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대 정종
종묘사직은 역대 왕의 위패인 신위를 모시는 종묘와 토지와 곡식을 주관하는 신을 모시는 사직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종묘와 사직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이두 글자가 붙어 종묘사직이 되는 순간 그 뜻은 왕실과 국가된다. 즉 종묘사직은 조선이 되고, 조선은 종묘사직이 된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나라를 운영했다. 왕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아닌, 관료와 충분한 토의를 거쳐 합의를 이룬 뒤 국정을 운영하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또한 모든 백성이 효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생활하도록 규범을 정하고 권장했다. 왕조차도 효를 행하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자로 낙인찍혀 임금의 자리에서 쫒겨나기도 했다.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하자 서인들이 "불효를 저지른 자는 왕이 될 자격이 없다."라며 반정을 일으킨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조선의 왕들은 관료와 백성에게 효를 행하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 선왕의 영혼을 담은 신주를 종묘에 모셔놓고 정성 들여 제를 올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왕의 신주를 종묘에 모셔놓는 것만큼 왕에게 중요한 것이 농업 진흥이었다. 농업 국가인 조선은 무엇보다도 풍년을 맞는 것이 중요했다.
백성들이 굶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때가 바로 태평성대로, 풍년일 때야말로 조선의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만약 흉년이 들면 민심이 떠나고 역심을 품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기에 왕은 매년 풍년이 될 수 있도록 벼가 잘 여물 수 있는 따사로운 햇살과 대지를 적시는 비를 내려주는 하늘에 제사를 올려야 했다.
하지만 중국과 사대 관계를 맺고 있는 조선은 하늘에 제사를 올릴 수 없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중국의 황제만이 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조선의 왕들은 하늘 대신 농사에 영향을 주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고, 그 장소가 바로 사직단이었다.
선왕에게 효를 다하고, 농업을 장려하는 것이 조선의 왕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책무였다. 신하들이 "종묘사직을 생각하시옵소서!"라고 외지는 소리는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나라와 백성을 위한 현명한 통치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조선 임금 못 해 먹겠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신하들과 공부에 관료들 견제 속에 자연적인 현상 조차 왕에게 책임을 떠넘기니 허허허 (연산군 뭐냐?)
그리고 그걸 갖고 논 숙종의 파워는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