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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21년째 잊지 못하는 그 이름…의인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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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HSSHVILI

 

 

우연히

 

20년전 일본에서 한국 유학생이 일본인을 구하려다 죽은 사건에 대해 일본에서 21년이 지난  2022년 1월 26일에도 어김없이 그를 기리는 행사를 하고, 여전히 추모한다는 기사가 있어 공유합니다. 이것도 살아있는 역사가 아닐까 싶네요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126500114

 

21년 전인 2001년 일본 도쿄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당시 26세)씨를 기리는 추모식이 올해 2022년 같은 날 어김없이 열렸다. 이날 ‘한국인 의인’ 이수현씨의 21주기 추모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최소한으로 축소돼 열렸다. 일본인과 한국인 참석자들은 사고 현장인 신주쿠구 신오쿠보역 내 추모판 앞에서 헌화한 뒤 실제 고인이 숨진 승강장을 찾아 묵념했다. 이어 인근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추모 음악회와 고인의 삶을 그린 영화 ‘가케하시’ 상영회를 열었다.

 

고인의 어머니인 신윤찬씨는 기일이 되면 아들을 그리워하며 도쿄를 찾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년 연속 영상을 통해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신씨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한일 양국의 우호를 절실히 바랬던 아들 수현이의 유지를 계승해 가는 일에 찬동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고려대 학생으로 일본에 유학 중이었던 고인은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가기 위해 신오쿠보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기 위해 열차가 역 구내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뛰어들었고 이어 사진작가인 세키네 시로(당시 47세)도 함께했지만 3명 모두 열차에 치여 숨졌다.

 

당시 사고를 다룬 무려 21년 전 뉴스 영상을 어떤 분이 유툽에 올려놨네요

 

 

현장에 있던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도 이수현과 함께 취객을 구하고자 함께 선로로 뛰어내려 빨리 취객 구조를 시도했지만, 열차가 너무 빨리 오는 바람에 3명 모두 선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야마노테선의 배차간격은 2분 30초~3분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7초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2~3초 만에 본인들만 선로 밖으로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이수현과 세키네 시로는 마지막까지 사고자를 구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기관사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피하지 않았고 결국 숨진 것이다. 이는 이수현의 아버지가 사고 현장에 찾아왔을 때, 당시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와 신오쿠보 역장(열차 선로에 침목을 놓는 일을 한 경험이 있었다.)이 증언한 사실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고인의 아버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사고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진 곳은 이수현이 다니던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였다. 당시 교장 아라이 토키요시는 바로 신주쿠 경찰서에 전화를 하고 시신 안치소를 찾아갔고, 시신을 확인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시신의 손상이 심해 본인인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교장이 "얼굴을 만들어 주세요. 이 상태로는 부모님께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부탁을 했다니 짐작이 갈까? 그래서 안면 수복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라이 교장은 부산 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사망 소식을 전하고 다시 여기서 가족에게 연락이 갔다. 차마 부모에게 사망 소식을 바로 전할 수 없어서 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쳤다고만 했는데, 아버지는 이때 이미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시각이 새벽 2시 반, 불안해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일본에 도착한 부모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온 것을 보고 당황했고, 그때 비로소 사망 소식을 알게 되었다. 하필 그날 눈이 많이 와서, 공항부터 신주쿠까지 오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 유해는 부산에 돌아왔고, 고인이 재학중이던 고려대학교는 명예학사를 수여하고 지금도 그를 위한 추모행사를 매년 한다

 

이 사건은 일본 열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에서, 한국 유학생이 생전 남남인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은 일본인에게 충격을 주었고 좋지 않던 한국인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건 이후 일본에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는 사례가 줄을 이었고, 2006년 5월 21일에 같은 곳에서 한국인 유학생 신현구 씨가 선로에 추락해 다친 여고생을 구했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060524/8310790/1

 

유족들에게도 전 일본에서 조의금과 성금, 위로의 편지가 답지했다. 일반인들뿐 아니라 각종 회사, 언론사, 방송사에서도 

 

또한 관할 철도회사 JR 동일본은 이 사고의 원인이 술 때문인 것으로 규정하고, 2005년까지 역 구내 매점에서의 술 판매를 금지시켰다

 

그의 이름을 딴 'LSH아시아장학회'가 설립되어 2002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어학교에 다니는 아시아 각국의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유족들은 이 돈은 '우리가 받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이 수현이에게 준 돈'이라고 생각하고, 수현이가 못다한 공부도 있으니까 사적으로 쓰지 않고 아들의 의지를 이어가는 게 자신들의 앞으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라이에게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맡긴 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20주기인 2021년이 되자 이 장학금을 지원받은 사람이 1,000명이 넘어섰다.

 

장학회는 8,500여명에 달하는 후원자들이 있으며, 그중에는 한류 팬들, 소식을 듣고 감동한 사람들, 유명인 중에는 역도산의 부인도 있다 일본어학교 학생을 위한 장학금이 생겨난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일본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부교재에 이수현의 이야기가 실리고 이 부분의 수업하는 부분이 참관수업으로 이루어질 때도 한 학교가 고인의 부모를 초청하면서 참석했고, 수업이 끝난 후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하였다. 

 

수많은 일본 시민들은 물론, 일본의 국회의원, 각 부처 장관들을 비롯한 여러 내각 주요 인사들과 일본 총리가 그를 조문하였으며 고인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일본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기도 하였고, 이후 일본에 한류열풍이 유행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2019년 3월에는 일본 외무상 고로다로가 이례적으로 의인 이수현의 부친 이성대가 사망한 것과 관련, 조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https://www.ytn.co.kr/_ln/0104_201903251750061403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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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지빵
    2022.02.06

    올해도 추모하냐?

  • 일경
    2022.02.06

    ㅇㅇ

  • 공정한교육
    2022.02.06

    김대중정부 시절이네요..이 뉴스와 관련은 없지만 김대중시절은 문재인과 달랐던 것 같습니다..일본에 마음을 열었던 시기, 미국과 매우 친밀하던 시기..지금 민주당 좌파들 입장에서는 김대중은 토착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 공정한교육
    ROTHSSHVILI
    작성자
    2022.02.06
    @공정한교육 님에게 보내는 답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최고령 당선이 김대중 행정부였더군요 (74세, 물론 73세에 취임하신 이승만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18세기에 태어난 분이니 말이 한살 차이지, 신체 나이는 10살 이상 더 높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김대중 행정부는 알았는데 그 후임부터는 자기의 정치적 이해 득실을 국익보다 우선하지 않았나 싶네요, 재미있는 것은 현역 정치인 중 DJ의 적통 후계자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인데 민주당에서 조차 당대표를 할 때도 각 종 당내 핵심 정보를 공유받지 못한 말 그대로 바지사장, 왕따였지요 (EX. 추미애만 아니면 김경수도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하나 아니었을지)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72112182792106

  • ROTHSSHVILI
    공정한교육
    2022.02.06
    @ROTHSSHVILI 님에게 보내는 답글

    김대중정부시절 운동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민주당이 이 정도까지 막장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공정한교육
    ROTHSSHVILI
    작성자
    2022.02.06
    @공정한교육 님에게 보내는 답글

    그래도 민주당 의원들 중 의외로 먹물들이 과거보다는 한참 많아 진 것 같아요, 그런 이들은 민주당 좋아서가 아니라 여당 공천받아서 지역 일군되는게 확률적으로 당선될 여지가 높다 아닐지, 중앙 정치 야망이 없는 이들도 있고, 이언주 전 의원처럼 태생적으로 민주당과 코드가 안맞지만 공천을 거기로 받아 정치 입문한 이들은 좀 구분해서 예의주시하고 탕평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협치, 탈당 등을 유도해야지 싶네요

     

    아참 김대중 행정부 때 일본과 관계가 좋았던 것에 김대중 납치 사건 등 목숨을 빛져서라 생각했는데 이게 일본 독자 행동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에 도와주라 한게 아닐까 싶더군요, 꾸준히 야당 생활을 했으니 사안에 따라 미국과 이견이 클 수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견제 카드로 한국 야당 인사들을 미국이 뒤 봐줄 동기는 충분하지요, 이승만 대통령의 하와이 망명도 어떤 재미교포분 글을 보니 미국 CIA가 주선했다는 설이 있더군요, 미국 입장서 맹목적인 친미가 아니라 철저히 미국을 이용할 줄 알았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여간 나중으로 갈수록 부담스럽지 않아 미국 입장서는 좀 다루기 쉬운 인물로 갈고 싶은 동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 제 생각에 미국이 한반도의 중요성은 인정하나, 한국이 딱 필리핀 같이 미국이 통제하기 좋은 상태를 지금보다 선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은 너무 커서 균형외교 운운하며 미, 중 간 박쥐 짓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 ROTHSSHVILI
    공정한교육
    2022.02.06
    @ROTHSSHVILI 님에게 보내는 답글

    박정희대통령이 핵무장하려 했던 것 맞지요? 그래서 견제가 필요했을까요?

  • 공정한교육
    ROTHSSHVILI
    작성자
    2022.02.06
    @공정한교육 님에게 보내는 답글

    친미 스탠스는 유지하되 우리도 카드를 최대한 많이 쥐고 있어야 한다 믿고 여러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이게 유별난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정도면 비슷한 시기 다른 외국 정상들도 참고 많이 했을 듯 싶은데 , 프랑스 드골 대통령만 봐도 북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 사막에서 핵실험 해버리고 강행해서 미국이 나중에는 두손 들고 오히려 프랑스 핵 무장을 도와줬지요, 이스라엘 핵무장도 프랑스와 영국이 많이 도와줬지요. 프랑스랑 영국도 이집트가 국유화한 수에즈운하 되찾을려고 이스라엘 핵무장 준비 돕고, 미국 왕따시켰다 낭패 본 것 보면, 저마다 자국 이익을 쫓는 과정서 미국과 크고 작은 이견을 가진 것은 아주 일반적이었던 것 같아요

     

    단 소설 때문에 핵무기 전문가로 잘못 회자되는 한국계 미국인 물리학자 '벤자민 휘소 리'(=이휘소 박사)는 연구분야만 봐도 순수 이론 물리학자지요, 어짜피 핵무기 개발이 원료 물질을 지금이나 옛날이나 국제 제재, 핵사찰 압박 없이 확보하는게 어렵지 구현하는데 이론상으로 심오한 것도 아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