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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GP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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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유나


2005년 6월 한낱 한시에 사망한 8명의 국군장병의 추도식이 있었습니다. 추도식을 앞두고 사망한 김종명 중위의 묘에 그날의 생존 병사가 수첩을 두고 사라졌습니다.

그 수첩 앞에는 오얏 리(李)가 써져있었고 안에는 전역일을 계산한 것이 적혀있었고 별다른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왜 이 씨와 상관없는 김종명 중위의 묘위에 놔두고 갔을까.

8명의 국군이 사망한 이 사건은 16년 전에 일어난 530GP 김 일병 총기난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북한군의 소행이다, 군이 조작했다, 김 일병은 사형 당하지 않았다 등 수많은 음모론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군은 김 일병의 범행 동기를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라고 했고 3년간의 군사재판 끝에 김 일병은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사건이 발생한 530GP는 취사장, 식당, 체력단련실, 화장실, 내무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530GP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했고 양쪽에는 520GP, 531GP가 있습니다. 그리고 1km 앞에는 북한의 GP가 위치해있고 24시간 초긴장 상태에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2005년 6월 19일 새벽 2시 20분경 후방 초소 근무 중이던 김 일병은 다음 근무자를 깨우러 초소에 총을 두고 막사로 이동했는데 가던 길에 모두를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동료 관물대에서 총기를 탈취하고 수류탄을 내무반에 투척하고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알리지 못하게 상황실로 이동하는데 체력단력실에서 폭발 소리에 나온 간부를 총으로 살해합니다.

총소리에 나온 병사를 총으로 쐈는데 빗나가게 되고 그 병사는 상황실로 숨게 됩니다. 김 일병은 상황실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내무반으로 들어가 25발의 총기를 난사합니다.

530GP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김동민 일병. 김 일병은 수류탄을 던졌다고 했는데 사건 발생 후의 내무반을 살펴보면 선풍기도 멀쩡하고 수류탄이 터진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군에서는 수류탄 때문에 박 상병이 복부를 심하게 다쳤고 그 옆에 있던 병사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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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일병이 던졌다는 경량형 세열수류탄의 내부 모습입니다. 경량형 세열수류탄은 안에 1,000여 개의 쇠구슬이 있고 쇠구슬이 폭발하면서 몸에 박히는 살상 무기입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보도한 수류탄의 내부 모습과 사망한 군인들의 몸에서 발견된 수류탄의 파편은 사다리꼴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김 일병이 사용한 탄창, 수류탄 손잡이에 지문이 현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6월 13일에 북한군 병사 '리영수'가 월남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 발견된 그 수첩에는 오얏 리(李)가 적혀있었죠.

리영수는 17일에 체포가 되었고 19일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고 저녁에 군은 리영수가 대공 혐의점이 없다고 발표합니다.

일반인이 귀순을 해도 조사가 오래 걸리는데 그것도 군인이 귀순을 했는데 6일 만에 귀순으로 종결시킨다? 그리고 리영수가 혼자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6.16~19일은 남북 간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6.17일에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체류했었고 리영수가 체포가 됩니다. 그리고 진돗개 둘이 발령 납니다.

그리고 19일에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시기적으로 무언가 꺼림직한 느낌이 듭니다.

상황병은 상부에서 전화가 오자 '북한군에게 공격을 받았다'라고 보고를 합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아군인지 적군인지 정확히 식별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군은 6.18일 밤 11시 ~ 19일 새벽 1시까지 해당 지역 야간작전을 실시했는데 사건이 발생한 530GP만 빼고 실시했다고 합니다.

생존 병사는 작전 중 복귀하다가 피격을 당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면 GP 안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데 시체를 내무반으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김 일병이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인데 어떤 군인이 시나리오를 쓰는 모습과 유가족 및 관계자를 내보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군인이 아니고 유가족 대표였습니다. GP 특성상 군복을 입어야 했기 때문에 군인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상황 전후를 모르고 봤으면 진짜로 군인이 저렇게 말한 것으로 착각하게 되고 의혹은 커져만 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작전 중 피습을 당했다는 생존 병사는 사실 작전은 없었다고 진술을 번복합니다. 그 이유가 유가족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그 말에 동조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생존 병사도 그날의 트라우마가 남은 피해자인데 참 안타깝습니다.

김 일병이 사용한 증거품에서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군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빛의 반사를 막기 위해 무광 특수 처리를 하기 때문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김 일병의 손과 전투복에 뇌관화약 잔여물이 발견되게 됩니다. 김 일병이 총을 쏜 것은 확실한데 과연 아군에게 쐈는지 적군에게 쐈는지는 모릅니다.

당시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 있던 전문가에게 수류탄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실제 수류탄은 사다리꼴 모양의 파편이 들어있습니다.

군에서는 일반적으로 쇠구슬이라고 명칭을 붙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그란 구슬이 아니라 사다리꼴 파편이 발견되니까 의혹을 품게 된 것입니다.

내무반 천장을 보면 피해 병사의 혈흔과 파편이 발견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근데 왜 내무반에는 피해가 적었을까.

앞서 말했듯이 박 상병이 복부를 심각하게 피해를 입었고 옆에 있던 병사들은 피해가 적었다고 하는데 아마 박 상병이 수류탄의 폭발을 먼저 받게 되면서 피해가 줄어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법의학자는 피해 병사의 사진을 보고 붙여서 쏘거나 가까이에서 쏘면 화상을 입을 수 있고 한 발을 쏴도 여러 군데를 관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당시 군의관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군의관을 만나봤는데 부검을 하지 말고 이유를 모른 채 24시간 이내 검안을 끝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사건을 밝히려고 유가족에게 부검을 요청했지만 유가족은 부검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의문의 사고를 당해 죽었는데 아마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군은 유가족들에게 장교 한 명씩 붙여주면서 굉장히 친절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의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라고 명함을 나눠주었습니다.

근데 장례를 치르고 아들의 유품을 보내주지 않았고 전화를 해보니 군복에 피가 많이 묻어 소각해버렸다고 합니다. 생활복을 입고 잤는데 군복에 피가 묻는다?

그리고 친절을 베푼 장교의 명함으로 전화를 해보니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 장교들이 전화번호를 싹 바꾼 것입니다.

군은 유가족에게 무성의하고 예의 없는 모습을 보이며 서둘러 사건을 끝내기만 급급했습니다. 김 일병이 선임들의 가혹행위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사건을 종결시키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김 일병의 진술에는 심각한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나와있고 평소 잘해준 선임이 가장 먼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유가족들은 군에게 바라는 것은 최초 검안 사진과 시신 소독 후 사진, 김동민의 현장검증 동영상 원본, 김동민과의 면담 등 A4 한 장의 요구뿐입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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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민
    2021.11.19

    회자가 많이되던 안타까운 사건이네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