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선거제 개편을 놓고 '전(全) 당원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당내에서 의견 일치가 안 되자 당원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책임 회피'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일 민주당에 따르면, 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당원 투표를 통해 당론을 모으기 위한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 병립형을 전제로 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등 복수안에 대해 선호도를 묻거나 둘 중 하나의 안에 찬반을 묻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달 28이 민주당 의원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 도입을 위해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사실상 방향을 정해 놓고 투표를 하자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주장하는 의원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민주당 의원 80여 명은 지난달 26일 성명을 통해 "병립형 퇴행은 253개 지역구에서 손해 보는 소탐대실"이라며 당 지도부에 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압박했다.
이 대표에게는 나름의 고민이 있는 상황이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는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할 경우 제3지대 몸집이 커지는 상황에서 '과반 의석'이라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진다. 반면 병립형으로 회귀하면 이 대표가 대선후보 시절 공약을 어겼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저울질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선거제 개편 결정 권한을 당원에게 넘긴 것 또한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사실상 책임 떠넘기기 아니냐는 지적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선거제 개편은 대표가 결단할 문제"라며 "뭘 해도 욕을 먹게 되니까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모로 가도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부담을 덜기 위해 당원 투표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야권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대개 천벌 받을 짓은 전부 당원 투표를 해서 한다"며 "(선거제 약속을) 또 뒤집으면 '무신불립'"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기존 입장을 뒤집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당원 투표를 실시한 전력이 있다.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20년 3월 민주당은 당원 투표를 통해 자신들이 '꼼수 정당'이라고 비판한 위성정당 참여를 결정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 비위 사태로 치러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후보 공천 여부를 정하기 위해 당원 투표를 실시했다. 결국 민주당은 '귀책사유가 있는 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개정해 선거에 후보를 냈다.
이번에도 당원 투표를 실시하면 민주당 지도부가 유력 검토한 권역별 비례제가 채택될 확률 높다. 77.7% 득표율로 당 대표에 당선된 이 대표는 여전히 '개딸(개혁의딸)' 등 강성 지지층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분위기다. 앞서 이 대표가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회귀 의사를 밝힌 만큼 당원들도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정의당은 민주당의 당원 투표 추진을 "비겁한 정치"로 규정했다. 김가영 부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득권을 지키고자 정치적 책임을 당원에게 미루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태도"라며 "대선 공약으로 연동형 비례제를 국민에게 약속해놓고, 그 선택의 후과를 당원들의 선택 뒤에 숨겠다니 옹색하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개혁미래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발표해 "말은 당원 투표지만 민주당이 하겠다는 전당원 투표는 히틀러의 나치당, 모택동의 문화혁명, 한국전쟁의 인민재판에 쓰여진 독재자의 군중동원 방식으로 대중을 동원하여 권력욕을 정당화시켰던 가장 비겁한 정치 수법"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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