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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1): 광기와 이성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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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의시비

아직 자정의 향기가 가시지 않은 젊은 아침, 전함 여덟 척과 순양함 여덟 척, 구축함 30척과 잠수함 네 척, 각종 군수지원함 50척이 빽빽하게 자리잡은 얕은 바다에서 비릿한 바다향기가 풍겼다. 수병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늘 그랬듯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전함 갑판을 닦고 있었다. 하와이 오아후 섬의 바다에서는 언제나 맑고 아름다운 바람이 불었다.

 

저편에서 구축함, DD-139 워드(Ward) 호가 움직이면서 텅! 텅! 텅! 하는 요란한 소리로 그 정적을 깼다. 폭뢰를 투하하는 소리였다. 곧 물기둥이 쑥쑥 뽑혀 올라오고 폭음과 함께 뭔가 산산조각났다. 구축함은 천천히 다시 해군 기지 안으로 들어왔다.

 

뭐, 그걸로 끝이었다. 그 이상으로 뭘 할 필요도 없었고 뭘 할 수도 없었다. 미 수병들은 훈련이겠거니 생각하며 다시 일상적인 일에 몰두했다.

 

그리고 한 수병은, 그동안 느끼지 못한 이상한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람 사이로,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날카로운 소음을 들었다. 프로펠러 소리였다. 미 해군의 F4F 와일드캣이나 F2A 버팔로가 내는 프로펠러 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예리한 칼날으로 하늘을 찢는 듯한 소음이 천천히, 아니, 그보다는 좀 더 빠르게 가까워져 왔다.

 

소음은 점점 더 커졌고 점점 더 웅장해졌다. 프로펠러가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순간, 수병은 위를 올려다봤다. 마치 칼처럼 예리해 보이는 날개를 양쪽으로 한껏 뻗은 늘씬한 항공기가 태양빛을 후광처럼 받으며, 오아후 섬 방향에서부터 튀어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까지도 수병들은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다. 아무렴, 적기가 아군 항공기지 방향에서 튀어나올 리도 없잖은가. 한 수병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땅개 새끼들 일요일 아침부터 훈련 한 번 요란하게 한다."

 

그리고 그 항공기는 떨거덕 텅 하는 소리와 함께 항공어뢰를 떨어뜨렸다. 항공어뢰는 그대로 물속으로 입수, 물을 가르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항공기 뒤로 한 기, 두 기, 아니... 10기, 20기, 30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항공기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일제히 항공어뢰를 떨어뜨렸다.

 

곧이어 미 해군의 자랑이었던 USS 웨스트버지니아 호의 옆구리에 어뢰가 꽂히고 불기둥과 물기둥이 동시에 솟구쳤다. 수병들이 마치 도끼에 얻어맞은 통나무의 파편처럼 날아갔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수병들은 자기들이 무엇 때문에 죽는지 몰랐다. 한 일등병이 다급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예리한 칼처럼 뻗쳐나온 항공기들의 날개 끝에는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이 일장기를 상징하는 문양이라는 것쯤은 일등병도 알고 있었다.

 

일본기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잿빛의 항공폭탄들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맞는 족족 배의 머리 위에서 폭발이 일었다. USS 애리조나 호의 정가운데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그 거대한 전함이 통째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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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 31분, 일본 제국 제 1항공전대(제 1항모기동부대)는, 미국의 준주 하와이 군도 오아후 섬의 진주만에 있던 미국 태평양 함대 기지를 공습한다. 태평양 전쟁의 시작이었다.

 

미 해군은 네바다급 전함 USS 네바다, USS 오클라호마, 펜실베이니아급 전함 USS 펜실베이니아, USS 애리조나, 테네시급 전함 USS 테네시, USS 캘리포니아, 콜로라도급 전함 USS 매릴랜드, USS 웨스트버지니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8척의 전함을 진주만에 정박시켜 뒀다. 이외에도 8척의 순양함, 30척의 구축함, 4척의 잠수함, 50여척의 각종 군수지원함이 진주만에 있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일본 제국 해군의 자랑, 아카기급 항공모함 IJN 아카기와 카가급 항공모함 IJN 카가를 필두로 소류급 항공모함 IJN 소류, UJN 히류, 쇼카쿠급 항공모함 IJN 쇼카쿠와 IJN 즈이카쿠, 공고급 순양전함 IJN 히에이와 IJN 기리시마를 출격시켰다. 이 외에도 순양함이 3척, 구축함 9척, 항공기는 무려 441기나 동원됐다.

 

결과는 처참했다. 미 해군은 4척의 전함을 격파당했고 1척은 좌초, 3척은 손상되었다. 순양함 3척, 구축함 3척이 손상을 입었으며 항공기 188기가 이륙조차 못해 본 채 비행장에서 기총에 두들겨 맞고 산산조각났다. 2,334명의 인명이 살상되고 1,143명이 중상을 입었다. 민간인 103명도 사망했다. 진주만 위에는 시커먼 죽음의 연기가 짙게 깔렸고 전함에서 새어나온 기름으로 해수면이 불바다로 변했다. 구조되지 못한 수병들은 끓어오르는 석유 속에서 새카맣게 튀겨져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갔다.

 

반면 일본 제국 해군은 고작 29기의 항공기 격추, 74기의 항공기가 경미한 손상을 입는 정도로 끝났다. 정찰용 잠수정 '갑표적'이 4척 침몰하기는 했지만 미 해군이 입은 궤멸적 손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본 제국 입장에서 이 작전은 기대를 초월한 대성공이었고, 초반의 1년을 우세하게 이끌어 나갈 준비를 해낸 최고의 전과였다. 진주만 공습은 일본 제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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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공습 발발 직전의 미-일 해군 균형은 이하와 같다. 볼드체는 수적으로 우세한 쪽이다.

 

미 해군 태평양함대 항공모함 5척(렉싱턴, 새러토가, 요크타운, 호넷, 엔터프라이즈)

일본 제국 해군 연합함대 항공모함 10척(아카기, 카가, 쇼카쿠, 즈이카쿠, 히류, 소류, 준요, 히요, 류조, 호쇼)

 

미 해군 태평양함대 전함 8척(네바다, 오클라호마,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테네시, 캘리포니아, 매릴랜드, 웨스트버지니아)

일본 제국 해군 연합함대 전함 7척(야마토, 나가토, 무츠, 이세, 휴우가, 후소, 야마시로)

 

미 해군 태평양함대 순양전함 0척

일본 제국 해군 연합함대 순양전함 4척(공고, 하루나, 히에이, 기리시마)

 

미 해군 태평양함대 중순양함 13척

일본 제국 해군 연합함대 중순양함 18척

 

미 해군 태평양함대 경순양함 11척

일본 제국 해군 연합함대 경순양함 23척

 

미 해군 태평양함대 구축함 80척(-2척: 영국에 공여하느라 2척이 차출됨)

일본 제국 해군 태평양함대 구축함 129척

 

미 해군 태평양함대 잠수함 56척

일본 제국 해군 태평양함대 잠수함 67척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전함의 단순수량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미 해군 태평양함대는 일본 제국 해군에게 압도적인 열세 그 자체였다. 심지어 순양전함의 경우에는 미국 태평양함대에 단 한 척도 없었으며 일본 해군의 전유물이었다.

 

대체 이런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일본은 어째서 미국에게 견제를 행하지 못했을까. 전력이 월등히 강하다면 전쟁을 치를 이유가 없다. 단순한 무력시위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방에게 위협을 주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북한이 현재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일본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판단을 내린 것일까.

 

 

 

= = =

 

 

 

태평양 전쟁의 기원은 1937년 중일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제국은 1930년대 초반에 만주 전역을 장악하고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웠으며, 1937년에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은 채 중화민국으로 쳐들어갔다. 순식간에 난징까지 함락시키고 중국 전역에 폭격기를 보내는 등 정말로 대륙 장악의 꿈이 머지않아 보였던 상황, 서구 열강들은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였던 중국의 함락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 총대는 미국이 맸다.

 

1940년, 미국은 미일통상항해조약을 해지시키고 석유와 고철의 수출을 막아버린다. 미국 내에 있던 일본 자산도 전면 동결시켰다. 특히 석유가 치명적이었는데, 당시 일본 제국은 미국으로부터 석유의 80%를 수입하고 있었고, 일본 제국의 모자란 기술력으로 인해 옥탄가 수치 93 이상의 고품질 석유는 자체 생산이 불가능하여 거의 97%가 미국산이었다. 고철도 사실 다를 것 없었다. 70% 가까이 되는 고철이 미국산이었으며, 이것들의 수출을 막아버리자 일본은 급격하게 산업 역량 저하를 맛봤다.

 

그러나 이 때 이미 일본 제국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실패와 연이은 공황으로 일본 제국의 국민들은 민주주의보다는 빵을 원했다. 만주사변으로 다수의 만주인이 죽었지만 동시에 다수의 일본 군인들도 죽었음에도, 일본 군인 본인들부터 군인들의 가족, 그리고 국가 전체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멈추자는 여론은 없었다. 단지 계속해서 밀고 나가서 일본 제국의 전시경제를 최대로 가동해 어떻게든 공황을 끝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떤 나라든지 간에, 전쟁을 치르면 국가의 경제가 풀가동된다. 대부분의 공장들은 군수공장으로 바뀌고, 엄청난 수의 군인들이 전장에 나가기 때문에 빈 일자리가 대량으로 창출되어 실업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린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또한 당장 군자금이 급하기 때문에 미국만 해도 무려 92%의 소득세를 후려갈기곤 했다. 국가 경제는 재건이 될지 몰라도 개인의 삶의 질에는 큰 향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달랐다. 전쟁의 상대가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무진장한 자원과 인력, 광대한 땅, 제대로 산업화되지도 않은 주제에 소련에 필적하는 국가총생산을 뽑아 버리는 그 무시무시한 체급은, 당장 일본 제국의 모든 경제를 다 돌려버리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블루오션이었다. 그런 먹음직스러운 상대가 코앞에 있는데 그냥 둘 리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생각에) 막 중국을 먹어버리기 직전에 미국의 제재가 가해졌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에게 매우 분노했다. 그리고 1941년 중반쯤 되면, 일본 제국 대본영에서는 공공연하게 미국과의 전쟁이 언급되었다.

 

여기서 일본 제국은 전쟁을 그만둔다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지 대신, 전쟁을 확대한다는 선택지를 선택했다. 그것은 남방자원지대였다. 동남아시아의 남방자원지대(브루나이, 수마트라 등)를 거머쥐어 석유 수급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동남아시아를 분할해 점령하고 있는 유럽 열강들과의 전쟁이 필수불가결했다. 그러나 걱정할 건 없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이미 독일에게 본토를 잃고 임시정부가 영국으로 달아난 상태였고, 영국도 상황은 비슷해서 한 달에 60만톤 꼴로 수송선이 가라앉는 상황이라 석유나 철강 같은 군수물자는 물론 국민들을 먹일 식량조차 모자랐다.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남방자원지대를 일본이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남방자원지대의 지도를 보니, 만주-일본-대만-중국-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까지 이어지는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는 라인에 매우 불쾌하게 비수처럼 찔러져 들어온 것이 있다. 바로 이 판도 한가운데에 말뚝처럼 박혀 있는 미국령 필리핀이었다. 이 판도를 유지하고 지배권을 확립하려면 일본 입장에서는 주변에 자신을 견제할 국가를 놔둘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대일외교에서 서구 열강들의 총대를 맨 미국이다. 미국이 남방 전쟁을 그냥 둘 리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째서 일본이 무력시위로 만족하지 않고 전쟁에 돌입했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보인다. 남방자원지대를 점령하려면 어차피 필리핀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 주인인 미국과의 전쟁은 필수불가결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피할 수 있었지만 그건 넘어가고) 확실하게 이겨야 했고, 그러려면 일단 미국 본토에서부터 필리핀까지 이어지는 중간거점이었던 하와이를 타격, 미 해군 태평양함대를 반신불수로 만들어야 했다.

 

이전까지는 진주만 공습이 '미국의 뺨싸대기를 시원하게 갈겨서 협상으로 돌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그 주장은 지나치게 일본 제국의 광기를 과장한 것이다. 일본 제국의 계획은 미 해군 태평양함대를 반신불수로 만들고, 남방자원지대를 점령한 뒤, 섬들과 각 해군기지를 요새화하여 서태평양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으로부터 서태평양을 빼앗기 위해 태평양에 힘을 집중하겠지만, 이미 요새화와 거점화가 완료된 서태평양에서 일본 제국이 수비하는 입장으로서 버텨내기만 한다면 미국이 학을 떼게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따라서 일본 제국의 진주만 공습은 당시 (중국에서의 전쟁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전제부터가 틀려먹은 상황 아래'에서는) 일본 제국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당연한 선택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진주만 공습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는지를 다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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