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과 핵무기 개발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러시아와 북한이 정상회담을 갖고 밀착하면서 북‧중‧러 대(對) 한‧미‧일이라는 '신냉전' 구도로 한반도 안보 지형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약 한 달만에 한·미·일 3국 협력체계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도 공산권 권위주의국가의 위협에 맞서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국제왕따' 북러 밀착에 한국 자체 핵무장론 주장 힘 실려
지난달 한국의 독자 핵무장 필요성과 방법론을 제시한 저서 '왜 우리는 핵보유국이 되어야 하는가'를 발간한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국내 대표적인 핵무장론자다.
정 실장은 16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북한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소폭탄을 개발하고 2017년에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시험 발사를 해 성공했다"며 "그때부터 남북 간 군사적 힘의 균형은 이미 깨졌고, 미국의 핵우산에도 구멍이 났다"고 한국의 핵무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실장은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시 북한은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기 때문에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그런데 미국이 북미 간 핵전쟁으로 인한 자국민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지켜줄 것이냐는, 즉 미국 대통령의 선의에만 의존 해야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국의 안보를 외국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굉장히 불안정하고 토대가 약한 것"이라며 "한국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 북한이 핵을 사용했을 때 우리가 즉각 대응하면 되기 때문에 미국도 더 안전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한국의 자체 핵무장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제320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자주국방은 모든 나라의 큰 원칙"이라며 "북핵에 대한 방어체계를 만드는 것보다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핵무장은 여론조사 때마다 찬성 비율이 70~80%를 넘나든다"면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하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체 핵개발을 주장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 되지 않을까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핵을 개발할 능력과 재원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1∼2년 내 (핵 개발이) 가능하다"며 "우리 스스로 선택을 원천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영국 주재 북한공사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달 14일 자체 핵무장론과 관련해 "장기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북핵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저도 역시 핵무장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NPT 가입한 한국, 핵무장 불가능…"日수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해야"
그러나 한국은 1970년 국제연합(UN)에서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국가이기 때문에 자체 핵무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핵잠재력(Nuclear Latency)'을 확보하는 것이다. 핵잠재력이란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기 때문에 NPT를 위반하지 않지만, 유사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국이 핵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우라늄 20% 이하 저농축만 가능하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불가능하다. 반면 일본은 1968년과 1988년 두 차례 미일 원자력협정을 통해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고농축 권리를 순차적으로 얻어냈다.
정성장 실장도 이 때문에 "만약 동북아에서 유사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은 핵무장 결정을 지도자가 내리면 3개월, 6개월 안에도 핵무기를 만들 수가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만 동북아에서 비핵국가로 남게 되는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래서 당장 NPT를 탈퇴하고 핵무장을 하자는 게 아니라 일단은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서 일본과 같은 수준의 핵잠재력을 확보하고, 또 미국이 호주에 제공한 핵잠수함 개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4일 "무엇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실존적 위협에 노출된 한국은 북러간 무기거래가 성사될 경우를 대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과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4월 워싱턴선언을 통해 한미핵협의그룹을 창설하고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정례적 기항에 합의했지만 역부족"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도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설립 60주년 특별 토론세션에 참석해 "이제는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해야하는 만큼 소극적 평화로 가야한다"며 "핵균형을 이루면 좋겠지만 제약이 있는만큼,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능력까지는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신중한 분위기…"그때그때 미국과 협의" 여지 남겨
나중에 대통령실이 진화하긴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도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야권 비판이 이어지자 대통령실은 다음날 "국민을 지키겠다는 군 통수권자 의지·각오 등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도 자체 핵무장은 불가능하다고 보고있지만,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가능성에 대해 "2015년에 20년 기간으로 다시 한번 한미 원자력협정이 개정된 지 8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면서 "따라서 지금 이시점에서 갑자기 한미 간 협의해놓은 모든 조항을 끄집어내서 새로 협의하는 것은 대단히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기존의 한미 원자력협정 자체를 크게 건드려서 일을 크게 벌리기보다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그때그때 미국과 협의할 수 있는 사안이 무엇인지를 추출해가면서 논의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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