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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에 세워진 다섯 동상의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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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영도위원회 청꿈실세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ວຽງຈັນ)에는 그들의 민족영웅을 본떠 세운 다섯 동상이 있는데요, 오늘은 그 민족영웅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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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응움(ຟ້າງູ່ມ): 파응움은 란쌍왕국(ອານາຈັກລ້ານຊ້າງ)의 초대 국왕으로, 라오스 안의 므앙(ເມືອງ)들을 평정하고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국인 란쌍왕국을 건국하여 초대 국왕에 오른 군주입니다. 왕위에 오른 뒤에도 지속적인 정복사업을 펼쳐나갔으나, 잔혹한 성정으로 신하들에게 폐위되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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쎗타티랏(ເສດຖາທິຣາດ): 쎗타티랏은 란쌍왕국 중흥기의 국왕으로, 부왕의 유지에 따라 치앙마이(เชียงใหม่)에 있던 에메랄드불상을 파깨오(ພຣະແກ້ວ)사에 모시고 1563년 란쌍왕국의 수도를 루앙프라방(ຫຼວງພະບາງ)에서 비엔티안으로 천도한 군주입니다. 그의 치세기간 동안 란쌍왕국은 동남아 본토의 강국 버마의 침공을 막을 정도로 강성했으며, 비엔티안의 명물인 탓루앙(ທາດຫຼວງ)을 비롯한 여러 사찰이 그의 치세에 건설되었습니다. 그 뒤 캄보디아를 치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남쪽 산악지대에서 소수민족들의 공격을 받고 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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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웡(ອານຸວົງສ໌): 아누웡은 비엔티안왕국(ອານາຈັກວຽງຈັນ)의 말대 국왕으로, 시암(สยาม)과 대남(Đại Nam)의 간섭으로 쇠락해진 나라를 다시 부흥시키고 자주독립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 군주입니다. 당시 그는 시암으로부터 빼앗긴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1826년 출병을 강행하여 깔라신(กาฬสินธุ์), 나콘랏차시마(นครราชสีมา)까지 진격합니다. 하지만 우돈타니(อุดรธานี)에서 대패하여 역으로 비엔티안왕국까지 시암군에 점령당하고, 패배한 뒤 대남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지원을 얻고 반격에 나서 비엔티안을 탈환했으나 시암군의 재반격으로 다시 패하고 노이(ນ້ອຍ)의 배신으로 시암군에게 사로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옥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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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방 봉(ສີສະຫວ່າງວົງ): 시사방 봉은 라오스왕국(ພຣະຣາຊອານາຈັກລາວ)의 초대 국왕으로, 당시 라오스를 지배하던 프랑스를 설득하여 시암에게 빼앗긴 비엔티안과 짬빠싹(ຈຳປາສັກ)을 회복하는 데 성공하고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라오스의 독립까지 승인받은 군주입니다. 그 공적을 기리어 현재의 적화된 라오스에서도 그의 동상을 철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국왕으로 있던 시절 15명의 아내와 50명의 자식을 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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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손 폼비한(ໄກສອນ ພົມວິຫານ): 카이손 폼비한은 오늘날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ສາທາລະນະລັດ ປະຊາທິປະໄຕ ປະຊາຊົນລາວ)의 제2대 주석으로, 현 라오스의 집권정당인 라오스인민혁명당(ພັກປະຊາຊົນປະຕິວັດລາວ)의 설립자입니다. 그는 프랑스의 라오스 식민지배에 저항하여 빠텟라오(ປະເທດລາວ)의 지도자 중 하나로 활동하였습니다. 나중에 라오스내전 때 월남의 지원에 힘입어 라오스를 적화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초대 라오스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주석 겸 정부수상에 취임했습니다. 이후 초대 국가주석인 수파누봉(ສຸພານຸວົງ)의 뒤를 이어 제2대 국가주석에 취임하였으나 재임기간 중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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