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년대 그 시절에는 거의 물가상승이 없었고, 물가상승이 있더라도, 은행 예금금리가 아주 높아 10% 대였는데, 인플레가 동반되어도 체감상 인플레를 심각하게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금리가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높아도, 그때 사람들이 굳이 은행에 예금해두려고 했었나는 의문이며, 적금 같은 경우에는 활성화돼 있었고,
저축을 장려했습니다.)
2) 또, 198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3저 현상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이 나타나 대외 환경이 우호적으로 작용했습니다.
3) 1985년 미국-일본 간에 '플라자합의'로 인한 환율 영향력도 상당히 있습니다.
4) 전두환 정권은 자본이 생산적 요소 외로 유출되는 '투기' 수요를 강력히 단속했는데,
예컨대, '부동산'에 투자하여 불로소득을 얻고자 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죄악시 했으며, '복부인'이나 '부동산 투기업자'는 사회적으로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부동산으로 '자본 투기'를 한다는 개념은 대중적으로 이 시기에 성립하지 않았으며, 다만 지배계층의 극히 일부가 예외적으로 그런 투자를 즐겨 남몰래 자본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한편, '증권 시장'도 활성화돼 있지는 않아서, 기업은 몰라도, 서민들이나 중산층에 "자본투자"의 개념이 널리 퍼져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택'이나 '집'에 대한 '투자' 개념은 활성화되거나 있을 수 없었고, 집은 대체로 '거주'를 위한 공간으로만 인식되었고, 서울 내, 강남 내에서도 아파트가 처음에는 남아 돌기도 해서,
선생님들이나 공무원들한테 장기 융자를 주어 입주를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처럼 특히 '아파트'를 가격상승, 자본 이득의 개념으로 추종하기 시작한 것은 언론의 탓이 큰데,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지를 중심으로 노태우 정부가 수도권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를 대규모로 개발하는 시기부터, 또 1988년 올림픽이 끝나면서, 임금 상승 욕구와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점점 부동산의 대중적 '투자'의 개념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는데,
돌이켜 보면, 언론이 먼저 조장한 측면이 있습니다. 즉, 과거에는 '복부인'으로 남몰래 몰래 몰래 하던 '투기', '투자'의 개념이 서서히 전면으로 올라서게 된 것이죠.
결론적으로, 전두환 정권은 그 태생에서 반헌법적이고 중대한 헌정 파괴 행위가 있고, 그 죄를 씻을 수는 없으나,
내치만을 놓고 보면, 신군부의 강력한 장악력과 리더십으로 안정적 민생을 이끌어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 때가 살기가 좋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쭉 이어져온 범죄나 민간 치안 등은 제외).
이처럼 내치에 성공한 이유로 전두환은 그의 회고에서 나는 '용병술'을 잘 썼다.. 유능하고 학식있고 배우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주요 관료들로 배치하여, 양심적으로 일하도록 했습니다. 즉, 용병술을 잘 썼다고 회고하는데, 아주 중요한 핵심이며, 그건 맞는 말입니다. 주로 최고 수준의 대학교수 출신들이 관료로 입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서울로 올라와 빠르면 3년~5년~7년 정도만 부지런히 뭔일을 하든 일만 하면 서울에서 조그마한 다세대, 빌라라도 내 집 마련은 할 수 있는 정도여서,
지금처럼 어려운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수도권 집중이 너무 심화돼서, 계속 서울의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는 거죠.
이런 현상은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일본 도쿄나, 미국 뉴욕처럼 수도권을 중심으로 메트로시티가 되어 가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5) 그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나 고성장 시대였고,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은 더욱 그러했는데,
특히 전문 관료들이 뻣뻣하기도 했지만, 강한 사명감을 지니고 일했었다고... 일컬어집니다.
그러니까말입니다
그것도 못하는 개 seki가 있으니 말이죠
그러니까말입니다
그것도 못하는 개 seki가 있으니 말이죠
사실 그렇게하려면 대규모 구조조정과 임금조정, 물가조정등을 강행해야해서 하고나면 정치적으로 독배를 마시는거라 쉽지않은건맞음
카피해서 활용하는것도 사실 아무나 하는게 아니죠
인플레를 잡았다기 보다는,
1)80년대 그 시절에는 거의 물가상승이 없었고, 물가상승이 있더라도, 은행 예금금리가 아주 높아 10% 대였는데, 인플레가 동반되어도 체감상 인플레를 심각하게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금리가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높아도, 그때 사람들이 굳이 은행에 예금해두려고 했었나는 의문이며, 적금 같은 경우에는 활성화돼 있었고,
저축을 장려했습니다.)
2) 또, 198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3저 현상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이 나타나 대외 환경이 우호적으로 작용했습니다.
3) 1985년 미국-일본 간에 '플라자합의'로 인한 환율 영향력도 상당히 있습니다.
4) 전두환 정권은 자본이 생산적 요소 외로 유출되는 '투기' 수요를 강력히 단속했는데,
예컨대, '부동산'에 투자하여 불로소득을 얻고자 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죄악시 했으며, '복부인'이나 '부동산 투기업자'는 사회적으로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부동산으로 '자본 투기'를 한다는 개념은 대중적으로 이 시기에 성립하지 않았으며, 다만 지배계층의 극히 일부가 예외적으로 그런 투자를 즐겨 남몰래 자본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한편, '증권 시장'도 활성화돼 있지는 않아서, 기업은 몰라도, 서민들이나 중산층에 "자본투자"의 개념이 널리 퍼져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택'이나 '집'에 대한 '투자' 개념은 활성화되거나 있을 수 없었고, 집은 대체로 '거주'를 위한 공간으로만 인식되었고, 서울 내, 강남 내에서도 아파트가 처음에는 남아 돌기도 해서,
선생님들이나 공무원들한테 장기 융자를 주어 입주를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처럼 특히 '아파트'를 가격상승, 자본 이득의 개념으로 추종하기 시작한 것은 언론의 탓이 큰데,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지를 중심으로 노태우 정부가 수도권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를 대규모로 개발하는 시기부터, 또 1988년 올림픽이 끝나면서, 임금 상승 욕구와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점점 부동산의 대중적 '투자'의 개념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는데,
돌이켜 보면, 언론이 먼저 조장한 측면이 있습니다. 즉, 과거에는 '복부인'으로 남몰래 몰래 몰래 하던 '투기', '투자'의 개념이 서서히 전면으로 올라서게 된 것이죠.
결론적으로, 전두환 정권은 그 태생에서 반헌법적이고 중대한 헌정 파괴 행위가 있고, 그 죄를 씻을 수는 없으나,
내치만을 놓고 보면, 신군부의 강력한 장악력과 리더십으로 안정적 민생을 이끌어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 때가 살기가 좋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쭉 이어져온 범죄나 민간 치안 등은 제외).
이처럼 내치에 성공한 이유로 전두환은 그의 회고에서 나는 '용병술'을 잘 썼다.. 유능하고 학식있고 배우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주요 관료들로 배치하여, 양심적으로 일하도록 했습니다. 즉, 용병술을 잘 썼다고 회고하는데, 아주 중요한 핵심이며, 그건 맞는 말입니다. 주로 최고 수준의 대학교수 출신들이 관료로 입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서울로 올라와 빠르면 3년~5년~7년 정도만 부지런히 뭔일을 하든 일만 하면 서울에서 조그마한 다세대, 빌라라도 내 집 마련은 할 수 있는 정도여서,
지금처럼 어려운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수도권 집중이 너무 심화돼서, 계속 서울의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는 거죠.
이런 현상은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일본 도쿄나, 미국 뉴욕처럼 수도권을 중심으로 메트로시티가 되어 가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5) 그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나 고성장 시대였고,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은 더욱 그러했는데,
특히 전문 관료들이 뻣뻣하기도 했지만, 강한 사명감을 지니고 일했었다고... 일컬어집니다.
글쎄요 나머지는 동의하지만 인플레는 세계적으로 박정희정권 말부터 시작되어서 심각한 인플레를 겪었는데 체감상 인플레를 못느꼇다는말은 동의하기어렵네요.
그시대에 그렇게 못한 나라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