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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많은 국민이 용산을 질투한다?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을 담은 담론

양당체제 붕괴 결정타 될 초현실적 발언 암담

 

고래(古來)로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자기 세상에만 갇혀 사는 이들이 종종 있어왔다. 이들은 보고 듣는 이의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아전인수(我田引水)‧견강부회(牽强附會)를 아무렇잖게 행했다. 이는 십중팔구 ‘폭망’을 야기했다.

 

그 중 하나가 춘추시대(春秋時代) 오(吳)나라의 인물인 백비(伯嚭‧생몰연도 불명)다.

 

백비는 당초 초(楚)나라 사람이었다. 초나라 왕족 낭와(囊瓦)에 의해 집안이 결딴나자 그는 홀로 살아남아 오나라로 망명했다. 같은 초나라 출신으로서 앞서 오나라에 귀순해 중용됐던 오자서(伍子胥)가 백비의 정착에 큰 도움을 줬다. 장강(長江) 유역의 오‧초 두 나라는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한 중원(中原)국가들과는 민족도 문화도 다른 문명권에 속했다. 때문에 백비와 오인(吳人)들 간 언어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원래 사람이 그랬던 건지 백비는 권력욕이 지나쳤다. 그는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직언하는 대신 비위 맞추기에만 바빴다. 그 과정에서 강직한 오자서와 틈이 벌어지자 은인인 그를 참소해 기어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백비의 신들린 아전인수 수준은 다음과 같았다.

 

오나라 남쪽의 월(越)나라를 정복한 부차는 오자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비의 부추김 속에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살려뒀다. 그리고는 제 ‘분변’을 핥게 하는 등 갖은 모욕을 주다가 월나라로 돌려보냈다. 구천은 겉으로는 부차에게 복종하는 척하고 안으로는 쓰디쓴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준비했다. 부차는 그것도 모른 채 이번엔 중원의 강국인 제(齊)나라를 치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차는 기이한 꿈을 꿨다. 부차는 꿈속에서 장명궁(章明宮)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보니 두 솥에 불을 때는데 안에 든 음식은 전혀 익지 않았다. 검은 개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남쪽을 향해 짖고 한 마리는 북쪽을 향해 짖었다. 궁궐 담장에는 강철 가래 두 자루가 꽂혀 있었고 큰물이 궁전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후궁(後宮)에는 북도 종도 아닌 이상한 게 있는데 쇠를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정원에는 오동나무만 가득 늘어서 있었다.

 

꿈에서 깬 부차는 총애하는 백비를 불러 해몽(解夢)해보라 시켰다. 누가 봐도 불길한 꿈인데 백비는 입에 침도 안 바른 채 다음과 같이 늘어놨다. “대왕의 꿈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장명’이란 개선가(凱旋歌)를 울린다는 뜻입니다. 솥 안 음식이 익지 않는 건 대왕의 덕이 성대해 그 기운이 남아돈다는 것입니다. 개 두 마리가 남북으로 짖는 건 사방의 오랑캐가 복종하고 제후들이 입조(入朝)할 조짐입니다… (이하 생략)”

 

부차는 박장대소하면서도 내심 미심쩍어 이번엔 왕손락(王孫雒)이란 이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왕손락은 대답 대신 유명한 해몽가(解夢家)인 공손성(公孫聖)을 추천했다. 진실을 말했다간 난폭한 부차에게 죽을 게 뻔하고 그렇다고 거짓을 고할 수도 없었던 공손성은 가족을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했다. 그리고는 입궁(入宮)해 “제나라 정복과 관련된 매우 불길한 꿈이다” 이실직고했다. 공손성은 예감대로 철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부차는 일단은 제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주천자(周天子)의 승인을 얻어 패자(霸者)의 지위에 올랐다. 기고만장해진 부차는 귀국하는 것도 잊은 채 구천이 보낸 경국지색(傾國之色) 서시(西施)와 놀고 여러 제후들과의 회맹(會盟)을 즐기기에만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천은 아이들이 부르는 이상한 노래를 듣게 됐다. “오동 잎새 싸늘한데 오왕은 아직 술에 취했는가. 오동 잎새 가을인데 오왕은 근심 또 근심에 싸였네” 길조(吉兆)일 리 만무한 가사였기에 부차는 다시금 백비를 불러 무슨 의미인가 물었다. 백비는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봄이 오면 만물이 기뻐하고 가을이 오면 만물은 슬퍼합니다. 이상할 게 없습니다” 기가 막힌 니 맘대로 해석을 늘어놨다. 부차는 박수 치며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결국 사달은 벌어졌다. 부차가 거의 모든 오군(吳軍)을 이끌고 타지에서 흥청망청 춤추고 있을 때 구천은 기원전 482년 텅 빈 오나라를 기습해 부차의 아들 태자 우(友)를 사로잡았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진(晉)나라 등 중원국가들은 “저 패자호소인을 마구 두들겨 패자” 칼 빼들고 덤볐다.

 

오자서는 애초에 부차에 의해 처형됐기에 오나라에 구국영웅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 무능했던 백비는 월나라와 싸우는 족족 패하거나 겨우 버티기만 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신세가 된 오나라는 결국 기원전 473년 구천에 의해 멸망했다.

 

구천은 포로가 된 부차에게 “네가 예전에 날 살려줬으니 나도 네 목숨을 남겨두마. 널 100호의 장(長)에 봉하마” 조롱했다. 100호의 장은 오늘날의 이장 격이다. 부차는 “저승에서 오자서를 볼 낯이 없다”며 얼굴을 가린 채 자결했다. 수백년 뒤 쓰여진 사기(史記)에 의하면 백비는 부차에 앞서 목이 떨어졌다.

 

최근 모 공중파 방송의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보수패널’이라는 A씨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듯이 인간사회에는 권력에 대한 질투와 질시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권력도 가졌고 재산도 많고 또 어려움 없이 살아온 이런 부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질투와 질시 등이 밑에 깔려 있는 것” “현 정권을 향해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는 하되 동의는 할 수 없다”

 

나아가 A씨는 고대 그리스 격언(格言)을 인용해 “젊은이들이 망친 나라를 노인이 구한다”는, 대한민국 청년 전체를 싸잡아 문제아로 격하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고 한다.

 

해당 인물이 국민의힘 당적(黨籍)을 가졌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 한마디,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적인,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현실과의 괴리감도 이런 괴리감이 있을 수 없는 발언이 국민의힘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아주 크게 고조된다. 범야권은 이미 축배를 들고 있다고 한다.

 

사적으로는 필자에게 있어서 업계 대선배님이시긴 하나 직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그렇게 믿으시는 건지. 그게 A씨에게는 진실인 건지. A씨도 방송에서 총선이 위기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는데, 만에 하나 이번 총선에서 본인 발언들이 결정타가 돼 부동층(浮動層) 상당수가 여당에 등 돌려 양당체제가 무너지고 나아가 개헌저지선마저 무너진다면 그 책임을 어찌 다하실 건지.

 

복수불반(覆水不返)이지만, 직언 드린다 해서 어찌 수습할 도리도 없지만, 필자가 지금 이걸 왜 쓰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혼란스럽지만, A씨께 한 말씀만 드린다. 많은 사람이 A씨 발언을 국민의힘 입장과 동일시하고 있다. 사과하심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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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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