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대표에게 사표를 요구하면서 벌어진 여권 초유의 갈등은 정말 봉합됐을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오찬 회동을 보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날 오찬 회동은 지난 23일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둘러본 지 6일 만에 이뤄졌다. 서천 화재 현장 만남을 두고 두 사람의 갈등이 완전히 봉합됐다는 평가가 언론에서 쏟아졌다. 4월 총선을 70여일 앞둔 상황에서 갈등을 조기에 봉합하지 못 할 경우 여권이 '공멸' 한다는 인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두 사람이 대통령 전용열차를 함께 타고 민생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서울로 올라왔다는 사실도 대통령실을 통해 공개됐다. 한 위원장은 서울역에 도착해 기자들을 만나 '윤·한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기자는 이날 오후 9시30분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와 통화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저는 봉합됐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고요"
'오늘 서천 만남으로 갈등이 봉합된 것이냐'고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갈등 봉합'이라는 평가에 대해 "그건 언론의 해석"이라고도 했다.
특히 이 고위 관계자는 한 위원장과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에 대해선 '대통령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강경한 인식도 내비쳤다.
김 위원은 지난 17일 명품가방 수수 의혹이 있는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한 위원장은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18일)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19일)라면서 김 위원에게 힘을 실어주고 김 위원의 마포을 출마 선언 과정에서 공천이 확정된 것처럼 행동해 '사천(私薦)' 논란이 일었다.
이에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21일 한 위원장을 만나 "윤 대통령의 뜻'이라며 사퇴를 요구하며 여권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즉각 거부해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후 갈등 진정 국면에서도 김 여사 문제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을 피할 뿐 입장 변화를 내비친 적이 없다. 또 중재안으로 제시된 김 위원의 비대위원장직 사퇴 여부와 마포을 사천 논란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29일 오찬 회동은 이처럼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다. 대통령실 설명에 따르면 약 2시간 37분 동안 진행된 오찬 회동에서 김 여사의 명품가방 관련 대화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37분간 진행된 차담에서도 민생 관련 대화만 나눴다는 것이다.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 측은 일각에서 제기됐던 김 위원 관련 대화나 총선 공천에 관한 논의도 일체 없었다며 한 목소리로 부인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오찬 회동에 앞서 "공천은 당에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을 비롯해 갈등의 불씨가 된 여러 사안들이 현재 진행 중이고 오찬 자리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면 이를 갈등 봉합이라고 볼 수 있을까.
대통령실이 당과의 물밑 접촉에 나서 확전을 자제하자는 공감대만 형성하고 총선용 화해 무드를 조성하기로 양측이 '임시 봉합'에 합의한 것은 아닐까.
29일 오찬 회동이 끝난 뒤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또다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오늘 오찬으로 갈등은 봉합이 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 용어들이 많은데 당정은 늘 소통하고 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1/30/2024013000057.html