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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란의 역사 : 아케메네스 왕조를 중심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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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로렌츠

칼럼 https://theyouthdream.com/free/4316701

 

 

1. 서론

 

 

 

이란은 5000년 이상의 매우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며 뭇사람들에겐 페르시아로 알려져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페르시아의 역사를 되도록 많이 훑어보는 것이 이 글의 지향점이지만 한 국가에 대한 모든 것들을 설명하기에는 불가능하며, 부족한 점이 많고 모르는 바 역시 많으니, 일반인들에게 흔히 마라톤으로 유명한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까지의 이란의 고대사를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설명해 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고대 이란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죠.

 

 

 

2. 고대 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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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엘람 지도>

 

 

문명의 태동기에 옛 엘람 문명이 있었습니다. 원시 엘람 문명 시기 엘람의 중심지 수사는 기원전 42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대 문명의 최선진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엘람이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춘 시기는 약 기원전 2700여 년인데, 이시대 동아시아는 국가가 존재치 않았습니다. 중국 역사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그러나 실재의 여부는 아직 모르는) 하나라 건국시기인 기원전 2070년보다 훨씬 빠르니까요. 엘람은 이웃한 메소포타미아 국가들과 각축전을 벌이며 존재해오고 있었으며, 당대에 매우 번영하는 문명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2000여년에, 현대 이란인의 조상이 되는 아리아인이 이란 고원에 정착했습니다. 

 

 

아리아인들은 토착 주민들과 통혼을 통해 섞이기 시작했죠.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다가 신-아시리아 제국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석권하였고, 엘람 왕국 역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 사이에 이란 고원에서는 각각 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들이 강성해지기 시작했지요. 아시리아 제국이 엘람을 공격해 약해진 틈을 타, 페르시아인들이 안샨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 후 엘람은 소왕국 수준으로 축소되었다가, 키루스 대제 시기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3. 페르시아 제국 이전의 오리엔트와 패권국 : 신-아시리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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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제국 영광의 절정>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하기 전에 오리엔트 지역은 서로 전쟁을 거듭하다가 결국 사상 최초로 메소포타미아-시리아-이집트를 정복한 국가가 등장하는데요. 신-아시리아 제국이라고 불리는 아시리아 제국이 기원전 7세기에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이집트를 정복해서 패권국으로서 그 이름을 떨칩니다. 아시리아 제국은 제국의 통치를 위해 총독을 각지에 파견하였으며, 교통을 정비하고 우편제도를 운영했습니다. 정복지의 주민들을 타지로 강제 이주시켜 반란을 감소시키려는 정책도 펼쳤습니다.

 

 

그러나 아시리아 제국은 피정복민에 대한 가혹한 통치로 민심을 잃었는데요. 전쟁 포로와 일반 백성들을 학살하는 것은 기본이고 온갖 고문과 악행을 자행했던 것이 아시리아 제국이었습니다. 피정복민들은 약탈당했고, 강간당했으며 고문당하였고, 가죽이 벗겨졌으며, 임산부는 배가 갈라졌고, 사람들은 참수당했습니다. 사람의 머리와 가죽으로 기둥을 만들었고, 사람의 머리로 기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는 공포 전략의 일환으로서, 다른 국가들이 아시리아를 두려워하게 만들어 아시리아가 쳐들어갈 때 빠른 항복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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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복민에 대한 가혹한 처우를 묘사한 부조.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모습과 기둥에 못 박는 모습이다.>

 

 

잔혹한 통치 때문에 아시리아 제국은 빈번한 지방 반란에 시달렸는데요. 그 대표가 바빌로니아 지역으로, 바빌로니아는 수시로 아시리아에게 반기를 들고 저항했습니다. 아시리아는 바빌로니아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 빈번하게 그들의 도전을 받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시리아인들은 종교와 문화에서 바빌로니아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바빌로니아는 다른 정복지와 다르게 특별히 존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지역은 반-아시리아 연합의 선두로서 저항했고 결국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612년 스키타이, 킴메르, 메디아와 연합해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함락시키게 되고 아시리아 제국은 종언을 맞습니다. 이후 신-바빌로니아 제국, 메디아, 리디아, 이집트의 4강국 시대가 열리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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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의 4대 강국. 노란색은 메디아, 초록색은 신-바빌로니아, 파란색은 리디아, 연두색은 이집트이다 메디아의 실존 여부는 학계의 논쟁거리이다.>

 

 

4. 키루스 대제의 출현과, 관용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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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대제>

 

 

페르시아를 제국으로 발전시킨 키루스 대제 시절, 오리엔트 지역은 아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석권한 신-바빌로니아 제국, 아나톨리아를 영유한 리디아 제국, 이란 고원과 아르메니아, 아나톨리아 일부를 점유한 메디아, 이집트의 투쟁으로 점철된 4대국 시대에 놓여있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메디아(고고학적인 증거의 부재로 메디아의 존재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의 속국이었었는데, 이 속국의 왕이 전 오리엔트 세계를 뒤흔들게 됩니다. 키루스 대제의 출현이었죠. 키루스 대제는 반란을 일으켜 메디아를 쳐서 멸망시키고, 리디아를 몰락시키며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세계 최고로 부강했던 국가인 신-바빌로니아 제국마저 정복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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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대제가 정복한 영토>

 

 

 

 

그리하여 키루스 대제 당대에 페르시아 제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로 발전하기에 이릅니다. 또한 키루스는 관용 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제국 내의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포로로 끌려온 민족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낸 것이 그것이죠. 그래서였을까요? 키루스 대제는 이민족 황제인데도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로 불렸으며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 야훼가 키루스가 와서 바빌론을 멸망시킬 것임을 미리 예언했다고 성경에 적었습니다. 또한 키루스를 아예 성경에 등장시켜 유대인들의 성전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지시하는 것으로 묘사하기에 이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 제일년이었다. 야훼께서는 일찍이 예레미야를 시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래서 고레스는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리고 그것을 적은 칙서를 전국에 돌렸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칙령이다. 하늘을 내신 하나님 야훼께서는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당신의 성전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지워주셨다. 나는 그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 계시기를 비는 바이다. 그 하나님은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계시는 분이시니, 유다인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의 성전을 짓도록 하여주어라. 원주민들은, 여기저기 몸붙여 살다가 아직 살아 남은 유다인이 있거든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가져다 바치도록 자원예물도 들려 보내고 금과 은과 세간과 가축도 주어서 보내어라."

에즈라 1:1~4 (공동번역) 

 

유대인들의 경우처럼 다른 민족들 역시 키루스에 대해 감사했을 것이며, 키루스는 온 제국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아버지라고까지 불리게 됩니다. 그의 관용 정책을 엿볼수 있는 것은 키루스 실린더인데, 일각에서는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이라고 불리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원통 문헌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는건 인정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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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실린더>

 

 

그 이후 키루스는 4대강국중 마지막 남은 강대국인 이집트에 칼끝을 돌리고자 했고, 이집트 정복에 필요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아마 키루스가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주고 그들을 본국에 이주하게 한 이유는 이집트 정복을 위한 것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유다 지역에서 엎어지면 이집트였거든요. 그러나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는데, 원인 불명의 이유로 그가 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키루스의 죽음에 대한 학설은 매우 논의가 분분하여 속단할 사안이 아니므로 사인에 대한 발언은 삼가겠습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제국 정복 및 수도 페르세폴리스 파괴로 인한 기록 말살 때문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기록이 유실되었기 때문입니다.

 

 

 

 

 

5. 캄비세스의 이집트 정복과 다리우스의 황위 찬탈 

 

키루스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캄비세스가 뒤를 이었습니다. 캄비세스는 기원전 525년 펠루시움에서 이집트 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했고, 그대로 밀고들어가 이집트를 멸망시키게 되죠.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다르게 캄비세스는 이집트인들을 탄압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신성한 소인 아피스를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아피스는 자연사했으며 캄비세스가 비문까지 써주는 등 오히려 아버지 키루스를 따라해 이집트의 토착 신앙과 전통을 존중했죠. 그러나 캄비세스는 부친 키루스만큼 이민족을 감화시키는 데에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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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신성한 소 아피스를 죽이는 캄비세스 2세

삽화. 헤로도토스의 기록과는 대조적으로 캄비세스는 아피스를 죽이지 않았다. 헤로도토스는 아마도 이집트 여행에서 사제들에게 캄비세스의 이야기를 접했을 텐데, 이집트 사제들은 캄비세스가 사제들에게 지급되는 자금을 줄이자 그를 싫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제들은 유언비어를 헤로도토스에게 알려준 것이다.>

 

 

 

 

캄비세스가 계속 이집트에 머물자 페르시아 본토에서도 그에 반발하는 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결국 본토에서 그의 동생 바르디야가 귀족들의 지지를 힘입어 황제가 되죠. 캄비세스는 황위 찬탈 소식을 듣자 격노하여 페르시아 본토로 가고자 말을 타고 출발하려다 자기 칼에 허벅지를 찔리는 부상을 입어 사망하였다고 합니다만,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고위 관료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르죠.(다리우스 대제가 유력한 후보이다.) 중요한 것은 바르디야가 황제가 됐다는 점이었습니다. 

 

 

 

 

바르디야는 세금을 감면하는 등의 인기 영합 정책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바르디야는 세금 감면으로 인한 재정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캄비세스와 함께 원정대에 있던 귀족들의 재산을 몰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에 페르시아의 최고위 일곱 가문이 반발했고 이때 등장한 것이 다리우스입니다. 다리우스는 그를 따르는 최고위 가문들의 자제들과 함께 바르디야가 있는 곳인 니사이아 평원의 시키아바우티슈 요새에서 바르디야를 살해하고 황제가 되었습니다. 다리우스는 바르디야를 죽여놓고서는 뻔뻔스럽게도 사실 바르디야는 캄비세스가 이집트 원정을 떠나기 전에 몰래 죽였고 가우마타라는 마기(사제계급)가 바르디야를 사칭해 모두를 기만한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같은 주장이 먹힐리 없었고 제국은 전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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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키
    ㄹㅇ바르디야가 표퓰리스트네 ㅋㅋㅋ

    세금감면으로 표 땡겨두고 귀족들(부자들)의 사유재산 몰수로 국가경영 ㄷㄷ

    이거 완전 리재명?

  • 타키
    킬로렌츠
    작성자
    2021.12.11
    @타키 님에게 보내는 답글

    고대에도 정치가들은 비슷비슷한 법이지요.

  • 박근혜
    2021.12.11

    잘 읽었습니다 혹시 이 다리우스가 앞으로 나오게 되는 다리우스 ~세의 시초인가요?

  • 박근혜
    킬로렌츠
    작성자
    2021.12.11
    @박근혜 님에게 보내는 답글

    네 다리우스 대제가 다리우스 1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