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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추석제사상 오를 판인 용산사람들

오주한

미국판 犬딸 간과했다 TG 밥상 오른 행정부

李 기각 예상된 결과…大, 기본부터 다져야

 

영장기각 앞 우려되는 동정표 효과

 

‘동정표’라는, 필자가 앞서 우려했던 사태가 결국 빚어지고 말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돼 도리어 윤석열정부가 역풍(逆風) 맞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추석 밥상민심(民心)에 이 대표를 올리려다 도리어 용산 사람들이 오를 판이다.

 

동정표가 갖는 위력은 무시할 수 없다. 대표적 사건이 월남전(Vietnam War‧기간 1955~1975)이다.

 

월남전은 선악(善惡)이 분명한 전쟁이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가 될지 자명(自明)했다. 실제로 베트남 적화(赤化)는 수많은 보트피플(Boat people)을 낳았다. 나아가 캄보디아‧라오스 적화 등 도미노현상으로 킬링필드(Killing field)라는 대학살이 발생했다. 이를 막아야 했기에 6‧25를 겪은 우리 대한민국도 파병(派兵)한 것이다.

 

허나 방어 측이 사실상 패함에 따라 가해자가 도리어 피해자로 둔갑돼 미국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졌다. 침략자 월맹(越盟) 그리고 이에 호응한 베트콩(Vietcong‧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강자를 이긴 약자”가 돼 축배를 들었다. 비록 ‘사이공(Saigon) 최후의 날’ 이후 베트콩은 월맹에게 토사구팽(兔死狗烹) 당했지만 말이다.

 

가해자 월맹

 

1950년대 베트남은 자유민주 체제의 월남(越南) 및 공산체제의 월맹으로 분단돼 있었다. 월남 대통령 응오딘지엠(吳廷琰)의 과오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의 반정부인사 체포‧구금은 숨어있는 베트콩 색출이 목표였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미 대통령도 “총선이 열리면 월남 인구 80%가 공산당에 투표할 것” 분석했다. 현실에서도 베트콩은 곳곳에서 준동(蠢動)했다. 1961년 9월2일 베트콩은 분산된 전력(戰力) 통합해 보병 1대대를 설립하기도 했다.

 

월맹은 1959년부터 이미 베트콩 물밑지원에 나서고 있었다. 이들은 그해 5월 559단(Group 559)을 발족하고 호치민루트(Ho Chi Minh trail) 개척에 나섰다. 해당 길은 월맹이 간첩‧군수물자를 월남에 내려 보내기 위해 캄보디아‧라오스를 거쳐 만든 것으로 구찌터널(Cu Chi Tunnels)과 함께 악명 떨쳤다. 1961~1963년에는 약 4만 병력이 호치민루트를 따라 은밀해 월남으로 향했다.

 

본격적 공세(攻勢)는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월맹 측 화기(火器)로 무장한 약 350명의 베트콩은 1963년 1월2일 압박전투(Battle of Ap Bac)에서 약 1500명의 월남군을 대파했다. 월남군의 미국산 병력수송장갑차(APC) 등은 오합지졸들에게 무용지물이었다. 응오딘지엠은 동년 11월 쿠데타로 사망했다. 승기(勝機)를 확신한 월맹군은 1964년에 약 1만, 이듬해에 약 10만을 동원해 월남을 들이쳤다.

 

월맹은 미국도 공격했다. 월맹 측 해군 어뢰정 3척은 1964년 8월2일 미 해군 구축함 USS 매독스(USS Maddox)를 기습하는 통킹만사건(Gulf of Tonkin Incident)을 일으켰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미국은 월남의 자유민주 체제 수호 및 인접국가 국민들 안전을 위해 월남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우리나라도 해병 청룡부대를 필두(筆頭)로 해방전쟁에 나섰다.

 

히피들 의해 피해자 둔갑한 월맹

 

월맹은 다양한 방법으로 한미 연합군을 괴롭혔다. 대표적인 게 1968년 1~9월의 구정대공세(Tet Offensive in South Vietnam)다.

 

베트남은 한일중(韓日中) 3국과 함께 유교권(儒敎圈) 문화에 속한다. 기원전 3세기까지만 해도 베트남 지역엔 반랑(Van Lang) 등 독립국이 존재했다. 이후 초한전쟁(楚漢戰爭) 혼란기를 틈타 진(秦)나라 장수 조타(趙佗)가 인도차이나반도에 자리 잡고 남월(南越)을 세웠다. 삼국시대(三國時代)에는 교주자사(交州刺史) 사섭(士燮‧시니엡)에 의해 중원문물이 대거 흘러들어왔다.

 

따라서 베트남인들도 구정(舊正‧음력설) 격인 뗏(Tet)이라는 명절을 지낸다. 외교부 등에 의하면 뗏 기간엔 고향을 찾아 가족‧친척 만나고 조상께 제사를 올린다. 이렇듯 신성(神聖)한 날이기에 당연히 구정 때는 아무리 큰 전쟁이라도 일시 휴전하는 게 관례였다.

 

허나 음력설 등을 구시대 봉건(封建)잔재 쯤으로 여기면서, 심하게는 부모‧자식끼리도 “자본주의 반동” 고발했던 공산권이 뗏을 지낼 리 만무했다. 월남사회 전체가 모처럼 대명절 맞아 화기애애한 사이 월맹‧베트콩은 1968년 1월30일 월남 전역(全域) 도시 약 100곳에서 일제히 봉기해 총탄을 갈겼다. 사이공 주재 미 대사관에도 불벼락이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월맹‧베트콩은 최대 6000명의 양민(良民)을 도살하는 1968년 2월 후에대학살(Hue Massacre)을 일으켰다. 사망자 중에는 젖먹이 아이들도 포함됐다. 당초 학살을 부정하던 월맹정부는 전쟁 후 “베트콩 소행이다”고 책임전가하며 일부 인정했다. 이러한 아비규환(阿鼻叫喚)에서도 한미 연합군과 월남군은 구정공세를 끝내 막아냈다.

 

그런데 복병(伏兵)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히피룩‧각성제‧무전취식(無錢取食)‧난교(亂交) 및 사실상 전쟁터 징집되기 싫어 외친 반전(反戰)으로 상징되는 히피(Hippie)가 그들이다.

 

빈민가‧중산층‧재벌2세 등 다양한 출신이 어울린 이들은 명색이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부 더불어민주당 강성(強性)지지층처럼 공산이념을 추종하며 월맹에만 맹목적으로 ‘충성’했다. 68운동(May 68)의 마오이즘(Maoism) 맹종(盲從)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금지하는 걸 금지한다” 떠들며 제 나라 제 동족(同族)에게 총부리를 들이댔다.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Charles Manson)을 교주(敎主)로 하는 맨슨패밀리도 그들 중 하나다.

 

이 천하에 쓸모없는 히피정신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졸지에 미국은 국제사회 공적(公敵)이 되다시피 했다. 거짓말도 세 번 하면 진실이 되는 것처럼, 상당수 국가들은 속된 말로 히피 ‘쪽수 앞세운 여론전’ 영향을 받아 “침략자 미국 물러나라” 요구했다. 정작 전쟁을 일으키고 학살 나선 건 월맹이었는데도 말이다.

 

제1세계 수호 임무에 자부심 갖고 전장(戰場)을 구르다 휴가차 귀국한 장병(將兵)들은, 이웃‧동료들의 증오에 찬 눈빛에 충격 받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빠졌다. 버틸 수가 없었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은 월남전 철수를 전격 발표했다.

 

그 여파로 캄보디아‧라오스 연쇄공산화가 발생해 시신으로 산(山)이 쌓였으며, 미국은 추수감사절(TG) 밥상을 넘어 추수감사절 칠면조 괄약근에 메다 꽂혀버렸다.

 

통킹만사건으로 월남전 확전(擴戰)을 결정했던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은 재선(再選)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경선(競選) 포기를 선언했다. 정권은 끝내 교체됐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존슨과 미국을 “제국주의자 침략자들”로 손가락질 중이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월남전에서의 미국 패망에 희열 느꼈다”는 모 인사가 있다.

 

힘이 아닌 감성으로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으로 인해 용산은 위기에 내몰린 형국(形局)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검사정권이 억지로 제1야당 대표 처벌하려다 사법부(司法府)에 의해 들통났다 혹은 저지됐다”는 이상한 모양새 연출돼 도리어 용산이 추석밥상에 오르게 것이다.

 

영장을 재청구해도 기각될 가능성이 적지 않으며, 차후 구속된다 해도 “기어이 억지로 잡아넣었구나” 이 대표 동정여론 발생하기 십상이다. 21세기 지금도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동정표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영장기각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터다. 지지율 30%대 대통령과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고(高)순위를 달리는 인물(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중 누가 유리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재판부도 다음 정권에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민주당 강성지지층 극성(極盛)은 여론을 호도(糊塗) 나아가 세뇌 중이다.

 

이 대표가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남에 따라 코앞으로 다가온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내년 총선 결과는 안개 속에 휩싸이게 됐다. 바라건대, 용산은 외치(外治)와 내치(內治)를 혼동해선 안 된다. 북한 독재정권과 국내 일부 하수인들 엄단(嚴斷)은 필자도 찬성하는 바다. 허나 “날 지지하지 않으면 모두 불순분자”란 태도는 위험하다.

 

용산은 이번 기각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기본 즉 일부 민주당 강성지지층 입김을 뛰어넘는 지지율 제고(提高)부터 주력해야 한다. 끈질기게 살아남아 입 놀렸던 히피들처럼, 잃을 게 없는 야당 강성지지층은 때릴수록 역효과만 난다. 다시 말해 검찰수사는 필요한 만큼만 진행하면서 힘이 아닌 감성으로 전체 일반민심에 호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극단적으로 고언(苦言)하자면, 다음에 기다리는 건 추석밥상이 아닌 추석제사상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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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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