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22일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을 강제로 끌고 가기 위해 3차 강제구인 시도에 나섰다. 공수처는 지난 21일에도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참석했던 윤 대통령을 서울구치소에서 기다렸지만 윤 대통령이 몸 상태가 안 좋아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서 허탕을 쳤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 몸 상태와 위치, 동선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조사하겠다며 구치소를 찾은 것이다. 심지어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윤 대통령에 대해 변호인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접견 금지 조치를 내린 데 이어 서신 수·발신까지 금지했다.
게다가 현재 윤 대통령은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는 공수처 수사에 대해선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 강제구인을 하더라도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그간의 소환 불응에 대한 보복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새해 첫 날 윤 대통령 수사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은 하되 또 예의는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오 처장 말처럼 전개되지 않았다. 1·2차 체포 영장 집행 과정은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생중계됐고 강제구인을 통해 윤 대통령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대통령 망신 주기용 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검사가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 공소제기 후에는 검찰·경찰·공수처 등의 강제수사를 금지한다'는 것이 현행 형사소송법의 원칙이다. 공소제기 후 압수수색 등을 통해 강제수사에 나서면 피의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 또는 피청구인 입장에서 국회의 탄핵소추도 넓은 의미에서 검사의 공소제기와 비슷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탄핵심판 도중에는 수사를 중단하는 게 옳다. 게다가 공수처는 윤 대통령 측 주장대로 형법상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
또 공수처가 증거인멸 가능성을 들어 윤 대통령의 외부인사 접견과 서신 수·발신을 금지시킨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 무엇보다 아직 탄핵이 확정되지 않은 현직 대통령인데 잡범 다루듯 예우를 무시해선 안 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미 대통령을 포함해 주요 인물 모두 구속된 상태"라며 "대통령은 체포영장 집행 직후 진술 거부 의사를 명확히 표했기 때문에 구인을 해도 아무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 탄핵 심판 출석을 예고한 상황에서 강제구인으로 출석하지 못하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공수처에 부당한 강제구인 중단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구속 상태인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출석시 수인번호 '0010번'이 찍힌 수의를 입고 출석하도록 종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구속됐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증인으로 출석할 당시 수의를 입고 호송차에서 헌재에 내려 주차장부터 심판정까지 교도관들을 따라 걸어서 이동했다. 게다가 손도 묶인 채였다.
이에 대해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양복을 입고 헌재에 출석한 것은)교정 당국 협의 사항"이라며 "헌재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존재감 드러내려 '무리수'
윤 대통령 구속 기한을 20일로 추산하면 공수처는 오는 28일 검찰에 윤 대통령 사건을 넘긴 뒤 다음달 7일에 기소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공수처도 설 전에 사건을 이첩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오 처장은 22일 오전 정부과천종합청사 내 공수처 청사로 출근하면서 "검찰과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절차에 미흡함이 없도록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공수처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약 일주일 남짓이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를 앞두고 경찰에 집행 권한을 넘긴다고 발표한 뒤 질타를 받자 서둘러 이를 철회했다. 하지만 이후 체포영장 집행에 경찰이 대거 투입돼 실질적으로 공수처가 아닌 경찰이 체포를 주도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소마저 검찰에서 이뤄지면 공수처 '무용론'은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2021년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출범한 공수처는 설립 이래 연평균 200억원대 예산을 썼지만, 직접 기소한 사건은 5건에 불과하다.
▲김형준 전 부장검사 '스폰서 검사' 사건 ▲손준성 검사장 '고발사주 의혹' 사건 ▲윤모 전 검사 고소장 위조 사건 등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유일하게 1심 유죄 판결이 나온 손준성 검사장의 고발사주 사건의 경우 최근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 외압 의혹과 명태균씨 공천개입 의혹 등 굵직한 사건들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수사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공수처도 이를 의식하듯이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전화위복으로 삼으려 대통령에 대한 조사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조사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서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 측이 정당한 방어권의 일환으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며 공수처의 무리한 신병확보나 수사 적법성 등에 대한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지만 공수처는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이라면 공수처 조서는 윤 대통령의 날인도 받지 못해 향후 재판에서 활용할 수도 없다.
법조계 한 인사는 "법률적으로 공수처가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이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 번 조사를 받은 상황"이라며 "사실 구인한 뒤 진술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인권에 대한 침해다. 이대로 가면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와 구속이 무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생적 한계 드러낸 공수처…수사 경력 없는 변호사가 검사 역할
이런 공수처의 '능력부재'는 과거 감사원 고위직(3급) 간부 뇌물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공수처는 이 사건을 2021년 10월 감사원 의뢰로 수사에 착수한 이래 2년 만인 2023년 11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등 혐의를 인정해 서울중앙지검에 송부하면서 공소제기를 요구했었다.
수사 기록을 검토한 중앙지검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2024년 1월 12일 관계 서류와 증거물 일체를 다시 공수처에 이송했지만 공수처는 사건 접수를 거부했었다. 결국 중앙지검이 스스로 보완수사를 하기로 결정하기까지 10개월 동안 사건은 허공에 떠 있었다.
이는 옥상옥(屋上屋) 논란 속에 출범한 공수처의 한정된 수사 인력 등 태생적 한계도 한몫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강행했던 검경 수사권 조정(검수완박)과 공수처 출범이 오히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된 셈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두 권력기관 간 관계성이다. 민주당은 2020년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고치면서 검사와 사법경찰관(경무관·총경·경정·경감·경위)을 '협력하는 관계'로 못 박았다. 수사·공소 제기(기소)뿐 아니라 공소 유지에서도 두 기관은 협력해야 한다고 형사소송법에 명시했다. 경찰이 검사의 지휘를 따르는 하부기관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에서는 '지휘'라는 단어가 대부분 삭제됐다. 다만 구속영장 집행과 관련한 형사소송법 제81조 제1항에는 '구속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해 사법경찰관리(사법경찰관과 경사·경장·순경과 같은 사법경찰리를 포함)가 집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활용해 공수처는 형사소송법을 따를 수 있다는 공수처법까지 고려해 경찰 측에 영장 집행을 위임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수색영장 집행 만료일 하루 전인 지난 5일의 일이다. 하지만 경찰 측의 거부로 6일 영장 집행은 결국 무산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 수사준칙에서 '검사의 구체적인 영장 지휘' 규정이 삭제됐기 때문에 공수처의 영장 집행 지휘를 받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가 내란죄 직접 수사권이 없다는 점도 난제다. 검찰 역시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대상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좁혀졌다. 윤 대통령 측이 "내란죄 직접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수사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배경도 그것이다.
공수처의 인력 부족은 그동안 수사력 약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돼왔다. 공수처의 검사 정원은 25명으로 일선 지청 규모지만 이마저 출범 이래 정원을 모두 채운 적이 없었다. 공수처 출범과 함께 임명됐던 '1기 검사' 13명은 3년 임기를 채우지 않고 모두 조직을 떠났다.
공수처 검사 자격 요건도 문제다. 당초 변호사 자격 10년 이상에, 관련 수사 업무 경력 5년 이상이 필요했지만 민주당 중심의 개정안에 따라 변호사 자격을 7년 이상으로 낮추고 수사 경력 요건은 아예 삭제했다. 수사 경력이 없는 변호사 출신이 공수처 검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공무원 7급 이상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공수처 수사관도 변호사 자격만 있으면 지원 가능하다. 과거 검찰개혁에 대한 소신이 있는 신참 변호사들이 대거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검찰과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과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수사력 약화 원인 중 하나다. 특히 검찰과는 수사 권한과 역할, 주도권 문제를 놓고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고 있다. 공수처가 공소제기를 요구한 사건을 중앙지검이 반송하고 다시 공수처가 접수를 거부하며 신경전을 벌인 감사원 고위직 간부 뇌물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포괄적인 진술 거부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강제구인을 하는 것은 진상규명과 상관없는, 전형적인 망신주기"라면서 "공수처는 검사들이 기피하면서 존재감이 약해졌고 인력 부족이나 타 기관의 비협조 문제는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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