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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동래성전투 그리고 송상현.

도란의방패

오늘은 본인이 군생활을 했던 53사단의 별칭 "충렬"의 기원이 되는 동래부사 송상현과 충렬사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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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소개

 

- 충렬공 송상현은 1551년 전라도 고부군(현재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무신이 아닌 문신출신으로 20대 중반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인물이다. 

  또한, 선조 16년(1583년)에는 명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에 외교관으로도 다녀왔다. 귀국후에는 예조,공조,호조 정랑들을 거춰 선조24년, 

  임진왜란 8개월전에 동래부사(현재로 따지면 부산광역시장)로 임명되었다.

 

- 송상현은 동래부사로 부임후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으며 그의 인품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송상현은 전란을 꽤나 착실히 준비했는데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군사훈련을 본인이 직접 주도했으며,

  성밖에는 참호를 파고 울타리를 설치하였으며, 나무를 최대한 많이 심는등 전란에 대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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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성 전투

 

-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진뒤 부산진성을 지키던 "흑의장군" 정발이 전사하고나서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고니시 유키나카(소서행장)은 곧바로

  동래읍성으로 말머리를 잡는다. 이때, 양산군수 조영규와 울산군수 이언성의 병력이 동래읍성으로 도착했고 곧 경상좌병사 이각과 경장좌수사 박홍이 

  동래읍성을 돕기위해 왔으나 적의 숫자는 많고 동래읍성의 병력은 적은것을 알고 박홍은 일치감치 빤스런처버리고 이각은 성을 함께 지키자는 송상현의

  말을 듣지않고 산에 진을 쳐 양면으로 적을 공격하겠다며 성을 빠져나간뒤 도망가버렸다. 그나마 지원왔던 양산군수 조영규도 왜군의 전술에 말려서

  공성전이 시작되자 퇴각할수 밖에없었다.(그나마 열심히 싸우기는 했다고함.)

 

- 이에 고니시가 동래성에 도착하자 고니시는 전투하기 앞서 전설적인 그 대사를 간판에 적어 주고받는데.

 

  "전즉전의 부전즉가도(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기 싫으면 길을 비켜달라.) 

 

  그러자 송상현 측은

 

  "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즉, 우리는 길을 비켜주지 않을것이고 싸우겠다는 뜻이였다.

(우리 사단지휘통제실 안에 전사이 가도난 한자문이 쓰여있었음.)

 

- 이때 송상현측이 가지고 있던 병력은 불과 3천명밖에 되지 않았고 왜군의 병력은 정확히 기술된 문건이 없으나 

  <임진동래유사>에 따르면 

 

  "총성이 울리고 그 검광은 대낮을 무색하게 했으며, 적군이 성중에 들어와 사람으로 메우다시피 했다. 성은 협소하고 사람은 많은데다

   적병 수만이 일시에 성으로 들어오니 성중은 메워져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라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적어도 5만, 많으면 7~10만 가량의 병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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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고 전투 초반에는 송상현과 병력들, 그리고 성안의 백성들도 고군분투 한덕에 왜군을 몇차례 물러나게 했으나 왜군의 병력은

  너무 많아서 재정비한 왜군들을 당해낼수는 없었다. 이윽고 패색이 짙어지고 죽음을 직감하게 된 송상현은 부채에 부모님께 시조 한수를 남긴다. 

 

  "孤成月暈 고립된 성을 적이 달무리처럼 에워쌌고
   列鎭高枕 여러 진들은 고침하네
   君臣義重 군신의 의는 무겁고
   父子恩輕 부자의 은은 가볍도다."

 

 이윽고 갑옷위에 조복을 걸친뒤 북쪽을 향해 절을 한뒤 항전을 지속하다가 왜군의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하게 된다.

 

- 여담으로 송상현과 면식이 있던 마츠우라 시게노부(조선측 기록에는 평조익이라 기술)은 송상현에게 샛길이 열려있으니 피신할것을 권했지만, 

  송상현은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송상현을 죽이고 싶지않았던 고니시가 송상현이 죽은것을 알자 송상현을 죽인 병사를 잡아다가 목을 쳤다고 한다.

 

- 또한, 이때 송상현의 애첩들과 아낙들 역시 기왓장을 뜯어 왜군에게 던지며 항전했지만, 끝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양산군수 조영규도 일본군에게

  끝까지 저항했으나 끝끝내 전사하고 말았으며, 동래읍성의 모든백성들이 남녀노소 할것 없이 학살당해 해자에 묻히게 되었다. 2005년 부산지하철

  수안역 공사중 동래읍성 유적이 발견되었고 해자부근에서 5세~40세까지의 연령대의 유골들이 발견되었다.


- 고니시는 이 전투후에 부산진성, 동래읍성의 거센저항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는지 이렇게 병사들이 충성심 높아서는 쉽게 전쟁이 끝날것 같지 않다고 얘기 했으나 이후 한양까지는 프리패스...

 

- 이 전투이후 처절했던 상황은 양산군수 조영규의 아들 조정란이 부친의 시신을 거두러 갔을때의 기록으로 알수있는데 조정란이 조영규의 시신을

  수습하기위해 동래읍성에 갔지만 시신들이 너무 많아 산을 이루어 조영규의 시신을 거두지 못했다고 기록되어있따.

 

 

동래성전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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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현은 본인이 죽으면 허리밑에 있는 콩알만한 큰 사마귀를 보고 본인의 시신을 찾으라고 한적이 있는데 실제로 전투가 끝난뒤 이 기억을 바탕으로 송상현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 1595년 선조 28년에 청주로 묘소를 이장하고 충신문을 세웠다가 광해군 2년에 청주에 동래부사송상현충렬사를 창건한뒤, 1742년 영조때 충렬공의

  위패를 지금의 충렬사위치에 모셔 처음에는 충렬공만 모신 "송공사"로 불리다가 시간이 지나 송상현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순절한 호국 선열들을

  모신 지금의 "충렬사"가 되었다.

 

- 지금도 부산에서는 수호신으로 여기며 충렬공 송상현광장이 있으며, 부산광역시장이나 53사단장, 부산경찰서장,등 부산내의 고위관료들이

  바뀌면 찾아와서 참배하는 사당이라고 한다.(진짜로 참배하는지는 잘 모르겠음. 나도 군대 정신교육주에 매번 여기 끌려왔었는데 그때 들은것.)


컴퓨터로 작성했더니 프레임 좀 안맞음. 

알아서 보시는걸로.

댓글
1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 무대홍찍자<span class=Best" />
    2021.12.23

    ㄷㄷ

  • 무대홍찍자
    2021.12.23

    ㄷㄷ

  • 도란의방패
    작성자
    2021.12.23
    @ 님에게 보내는 답글

    꼭 그런것도 아닌게 숫자가 너무 압도적으로 차이나기도 함.

  • 햄새밍튼
    2021.12.23

    오 나는 53사단 훈련소 출신인데 자대는 수방사 예하로 받음... 몇년군번이십니까

  • 햄새밍튼
    도란의방패
    작성자
    2021.12.23
    @햄새밍튼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저는 논산훈련소 출신이라. 17군번입니당

  • 도란의방패
    햄새밍튼
    2021.12.23
    @도란의방패 님에게 보내는 답글

    아 그렇군요.... 글 맨 위에 본인이 53사단 나오셨다고 하셔서 드린 질문이었는데... 가져오신 글인가보네용 알겠습니다 !

  • 햄새밍튼
    도란의방패
    작성자
    2021.12.23
    @햄새밍튼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제가 쓴게 맞고 논산훈련소->후반기교육->53사단 직할부대 루트였어용.

  • 도란의방패
    햄새밍튼
    2021.12.24
    @도란의방패 님에게 보내는 답글

    아하 ! 넵넵 ㅋㅋ 오해 지성합니다 ㅎㅎㅎㅎ 글은 잘 읽었어요~~~

  • 유가영
    2021.12.24

    제가 문학쟁이인데 송상현의 저 시는 학계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시

    저것 말고도 황폐화된 동래성을보며 한탄하는 시가 많았는데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신게 느껴졌음

  • 유가영
    도란의방패
    작성자
    2021.12.24
    @유가영 님에게 보내는 답글

    당시 부산진성의 정발장군, 그리고 동래부사 송상현 두분과 전투를 했던 고니시도 인정하고 같이 싸웠던 왜군들도 두분의 용기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하죠. 근데 문제는 이후에는 탄금대전투 외에는 이렇다할 저항없이 한양까지 프리패스...

  • 도란의방패
    유가영
    2021.12.24
    @도란의방패 님에게 보내는 답글

    평화의 시간이 너무 길어서 군사력이 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았죠 ㅜㅜ

    그런 의미에서 두분은 정말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