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는 삼국시대에도 존재 했단 말이지
그리고 조선시대에 와서도 유교가 있고
이 둘의 차이점 아심?
국교인가 아닌가
개신교 도 기독교 장로교 침례교 나뉘듯이 지나오면서 나뉘어 지지 않았을까 ??
그냥 삼국시대는 불교가 국교고 조선시대 때는 유교가 국교였으니
음 꼭 종교라기 보다
교육면에도 유교 사상 있지않음?
삼국시대에는 그저 하나의 사상으로 받아들여졌고 조선시대부터 유교이념이 뿌리를 내린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중국의 유교는 도교같은 다른 사상들의 영향을 받아서 좀 미신이나 타 종교에 대해서 탄압을 주도한다거나 하는 성향을 좀 덜 했고 무엇보다 남녀를 두고 차별적 성향이 덜 했음
물론 우리 조선에도 낮져밤이 서윗남 이황 선생님이 계시긴 하셨음
아무튼 조선의 유교는 사후세계를 강력히 부정하고 무신론,반신론적 성향이 강했음 조선시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기독교나 불교를 포함한 종교를 반지성의 산물로 여기거나 정신병 보듯 하는 혐오적 태도가 심함
댕큐!!
핵심은 유교가 아니라 성리학임. 그리고 거기 딸려있는 사대주의 중화사상은 옵션쓰레기고
호오!! 아메리칸보이
남송의 주희가 주장한 성리학을 기점으로 유교는 전과 다르게 변합니다
조선은 유교를 받아들였다고 간단히 말하지만 그당시 유행하던 성리학을 들여온것
이니 기니 하는게 성리학에서 하던거라
그렇군요!
삼국 시대 고대 유교는 공자께서 하신 말씀의 참뜻이 무엇인지
거기에 해설을 덧붙이고 그 해설을 공부하는 경향이 위주라면
송나라 때 만들어진 유교(우리가 흔히 성리학이라 부르는 그거)는
학문을 통해서 누구나 인격적으로 완성된 성인이 될 수 있고,
또 그런 도덕 군자들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지향이 강하죠.
그래서 조선 시대 유교 성리학은 "도학"이라고도 부릅니다.
한마디로 새벽에 일어나서 의관정제하고 글 읽으면서 도 닦는 유교,
이게 12세기 이후 한반도에 건너온 새로운 스타일의 유교(Neo-Confucianism)라고 보시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아요.
오호!!! 점점 종교로 자리 잡게 되는 그런 성향이!!!
감사합니다
아주 정확하고 의미있는 지적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성리학이 그당시 만연하던 도교 불교와 경쟁하면서
어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학문이다보니까
종교적인 측면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리학자들 스스로는 도교 불교를 무시하고 깔보는 경향도 많았지만
거꾸로 도교나 불교에서 차용한 요소들(예를 들면 참선, 명상 등등)도 많죠.
한마디로 자기 수양의 강조와 학문의 종교화,
이게 제가 이해하고 있는 근세 유교의 특징인 것 같아요.
질문 올려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ㅋㅋ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국교인가 아닌가
개신교 도 기독교 장로교 침례교 나뉘듯이 지나오면서 나뉘어 지지 않았을까 ??
그냥 삼국시대는 불교가 국교고 조선시대 때는 유교가 국교였으니
음 꼭 종교라기 보다
교육면에도 유교 사상 있지않음?
삼국시대에는 그저 하나의 사상으로 받아들여졌고 조선시대부터 유교이념이 뿌리를 내린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중국의 유교는 도교같은 다른 사상들의 영향을 받아서 좀 미신이나 타 종교에 대해서 탄압을 주도한다거나 하는 성향을 좀 덜 했고 무엇보다 남녀를 두고 차별적 성향이 덜 했음
물론 우리 조선에도 낮져밤이 서윗남 이황 선생님이 계시긴 하셨음
아무튼 조선의 유교는 사후세계를 강력히 부정하고 무신론,반신론적 성향이 강했음 조선시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기독교나 불교를 포함한 종교를 반지성의 산물로 여기거나 정신병 보듯 하는 혐오적 태도가 심함
댕큐!!
핵심은 유교가 아니라 성리학임. 그리고 거기 딸려있는 사대주의 중화사상은 옵션쓰레기고
호오!! 아메리칸보이
남송의 주희가 주장한 성리학을 기점으로 유교는 전과 다르게 변합니다
조선은 유교를 받아들였다고 간단히 말하지만 그당시 유행하던 성리학을 들여온것
이니 기니 하는게 성리학에서 하던거라
그렇군요!
삼국 시대 고대 유교는 공자께서 하신 말씀의 참뜻이 무엇인지
거기에 해설을 덧붙이고 그 해설을 공부하는 경향이 위주라면
송나라 때 만들어진 유교(우리가 흔히 성리학이라 부르는 그거)는
학문을 통해서 누구나 인격적으로 완성된 성인이 될 수 있고,
또 그런 도덕 군자들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지향이 강하죠.
그래서 조선 시대 유교 성리학은 "도학"이라고도 부릅니다.
한마디로 새벽에 일어나서 의관정제하고 글 읽으면서 도 닦는 유교,
이게 12세기 이후 한반도에 건너온 새로운 스타일의 유교(Neo-Confucianism)라고 보시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아요.
오호!!! 점점 종교로 자리 잡게 되는 그런 성향이!!!
감사합니다
아주 정확하고 의미있는 지적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성리학이 그당시 만연하던 도교 불교와 경쟁하면서
어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학문이다보니까
종교적인 측면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리학자들 스스로는 도교 불교를 무시하고 깔보는 경향도 많았지만
거꾸로 도교나 불교에서 차용한 요소들(예를 들면 참선, 명상 등등)도 많죠.
한마디로 자기 수양의 강조와 학문의 종교화,
이게 제가 이해하고 있는 근세 유교의 특징인 것 같아요.
질문 올려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ㅋㅋ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