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분의 크리스마스> - 8화

  그렇게 9월 9일 9시 34분... 나와 은비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이었다. 사실 나도 이전부터 은비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은비가 나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는 쉽게 은비에게 고백하지 못했다. 이런 나에게 은비는 먼저 다가왔다.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다. 우리는 단순 연인일 뿐만 아니라 좋은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했다. 나는 무뚝뚝하고 친화력이 없는 성격이라 친한 친구가 거의 없었고 은비 역시 성격은 좋지만 건강문제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 친구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하지만 사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은비는 정체불명의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의사들도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몰랐다. 은비는 물을 마셔도 수분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수분이 수시로 빠져나가는 병을 앓고 있었다. 나는 이런 것이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은비는 항상 자신의 병에 대해 미안해했다.

“선우야, 정말 미안해. 내 욕심으로 너한테 고백해서 나 때문에 너만 힘들어 진 것 같아. 나보다 더 건강하고 정상적인 애를 만났으면 이쁜 사랑했을텐데...”

“그런 말 안하기로 했잖아! 난 어차피 너 아니면 다른 여자애들한테 관심조차 없어. 그리고나도 너를 좋아했었다고 했잖아. 네가 말하지 않았어도 내가 먼저 너한테 고백했을거야.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말 꺼내지마!”

우리는 수시로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때마다 화를 냈지만 은비는 그때마다 미안해했다.

  이렇게 서로 울고 웃으며 시간이 훌쩍 지났다. 우리는 그동안 여느 연인처럼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놀이동산도 가고 카페도 가고 남들이 하는 것과 같이 연애를 했다. 그리고 12월 17일 그날이 밝았다. 드디어 은비와 내가 만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그날은 마침 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나는 깨우지도 않았는데 아침 7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했다. 선영이가 잠에서 깨서 나에게 비아냥댔다.

“아이 좀 조용히 준비하라고! 연애하더니 사람이 아주 360도로 달라졌구만! 나는 저렇게 꼴사납게 살지 말아야지!”

  선영이는 나와 은비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가족에게 내가 연애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은비가 먼저 나서서 선영이를 만나고 싶다며 다가갔다. 은비는 선영이에게 정말 잘해줬고 나는 그것이 내심 고마웠다.

“나는 외동딸로 자라서 꼭 동생이 있었으면 했어. 선우 넌 저렇게 귀여운 여동생이 있어서 정말 좋겠다.”

은비는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아무래도 형제가 없기 때문에 여동생이 있는 나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막상 있으면 생각이 바뀔 텐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서 동대구역으로 갔다. 선영이가 계속 비아냥댔지만 그런 선영이의 잔소리조차 그날은 즐겁게 들렸다. 동대구역으로 가니 역시나 은비가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15분이나 일찍 도착한건데 또 넌 먼저 나와있네... 대체 언제 나온거야? 항상 나만 지각하는 거 같은 느낌이잖아!”

“너랑 처음으로 여행가는거라 너무 설레서 아침 일찍 나오다보니 30분이나 일찍 왔어. 내가 별난 거니깐 신경쓰지마 히히”

나도 똑같이 설레는 마음에 일찍 일어나서 일찍 나온 것이었지만 은비는 나보다 더 한 것 같았다. 과연 나는 언제쯤 약속시간에 은비보다 빨리 나올 수 있을까

  아무튼 우리는 100일을 맞아 경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마음 같아선 1박 2일 여행을 가고 싶지만 우리는 이제 겨우 중학생이기도 했고 은비 부모님께는 우리의 연애를 비밀로 했다. 모든 외동딸 부모님들이 그러시겠지만 은비 부모님께서는 은비를 정말 아끼신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른다.

  경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음악을 들었다. 나는 발라드 계열의 슬픈 노래를 좋아했지만 은비는 신나는 노래를 좋아했다.

“아이 참 우울하게 발라드 좀 그만 틀라니깐, 노래 빨리 바꿔! 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 아침부터 분위기 죽이지 말고!”

“넌 참 노래 들을 줄 모르는게 단점이야! 발라드야말로 진정한 음악이지”

  나는 비아냥대며 노래를 바꿨다. 하지만 기분만큼은 정말 최고였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이제 중학생이지만 은비와 결혼하고 영원히 함께 살고 싶다.

“참 학생이라 거창하게 준비는 못했지만, 선물을 준비했어.”

  한창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보며 몽상에 잠겨있을 때 은비가 말을 걸었다. 나도 당연히 준비해 온 선물이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선물 교환할까? 나부터 먼저 줄게”

  나는 별모양 목걸이를 은비에게 건냈다. 어제 밤에 가기 싫다는 선영이를 저녁 사준다는 조건으로 겨우 데리고나와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니며 고른 목걸이였다. 다행히 은비는 목걸이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와 목걸이 진짜 예뻐! 완전 내 스타일이야! 고마워 선우야! 난 하늘을 보면서 별한테 소원을 자주 빌곤 하는데 이제 이 목걸이에도 빌어봐야겠다.”

“풉, 미신 좀 그만 믿어.”

“왜! 그건 내 자유야! 아무튼 나도 여기! 선물 받아!”

  시계였다. 나름 값도 나가는 L사의 퍼플 시계였다. 버튼을 누르니 아름다운 보랏빛이 빛나며 시계를 밝혔다.

“이거 비싼 거잖아, 뭐하러 이런 비싼 시계를 샀어... 일반 시계면 충분할텐데”

“비싸다고 산 거 아니야, 이 보랏빛이 너무 예쁘더라고, 도라지꽃 색깔 같기도 하고... 어쨌든 마음에 안드는건 아니지?

“당연하지, 너무 고마워서 그래! 우리 오늘 교환한 선물은 닳고 고장날때까지 꼭 쓰는 걸로 하자!

“물론이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교환하였다. 별 목걸이와 퍼플 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