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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만금 폭염의 행진

오주한

잼버리 ‘후진국형 환장파티’에 국격 추락소리 요란

야영하든 뭘 하든 인명이 우선…침묵‧실언 끝내야

 

軍 형태의 세계적 청소년행사 잼버리

 

잼버리(Jamboree)는 세계스카우트연맹(WOSM)이 4년마다 개최하는 전세계 스카우트 멤버들 합동야영(野營)대회이자 각 국 청소년 문화교류 행사다. 보이스카우트(Boy Scouts)는 영국의 한 퇴역군인이 설립자인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보이스카우트 문화는 잼버리 등 군사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군(軍)은 일정한 규율‧질서를 갖고 조직된 군인집단이다. 군인의 기본목표는 어떠한 악(惡)조건 하에서도 적과 싸워 이기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몸이 무쇠일리는 없는 법. 쇠도 녹일 듯한 폭염(暴炎) 앞에선 고도로 훈련받은 성인들의 사생결단(死生決斷) 전쟁터도 영업종료 벨을 울리곤 했다.

 

구(舊) 일본군처럼 인권 따위는 쌈 싸먹은 집단이 아닌 이상, 폭염은 피해야 쓸데없는 희생을 막고 내외의 인망(人望)을 얻어 ‘후진국’ 등 전(全)지구적 오명(汚名)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前者)의 대표사례는 1942년의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과 1945년의 산다칸 죽음의 행진(Sandakan Death March), 후자(後者) 대표사례는 1950년 8월 6‧25 당시의 킨(Kean) 특수임무부대 반격작전이다.

 

전쟁 중 인명무시 앞장선 구일본

 

태평양전쟁 일으킨 일본은 막대한 천연자원이 기다리는 동남아 점령을 위해 1941~1942년 남방(南方)작전을 실시했다. 미군은 무지막지한 구경의 주포(主砲) 갖춘 드럼요새(Fort Drum) 등에서 결사항전했으나 결국 동맹국 필리핀을 넘겨주고 말았다. 일본군은 7만5000여명의 미군‧연합군 포로들을 바탄반도에서 내륙 수용소로 이송토록 했다.

 

그런데 ‘작전의 신(神)’을 자처하던 인격파탄자 츠지 마사노부(辻政信) 일본군 중좌(중령)는 상부 명령서의 “포로 엄중감시” 지시를 “포로 처형”으로 바꿔버렸다. 잘 알려졌다시피 필리핀은 찜통더위로 유명하다. 블룸버그(Bloomburg)통신 등에 의하면 올해 5월 필리핀 당국은 기온이 위험수위에 달하자 단축수업을 실시했다.

 

이러한 살인적 기후 속에서 일본군은 포로들을 무려 100여㎞ 거리를 식수(食水)도, 휴식도 없이 걸어서 이동토록 했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자에게는 시퍼렇게 날이 선 대검(大劍)이 날아들었다. 이 지옥도(地獄道)에서 무려 약 ‘2만명’의 포로가 탈수(脫水) 등으로 목숨 잃었다.

 

이 야만적인 소식 접한 국제사회는 공분(公憤)했다. 1929년 채택된 제3차 제네바협약(Geneva Conventions)은 전쟁포로에 대한 인간적 대우 등을 강제(強制)한다. 비단 협약이 아니더라도 비무장한 인원에 가학적(加虐的) 괴롭힘을 가하는 건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포로를 이송하던 일본군은 뒤늦게 이 모든 사태가 든든한 백 업은 한 미치광이의 월권(越權) 때문임을 알아챘지만 복수불반(覆水不返)이었다. 현장 최고책임자였던 혼마 마사하루(本間雅晴) 중장은 전후(戰後) 전범(戰犯)재판에 회부돼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일본군은 이같은 짓을 또 저질렀다. 1945년 무렵 열대우림의 보르네오(Borneo)섬에는 약 2500명의 영국군‧호주군 포로수용소가 운용됐다. 당초 포로 대우는 원만했다. 알려지는 바에 의하면 덕장(德將) 이마무라 히토시(今村均)는 포로들을 활주로 건설에 동원하면서도 충분한 식수‧식량‧휴식을 보장하고 심지어 임금도 줬다고 한다.

 

실제로 히토시는 전범재판에서 수하를 잘 통제하지 못했다는 혐의 등만 인정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후 출소했다. 인도네시아 초대(初代) 대통령 수카르노(Sukarno)가 그의 도쿄(東京) 자택을 방문해 환담 나눴을 정도로 동남아인들도 ‘진정한 군인’ 히토시의 덕망(德望)을 인정했다.

 

허나 히토시가 임지(任地)를 떠나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일본 패색이 짙어지고 연합군 공습(空襲)이 보르네오섬에도 가해지자 일본군은 포로 일부를 수백km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포로들은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식수‧휴식 등도 없이 인당 수십㎏의 쌀포대를 짊어진 채 포장도로 아닌 정글을 통과했다. 지쳐 쓰러진 낙오자는 군도(軍刀)에 죽임 당했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행진에 나선 포로 약 1000명 중 절반가량이 걷다가 사망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도착지에 다다른 이들 중 약 400명도 끝내 눈 감았다. 산다칸에 남겨진 1500명 중 대다수도 영양실조로 죽거나 일본군에 의해 살해됐다. 이 참혹한 사건에 연루된 일본군 장교 6명은 전후 재판에서 가차 없이 사형이 선고됐다. 두 차례의 죽음의 행진으로 인해 일본은 오랜 기간 ‘야만국(野蠻國)’으로 낙인찍혔다.

 

전쟁 중 인명우선 앞장선 유엔군

 

반면 미국 등 제대로 된 문명국(文明國)은 인명경시(人命輕視)를 크게 경계했다.

 

공군 기상전대 대장 등을 역임한 반기성 선생의 ‘무더위가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준 사례’ 논문에 의하면 6‧25에 참전한 전사가(戰史家) 존 퓰러(John F.  Fuller)는 “한국전쟁 초기 미군은 적탄(敵彈) 외에도 더위로 더 많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최고 38℃를 넘는 한국에서의 무더위는 전투승패를 가르는 주요 요인(要因)이었다”고 평가했다.

 

3‧8선 넘어 기습한 북한군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진격해 낙동강방어선에서 유엔군과 대치했다. 허나 북한군은 길어진 보급선 탓에 물자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월턴 워커(Walton H. Walker) 장군의 촘촘한 방어망에 포위작전도 실패했다. 이에 유엔군은 미 25사단 등 전차 101대, 병력 2만4000명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고 공세(攻勢)로 전환했다.

 

능선(稜線)에서 매복하던 북한군은 죽기 살기로 방어했다. 특임대는 악전고투(惡戰苦鬪)하며 진격했으나 북한군은 지형(地形)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게릴라전술로 대응했다. 게다가 미 공군의 부산 기상관측에 8월 상순 최고기온이 연일 35℃(습도 70% 이상)로 기록될 정도로 당시 폭염이 쏟아졌다.

 

결국 미군 지휘부는 특임대에 진군(進軍) 중단을 명령했다. 반면 북한군은 낙동강전선에 집요하게 공격 퍼부으며 찌는 날씨에 병력을 소모하다가, 1950년 9월15일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에 허를 찔려 패퇴했다. 인명존중의 유엔군과 인명경시의 북한을 바라보는 국제사회 시선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더 이상의 국격추락 막아야

 

현재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죽음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8월 1~12일 일정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를 위해 전세계 150여개국에서 새만금을 찾은 4만여명 중에서 온열(溫熱)질환자 등이 무더기로 발생한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만 14~17세 청소년이라고 한다.

 

일대 병원은 마치 야전(野戰)병원을 연상케한다고 한다. 귀한 자녀를 한국에 보낸 해외 학부모들 사이에선 항의가 들끓는다고 한다.

 

한 외국인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WOSM SNS를 태그하며 “내 딸이 (새만금) 잼버리에 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딸이) ‘모든 게 통제 안 되는 잼버리 상황은 부끄러운 일’이라 했다”며 “음식도 없고 폭염을 피할 곳도 없다. 제발 뭐든 해 달라”고 호소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당국에 의하면 심지어 현장은 ‘물구덩이’ ‘곰팡이 구운 달걀’ ‘바가지요금’ ‘비위생적 화장실’ ‘실종된 치료약’ 등 총체적난국(亂局)이라고 한다.

 

국가차원 항의도 속속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3일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은 ‘청소년 안전 관련 해외영사(領事)들 문의가 있었나’는 질문에 “여러 나라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우려표명 국가에 관해선 우리가 설명할 수 없다”면서도 “문의가 있어 답변해줬다”고 밝혔다.

 

마치 제3세계를 연상케하는 ‘후진국형 환장파티’가 빚어지는데도 정치권은 침묵 또는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뭇매 맞고 있다. 잼버리 개영식(開營式)에서 강요 의혹 박수환호 속에 입장한 행정부 수장은 아무런 입장표명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북도의원 A씨는 “다수언론은 폭염걱정 하는데 내가 보기엔 충분히 감내할 만한 상황” “문제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다.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란데다 야영경험이 부족하다”고 주장해 혀를 내두르게 했다.

 

국격(國格)을 높인다며 유치한 행사가 도리어 국격추락에 가속페달을 밟게 한 꼴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고조된다. 이러다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큰 일라도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고조된다. 무엇을 하든 사람목숨이 최우선이다. 새만금 잼버리에 자녀들을 떠나보낸 분들 억장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책임 있는 자들의 책임 있는 모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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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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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켈켈켈
    2023.08.03

    지금 잼버리 하는 꼬라지=러시아가 병사들 굴리는 꼬라지

    그저 대단하다 조선민국!

  • 켈켈켈
    오주한
    작성자
    2023.08.03
    @켈켈켈 님에게 보내는 답글

    "잼버리 아닌 땡벼리" 등 난리가 났더군요. 시작부터 이토록 견판이니 엄중조사가 필요할 듯 합니다.

  • 오주한
    위하여
    2023.08.04
    @오주한 님에게 보내는 답글

    이건 분명 행사 용역을 받은 업체가 무자격 또는 초보이거나

    아님 행사 주관 공무원들의 비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국정조사깜 입니다.

  • 위하여
    오주한
    작성자
    2023.08.04
    @위하여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제 발 저린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오주한
    위하여
    2023.08.04
    @오주한 님에게 보내는 답글

    님께서 보셔도 납득이 안 되는 구석이 하나 둘 아닐 것입니다.

    이건 무슨 짬짜미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 INDEX
    2023.08.03

    실시간 지옥불반도 체험을 한 세계의 꿈나무들은 한국의 매운맛을 잊지못할것입니다.

  • INDEX
    오주한
    작성자
    2023.08.03
    @INDEX 님에게 보내는 답글

    혐한(양성)축제라는 자조적 목소리도 있다 합니다. 한덕수 총리께서 사태수습을 지휘하는 걸로 보입니다만, 더 큰 불상사 없이 수습되길 바랍니다.

  • 오주한
    위하여
    2023.08.03
    @오주한 님에게 보내는 답글

    우유부단, 있으나마나 떡수가 사태수습을 지휘한다고요?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대충 그림이 그려집니다.

    더 이상 환자들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위하여
    2023.08.03

    쌓아 올리기는 힘이 들어도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 입니다.

    국제적인 행사를 개최하면서 어찌 이렇게 허술하게 준비를

    했는지 전혀 믿기지가 않습니다.

     

    분명 이 사고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어떠한 기관도 사실상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들에게

    많은 신뢰감을 잃었습니다.

    시민단체가 나서서 철저한 원인과 진상을 파악해야 합니다.

  • 위하여
    오주한
    작성자
    2023.08.03
    @위하여 님에게 보내는 답글

    새만금잼버리 본건물(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은 내년에 완공된다는 소리도 있더군요. 이게 메인센터 맞는지 아닌지 주최측 입장은 모르겠지만, 국제행사를 이렇게 대놓고 말아먹는 게 통탄스럴 따름입니다.

  • 오주한
    위하여
    2023.08.03
    @오주한 님에게 보내는 답글

    이런 메머드급 행사를 준비하면 사전에 몇 번의 반복적인 리허설을 하고

    모든 부분을 꼼꼼하게 점검을 해도 본 행사 시작되면 생각지도 못 했던

    돌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인데 단적인 예로 이 혹서기에 생수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포털에 상보로 올라오는 잼버리 관련 기사들입니다.

    "각국 대사관, 스카우트 지원·구출 작전… 주한미군은 평택기지서 숙식 제공"

    올림픽, 월드컵까지 개최한 나라에서 이게 무슨 꼴인가요? 정말 부끄럽습니다.

  • 위하여
    오주한
    작성자
    2023.08.04
    @위하여 님에게 보내는 답글

    대다수 국민이 창피함에 고개를 못 들 뿐입니다.

  • 오주한
    위하여
    2023.08.04
    @오주한 님에게 보내는 답글

    또 이번 행사에 대해서 책임지는 사람은 없겠죠.

  • 풀소유

    한국에서 각국 아이들을 인질 삼아 『오징어 게임』을 찍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고 합니다.

    혐한 조장을 넘어,

    일각에서는 세금 '슈킹'을 넘어 외교 마찰을 불러일으킬 '인신 공양설'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 풀소유
    오주한
    작성자
    2023.08.04
    @풀소유 님에게 보내는 답글

    30대 초반 시절 몇몇 분과 농촌일손돕기 봉사 간 적 있습니다. 하필 제일 더운 날에 갔는데 물도 제대로 안 주고 그늘도 없어서 한나절 작업 끝에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 달라고 몇번을 전화하는데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더군요. 어린 친구들이 얼마나 고생 많을지 짐작가고도 남습니다.

     

    더 이상의 부상자, 망신살 없도록 책임 있는 자들의 행동을 촉구할 뿐입니다.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