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소연(虎門銷烟)은 청(淸)나라 광동성(廣東省)에서 흠차대신(欽差大臣) 임측서(林則徐)가 도광황제(道光帝)의 명을 받들어 1839년 6월 3일부터 25일까지 호문(虎門)의 한 백사장에서 영국인 마약상들로부터 압수한 아편 2,376,254근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잘게 잘라 바닷물에 흘려보낸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청나라는 은의 부족으로 민생경제가 침체되었고, 이를 틈타 영국인 마약상들이 아편을 밀수출하면서 당시 황제인 도광황제에서부터 황실, 조정, 심지어는 민간에까지 아편중독이 확산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며 황실의 권위까지 추락했습니다.
이에 도광황제는 아편을 단속할 것을 천명하면서 청백리로 유명한 임측서를 흠차대신에 임명해 전권을 위임하고 영국인 마약상들이 있는 광동성으로 파견했으며, 임측서는 영국인 마약상들로부터 아편을 모조리 압수해 그것들을 23일 동안 모조리 잘게 잘라 바닷물에 흘려보냈습니다.
이로 인해 임측서는 영국으로부터 청나라의 주권을 수호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이는 제1차 아편전쟁(第一次鴉片戰爭, First Opium War)의 빌미가 되어 청나라는 영국의 군대에게 국토가 유린당하고 향항(香港, Hong Kong)을 빼앗겼으며, 임측서는 청나라가 영국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한 일환으로 청나라 조정에 의해 파직당하고 유배형에 처해졌습니다.
허나 임측서의 이러한 조치는 오늘날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싱가포르, 월남의 관료들도 모범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중국 내부에서는 반부패운동 시즌이 열리고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이 부패관리들을 숙청할 때 임측서의 호문소연을 강조하며 인민들에게 반부패운동의 명분을 선전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