가 중국공산당 외주업체로 실적만 좋으면 마오쩌둥과 독대 자리도 마련해준다는 저우언라이의 약속에 부푼 기대로 부역한다고 한게 무장 투쟁인데 결국 말이 무장투쟁이지, 그야말로 변방 외딴 파출소 털기 그리고 산발적인 요인 암살이었음, 근데 당시 대영제국의 식민지 지성인이었던 인도의 간디가 우리나라 사정 보고 일제시대 한국 언론에 기고한 글도 "인도나 조선은 무조건 비폭력 저항, 투쟁해야 한다, 어설픈 요인 암살은 저들 입장에서 인사적체 해결해줘서 오히려 도움 주는 격이고, 국제사회에 절대 독립을 승인할 수 없는 테러집단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 역량을 키워야 한다 조언함" 즉 김구가 주석이던 임정의 무장 투쟁은 그 동기도 문제였지만 결과도 우리 독립에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더 많았고, 무장 투장을 과장 미화하는 와중에 정말 우리가 독립하는데 기여했던 진짜 영웅들이 간과, 소외되는 결과를 야기함 가령 죽을 각오로 국내 들어와 학교, 언론사 세워 국민을 계몽하고 우리도 한때는 독립된 나라를 가졌던 과거가 있음을 독립해야 하는 당위성을 우리 민중에게 가르킨 분들이야 말로 진짜 영웅인데 

 

5) 김구가 애시당초 한국 전쟁 그리고 한민족 분단의 원흉인 마오쩌둥, 저우언라이에 부역하고 갑을 관계로 호형호제하던 사이였고 그러니 대한민국 건국을 뜬금없이 반대하고 김일성 만났을 때 망명 가능성 타진 한 것임, 김구 계산으로는 북한 정권 뒤에 소련 군정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있고, 최소한 중국 공산당은 소련, 중국 양다리인 김일성 보다, 중국 공산당에 외길 부역을 한 자신을 당연히 선호, 대한민국 건국 저지에 있어 김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더 지지 할 것이라는 계산이 섰던 것 같음, 

 

이인호 전 주 러시아 대한민국 대사, 전 서울대 교수도 김구의 독립운동 공은 인정하나 대한민국 건국을 사익에 눈이 멀어 반대한 것을 지적한 것임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636

 

"5·10 선거가 성공적으로 실시된 후에도 김구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는 노력을 계속했다. 김구는 1948년 8월 초, 통일독립촉진회의 대표단을 파리 유엔총회에 파견하여 대한민국 정권을 승인하지 말고 임시정부를 승인해 달라고 호소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선포되기 전날, 김구는 기자들로부터 정부수립에 관한 논평을 요청받고는 “비분과 실망이 있을 뿐이다”라는 부정적 논평을 내놓았다. 

대한민국 건국에 재를 뿌린 김구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두 기둥, 김구와 김규식이 제헌의원 선거를 반대하면서 임정이 제헌의원 선거는 물론 정부 수립에 반대"

 

김구를 무고한 상인을 묻지마 화풀이 살인한 치하포 사건만 결부시키는 것은 오히려 해당인의 더 큰 허물을 덮어주는 격이라고 생각함

 

그럼 21세기 한국 좌파들이 김구를 역시 적극적으로 미화, 띄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야 하는데, 이들 중 중국 공산당과 협력, 연대를 추구하거나 최소한 저들의 힘을 이용해야하는데 공감하는 부류가 적지 않다고 생각됨, 이들 입장서는 중국공산당이 신으로 섬기는 마오쩌둥을 찬양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충성맹세요, 그들 입장에서 VIP에 대한 최고의 예우, 접대지만 그것은 할수가 없음

Mao Zedong dies in Beijing at age 82, Sept. 9, 1976 - POLITICO

그러니 꿩 대신 닭으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가 외주업체 사장으로 치하도 하고 독대도 해준 그들을 따거로 섬긴 김구를 극진하게 띄워 (EX. 독립기념관도 있는데 서대문구에 김구 기념관도 하나 만들어주고, 임시정부 초대대통령이자 반일의 선봉장은 우남 이승만인데, 김구=임시정부 이런 프레임도 확산시키면서) 저들 코드를 맞출려는게 아닐까 싶음 (A를 칭송하여 아부하고 싶은데 A를 칭송하면 A때문에 매분매시 매초 분단 지옥에 사는 유권자들이 여론이 안좋아질 것이니, A의 머슴으로 충직하다 칭찬을 들은 B를 극진하게 섬김으로 대신하는 것 같음)  

 

 

모든이가 당연히 공과 과오가 모두 있는게 당연하고 근데 누구를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로 미화하는 와중에 공, 과오 모두 축소, 은폐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임, 공은 공대로 칭송하고 과오는 그대로 후대에 가감없이 전해서 역사의 교훈을 삼고 반면교사를 삼고 우리 모두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서로를 다시 살피는 소중한 계기가 때문임 

 

 

댓글
2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 유가영
    2022.01.02

    이승만, 김구는 참 여러 의견이 많이 존재함

    어쨋든 우리는 정확하게 과오를 분석해서 색안경없이 역사를 평가해야함

  • Moses
    2022.01.09

    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